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죽도록 사랑해>에서 만나 지난 2월 결혼에 골인한 김여진 김진민 커플. 이들 뒤엔 박지영의 도움이 있었다고. 아래쪽은 PD와 결혼한 원미경 임예진 박지영. | ||
드라마 <목욕탕집 사람들> <불꽃> 등으로 잘 알려진 베테랑 연출자 정을영 PD가 얼마 전 이들 ‘PD-배우’ 커플의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한다. 정 PD는 <흥부네 박터졌네> 후속으로 방영되고 있는 SBS 새 일일드라마 <소풍 가는 여자>를 준비하던 중 큰 난관에 봉착했다. 여주인공으로 내정됐던 심혜진의 출연이 갑자기 무산되는 바람에 대타를 찾아 헤매야 했던 것. 미칠 노릇이었다고 한다. 누가 남이 ‘버린’ 떡을 줍겠는가. 그렇다고 아무나 캐스팅할 수도 없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을 때 그를 구해준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장녹수>로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던 탤런트 박지영이었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박지영이 출연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바로 남편이 ‘찍새’(PD의 방송가 은어)였기 때문. 당시 정 PD는 “남편이 PD였으니, 내 심정 누구보다 잘 알 거 아니냐”며 매달렸다고 한다.
겉으로 보는 것처럼 PD라는 직업이 그리 화려하지만은 않다. 캐스팅이 안돼서 노심초사해야 하고 밤새 벌벌 떨며 야외촬영을 해야 하는 고통은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걸 직접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겪었던 박지영은 캐스팅 제의를 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작품이 워낙 좋기도 했지만, 남편이 겪었던 고초와 그 외로움이 오버래핑됐던 것.
비밀 하나. 박지영을 적극 추천하며 정을영 PD에게 한번 운이라도 떼어 보라고 옆구리를 찔렀던 사람은, 다름 아닌 <소풍 가는 여자>의 CP를 맡고 있는 허웅 PD.
세간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허웅 PD 부부도 남편이 열렬하게 구애를 해서 결혼에 성공한 PD·여배우 커플이다. 허 PD보다 나이가 많은 관록파 배우 연운경씨는 한사코 ‘딴 데 가서 알아보라’고 했는데, 그가 물귀신 작전으로 늘어졌다는 후문. 덕분에 지금은 둘 사이에 아주 어여쁜 딸내미가 둘 있다고.
“곰순이구나∼ 으이그 귀여운 내 사랑∼!”
이 ‘닭살’ 멘트는 MBC 드라마 <죽도록 사랑해>에서 천년배필 김여진을 만난 김진민 PD가 마누라 김여진의 전화를 받을 때 맨 처음 하는 말.
이 두 커플은 몇 해 전 MBC <베스트극장>에서 조연출과 여배우로 만나 서로 좋은 감정을 키워오다 화끈한 성격의 박지영이 적극적으로 맺어준 커플이다.
“PD와 결혼해도 꽤 괜찮다고 다리를 놔줬죠. 두 사람이 서로 호감이 있는 듯한데 먼저 다가설 성격들이 아닌 것 같아서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당황하던 눈치더니…”하며 파안대소하는 박지영.
박지영이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녀 역시 PD 남편을 둔 선배 탤런트 덕에 지금의 낭군과 ‘접속’됐기 때문. 그녀가 SBS <오박사네 사람들>에 출연할 당시 MBC 최창욱 PD와 결혼한 선배 임예진이 연결시켜줘서 당시 조연출이었던 지금의 남편 윤상섭 PD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고 한다.
흔히 같은 작품을 찍다보면, 서로에게 정이 들게 마련. PD와 여배우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처음엔 일하는 모습을 보고 무서운 PD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현장에서 엑스트라들에게 자상하게 마음 써주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적으로 끌리기 시작했어요.”
아직 젊은 나이에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김진민 PD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같이 살기로 작정한 김여진의 고백이다.
솔직히 PD란 직업이 그렇게 매력적인 직업은 아니다. 밤새워 촬영하고 편집해야 하고 이리저리 잡무에 시달리면서 돈은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많이 벌지 못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연봉 억대의 PD가 있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는 정도고.
이렇다 보니 PD와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여배우를 보고 주위에선 진짜 용감하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보통 돈 많은 청년실업가나 재벌 2세 쪽으로 눈길이 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MBC <장미의 전쟁>을 찍고 있는 이창순 PD와 원미경이 결혼하겠다고 나섰을 때, 방송가 사람들은 원미경을 다시 봤다고 평했다고 한다. 최고의 여배우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원미경이 아무런 뒷배경 없는 평범한 PD와 결혼한다고 나섰으니, 그걸 어떻게 무슨 말로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눈에 콩깍지가 씌웠다는 말로밖에.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이창순·원미경, 최창욱·임예진, 윤상섭·박지영, 김진민·김여진 커플처럼, ‘알콩달콩’ 사는 재미에 눈가에 늘어가는 주름살을 모를 정도로 행복한 커플이 되기 위해 남 몰래 사랑을 키워가는 PD와 여배우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