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작가 임성한씨가 시청자들로부터 ‘미운 털’이 박힌 결정적인 계기는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의 직업인 드라마 작가를 ‘너무 위대한 사람’으로 미화시켰다는 점이다. 사실 실제 드라마 작가들은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그렇게 우아하지도 않고, 못하는 게 없는 만능재주꾼도 아니다. 제 시간에 원고를 넘기지 못하면 PD한테 상스러운 욕도 먹고, 시청률에 가슴 졸이기도 한다. 직업의 특성상 일반인들에게는 사뭇 생소한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은실이> <푸른안개> 등 굵직굵직한 드라마를 집필해온 중견작가 이금림씨는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SBS 일일연속극 <연인>의 원고를 쓰면서 “일수 찍는다”고 표현한다.
드라마작가들에게 일일연속극의 부담감은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드라마가 끝나는 날까지 개인적인 시간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20여 년간 집에서 작업을 해오던 이씨는 최근 손녀딸의 재롱 때문에 일이 힘들어지자 집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작업시간은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그러나 이씨가 작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하루 15시간의 작업량이 아니라 극중 인물이 괴로워하거나, 사고나 병으로 죽었을 때다. 과거 <은실이>를 집필하면서, 극중 김원희를 ‘죽여야했을 때’ 너무 몸이 아파 며칠을 앓았다고 한다.
이씨는 “젊었을 때는 등장인물을 많이 죽이곤 했는데 그러면 이제는 내 몸이 아파,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죽이는 것을 자제하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 온통 감정을 이입시키는 이씨의 근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얼마 전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SBS드라마 <올인>의 작가 최완규씨는 드라마를 집필하기 전 꼼꼼한 취재와 자료 조사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메디컬 드라마 <종합병원>을 집필하기 전에는 6개월 간 종합병원에서 숙식을 했을 정도.
최씨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허준> 때는 <조선왕조실록> 등의 사료를 통달했고 갬블 드라마인 <올인>을 실감나게 쓰기 위해 정선 카지노에서 잃은 돈도 꽤 된다고. 그러나 최씨의 가장 큰 특징은 작업 중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을 한다는 점이다. 드라마만 시작했다하면 살이 찌다보니 지금은 ‘거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흡연량도 상당해서 원고를 쓸 땐 하루 3갑씩 핀다.
▲ 인기드라마 <야인시대>(위)의 작가 이환경씨는 부지런한 취재와 신속한 대본 마감으로 유명하다. | ||
촬영장은 물론 배우들과 대면조차 하지 않는 작가들도 많다. 그 대표적인 작가가 <인어아가씨>의 임성한씨.
한 중견배우는 “드라마 촬영기간동안 임씨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배우들과 만나는 시간에 더 좋은 글을 위해 구상을 하는 게 작가의 임무’라며 배우들과 만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의 입장에서는 대본을 기다리지 않고 제때 나오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다고.
이른바 ‘초짜’여서 배우들의 얼굴을 보기 힘든 드라마 작가도 있다.
최근 20∼30대 젊은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MBC 월화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공동작가 민효정씨는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작가. 2001년 MBC 아침드라마 <눈으로 말해요>의 공동작가로 데뷔한 민씨는 재미있게도 <인어아가씨>의 주인공 ‘아리영’과 닮은 점이 많다. 나이도 29살로 동갑이고, 잡지사 기자로 근무하는 친구와 함께 자취한다고.
하지만 아리영과 확연히 다른 점은 일주일에 두 회분의 원고를 소화하기 힘들어 한 회씩 돌아가며 맡는 공동작가이며 “PD로부터 대본 OK 사인이 떨어질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는 자칭 ‘초짜 작가’라는 점이다. 출연배우들과도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고.
시간을 다투는 작업에 매달리는 드라마작가들에게 ‘글 쓰는 일’은 그야말로 전쟁이자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춤도 잘 추고, 드럼도 잘 치고, 요리도 잘 하는 <인어아가씨> 속의 ‘아리영’은 말 그대로 드라마 속 얘기일 뿐이다.
김경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