어차피 벗을 거, 미리 한번 벗어봐
하지만 문제는 A 감독이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A 감독은 사석에서 이 여배우와 만났을 때 ‘영화를 찍으면 어차피 벗게 될 텐데 미리 한 번 벗은 몸을 보여줄 수 있겠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에 모멸감을 느낀 여배우가 하차를 결심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투자배급사 역시 이 여배우와 소속사 측에 사과의 뜻을 전하고 그들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겼다. 현재 이 감독은 해당 작품에서 손을 뗐으며 투자배급사 또한 이 작품을 제작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성폭력”이라며 “어떤 의도에서 이런 말을 꺼내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기본적인 예의를 갖췄더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감독 B는 촬영 현장에서 거친 언사를 일삼는 것으로 유명하다. 데뷔작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충무로에 물건이 하나 나왔다’는 반응이 이어졌으나 이후 그의 촬영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조감독이나 스크립터들에게 폭언, 욕설을 퍼붓는 것은 일상이고 일부 스태프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를 견디지 못하고 B 감독의 현장을 떠나는 스태프가 하나둘 늘었다.
이런 소문이 널리 퍼지고, 연출작까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둔 후 B 감독은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최근 이 감독의 복귀 소식이 전해지자 충무로 호사가들은 촬영 현장에서 과연 어떤 소식이 들려올지 귀를 쫑긋 세웠다.
또 다른 충무로 관계자는 “예전같이 폭군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스태프에게 여전히 폭언을 하고 촬영장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고 있다”며 “자신을 비추던 스포트라이트가 줄어들자 기세등등하던 모습도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고 전했다.
방송가 작가들의 갑질은 감독들의 그것에 못지않다. 시간에 쫓겨 공장에서 찍어내듯 드라마를 만드는 행태 속에 작가들이 내놓는 대본은 곧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그들의 입김은 절대적이다.
일단 작품이 방송사 편성을 받으면 그들에게는 대본을 집필할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되고 서브 작가들이 붙는다. 평소 사용할 수 있는 생활비 카드도 받고, 공식 스케줄이 있을 때는 제작사에서 매니저처럼 차를 대령한다. 유명한 작가의 한마디면 서슬 퍼런 방송사 책임 프로듀서들도 한달음에 작가를 만나러 가곤 한다.
다수의 성공작을 낸 C 작가는 대본을 늦게 주기로 유명하다. 촬영 직전 대본을 주면 다행이고, 쪽대본이 난무한다. 하지만 그가 쓰는 드라마의 성공 확률이 높은 터라 방송가의 ‘절대 갑’이라는 방송사조차 닦달하지 못하고 편성을 주며 비위 맞추기 급급할 때가 많다.
이 작가는 대본 없이 배우를 캐스팅하기도 한다. 작품을 선택하기 전 배우가 시놉시스와 대본을 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장르의 드라마인지를 알려주는 단 몇 줄의 설명만을 해준 후 출연 여부를 묻기도 한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믿고 따라 오라’는 식이다. C 작가가 히트작을 많이 냈지만 실패작도 있다. 결국 등락이 있는 법인데 대본도 충분히 쓰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만 믿고 따라오라’며 출연 결정을 종용할 때는 정말 화가 난다”면서도 “하지만 여러 배우들이 서로 이 작가의 작품에 참여하려 하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끌려가곤 한다”고 말했다.
아예 작품 집필을 거부하는 어이없는 작가도 있다. D 작가는 뻔하지 않은 드라마를 쓰며 작품에 대한 업계 평판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평소 음담패설을 즐기기로 유명한 D 작가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면 아예 일을 접어버리는 못된 습성을 보이고 있다.
이 작가는 얼마 전 드라마를 쓰며 끝까지 집필하지 않고 손을 털었다. 제작사 및 연출자와 의견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작품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난상토론을 벌이는 제작사, 연출자와 달리 D 작가는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선언해버렸다.
결국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 대본은 사실상 연출자가 써서 마무리 짓는 식이 돼버렸다. 시간에 쫓겨 방송 펑크 위기에 놓이자 방송사에 소속된 연출자로서 부랴부랴 급한 불부터 끈 것이다.
이 드라마의 제작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설마 진짜 대본을 쓰지 않겠냐’라고 생각했는데 D 작가의 행태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의 제멋대로 행태로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며 “한국 드라마 현실은 작가 한 명에게 너무 많은 짐을 얹는 동시에 그만큼의 권력까지 내주기 때문에 이 같은 비상식적인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