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감독 얘기부터 짚고 넘어가자. 46년생인 폴 슈레이더 감독은 미국 영화계에선 보기 드문 지적인 감독으로 76년작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각본을 쓰며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브라이안 드 팔머의 <강박관념>, 존 바담의 <롤링 썬더> 등의 시나리오를 쓴 뒤 78년작 <블루 칼라>로 감독 데뷔를 했다. 이후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 냈는데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킬만한 주제나 개인의 얘기를 주로 영화에 담아내면서 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감독이기도 했다. 노장이 된 이후에도 지적인 감독의 원숙미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아 왔다. 린제이 로한이 주연을 맡은 2013년 작 <트러블 메이커>까지는 기본적으로 기자 역시 이런 평가에 동조해왔다. 그런 만큼 그의 신작 <다잉 오브 더 라이트>에도 큰 기대감이 있었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아쉬움만 짙게 묻어났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첩보물이다. 그렇지만 첩보 영화라는 장르의 특징을 갖고 이 영화를 평가하라면 기대 이하다. 워낙 슈레이더 감독이 첩보물을 많이 다루지 않은 감독인 데다 그의 작품 성향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 장르가 첩보물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원제는 <Dying of the Light>, 러닝 타임은 94분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에반 레이크(니콜라스 케이지 분)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로 그의 직업이 베테랑 CIA 요원, 다시 말해 첩보원이다. 과거의 미해결 사건에 집착하는 레이크는 이미 현장을 떠나 사무실을 지키는 퇴물 첩보원이다. 게다가 ‘전두엽 치매’라는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 레이크는 강제 퇴직을 권고받기에 이른다. 그가 집착했던 사건은 22년 전 자신을 고문하고 귀에 큰 흉터를 남기는 등 큰 부상을 입힌 테러리스트인 바니어(알렉산더 카림 분)다. CIA에선 사망한 것으로 처리돼 있는 바니어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고 있는 레이크는 강제 퇴직 시점에 실제로 바니어가 살아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이제 CIA 요원도 아닌 레이크는 전두엽 치매라는 질병과 싸워가며 바니어를 뒤쫓는다. 그런데 바니어 역시 희귀 혈액병인 지중해성 빈혈을 앓고 있다. 악랄한 테러리스트와 최고의 첩보원으로 만났던 바니어와 레이크가 22년 만에 지중해성 빈혈과 전두엽 치매라는 치명적인 희귀병 환자로 다시 만나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첩보원이 테러리스트를 체포하기 위한 여정을 그린 첩보 영화라기 보단 노년에 이르러 은퇴하고 희귀병에까지 걸린 이들이 각자의 인생을 정리하는 얘기를 그려낸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슈레이더 감독은 진중하고 지적으로 이 영화를 연출해 냈지만 사실 많이 지루하다. 결론분에 이르러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에 혼동이 오면서 실망감이 증폭되기도 했다. 내가 아직은 영화 기자로서 모자람이 많아 좋은 영화임에도 그 진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실망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거듭해서 들 정도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안은 일반적인 대중영화로서 보기엔 그리 만족스럽게 재밌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대략의 줄거리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하는 영화라는 사실만 놓고 흥미진진한 첩보 영화를 기대라는 이들에겐 결코 관람을 권유할 수 없는 영화다.
‘UTU DTD’라는 말이 있다. 스포츠팬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 ‘Up To Up Down To Down’의 약자다. ‘올라갈 팀을 올라가고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의미로 순위가 상위권에 오를 만한 강팀은 시즌 초중반 순위기 잠시 주춤해도 결국 상위권에 오를 것이며 잠시 반짝한 하위팀은 결국 시즌 중후반에 순위가 하위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의 결론도 비슷하다. 애초의 각자의 치명적인 질병을 갖고 22년 만에 다시 만난 테러리스트와 첩보원은 잠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정신적 교류를 갖는다. 그렇지만 영화는 결국 미국 첩보원은 결국 착한 편으로 늘 정의롭고 강력하며 테러리트는 결국 악당으로 언젠가는 정의의 심판을 받는다는 식상한 결론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잉 오브 라이트>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의 영화다.
@ 줄거리
영화 <다잉 오브 라이트>는 베테랑 CIA 요원 에반 레이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 때 최고의 현장 요원이었지만 이제 노년에 접어든 레이크는 현장을 떠나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22년 전 현장 업무 도중 테러리스트 바니어에게 붙잡혀 엄청난 고문을 당해 귀에 큰 흉터가 남는 등 육체적인 고초를 겪었으며 정신적인 충격도 컸던 레이크는 여전히 바니어가 살아 있다고 믿고 있다.
CIA는 미국의 첩보 작전 도중 바니어가 사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그의 시체에서 얼굴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레이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레이크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생긴다. 우선 부하직원인 후배 첩보원 밀트(안톤 옐친 분)가 바니어가 아직 생존해 있다는 첩보를 손에 넣었다. 바니어가 희귀 혈액병으로 루마니아 의대의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는다는 정보를 알게 된 것. 바니어의 부친을 사망에 이르게 만든 희귀 혈액병 지중해성 빈혈이 바니어에게도 유전된 것.
그 즈음 레이크는 자신이 전두엽 치매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첩보기관인 CIA 역시 레이크가 몰래 진료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강제 퇴직을 권유한다.
그렇게 더 이상 정식 CIA 요원도 아닌 레이크는 밀트의 도움을 받아 개인적으로 바니어 체포 작전에 돌입한다. 그렇지만 전두엽 치매로 몸이 말을 듣지 않고 기억력도 나날이 쇠퇴해가는 그가 과연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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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리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우선 대중적인 첩보 오락 영화로선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그렇다고 작품성을 논하기에도 그리 추천작은 아니다. 지루할 만큼 더딘 영화일 지라도 마지막에 커다란 울림이 있는 영화면 좋겠지만 그냥저냥 보다가 마지막에 ‘이 영화가 결국 하고자 했던 얘기가 뭘까?’라고 생각하며 허탈해질 가능성이 큰 영화이기 때문이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200 원
노장 폴 슈레이더 감독과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대배우의 명성만 어느 정도 감안해 200 원으로 추천 가격을 정했다. 언젠가 영화 케이블 채널에서 무료로 방송될 지라도 감히 보라고 추천하기 힘든 영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