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무법자’들 제대로 걸러낸다
직접 차량이나 흉기 등을 이용해 위협하는 ‘보복 운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왼쪽 사진들은 위부터 삼단봉 사건, 가스총 사건, 막걸리 사건을 보도한 뉴스 화면 캡처.
지난 4월 23일 세종경찰서는 막걸리 병을 도로에 던지며 뒤 따라 오던 차량 운전자를 위협한 혐의(협박)로 이 아무개 씨(38)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 씨는 21일 오후 3시 50분께 세종시 연서면 한 도로에서 적색 신호등이 켜지자 A 씨(38)의 차량 앞에 급정거한 뒤 자신의 냉동탑차 안에 있던 막걸리 병을 수차례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A 씨를 향해 욕설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막걸리 운송업을 하는 이 씨는 앞서가던 A 씨의 차량이 천천히 운전하며 길을 비켜주지 않아 화가 나서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가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낸 속도는 무려 시속 180㎞였다.
이와 관련, 서울지방경찰청은 오는 7월 말까지 앞으로 3개월의 집중 단속 기간 동안 집중 수사를 통해 보복운전을 근절하겠다는 방침을 지난 22일 밝혔다. 자동차를 이용해 위협이나 협박을 하는 행위에 대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폭처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강력히 처벌할 계획이다. 사고 발생 시 중대한 인명사고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기간 동안 112 전화 및 인터넷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신고를 접수할 계획이다.
이 경우 법정형은 벌금형이 없는 1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그동안 보복운전은 신고가 접수되더라도 증거 부족 등으로 단순 난폭운전으로 처리, 교통범칙금 4만 원에 처하는 수준에 그쳐 보복운전을 되레 방치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난폭운전’이란 차량을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등 누가 봐도 위험하고 불편하게 운전하는 행태로 신고 없이도 경찰관의 판단으로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는 운전이다. 경찰은 특정인을 차로 밀어붙이거나 뒤따라가 차로 막고 위협·협박하는 행위 등을 위험한 물건(자동차)을 휴대하고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한 것으로 판단하고 폭처법을 적용한다는 입장이다.
보복운전이란 통상적으로 자신의 진로를 방해한 차량에 대해 갑자기 끼어들거나 앞에서 급제동을 거는 등으로 상대 운전자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행위로 인식되지만, 그동안은 개념과 기준이 명문화돼 있지 않다보니 처벌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이에 경찰은 보복운전 판단 기준을 누가 봐도 사람이 다칠 수 있는 정도의 속도와 거리, 보복운전 과정의 횟수와 방법, 주변 다른 차량과의 위험성, 당시 교통 흐름 등으로 제시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 전선선 팀장은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보복운전으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그동안은 증거 수집이 어려운 측면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블랙박스 장착 차량이 증가하면서 이런 어려움도 해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지난해 전문 여론조사기관 트렌드모니터에 의뢰해 운전자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6.4%가 보복운전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10명 중 7명은 시비가 붙어 싸우는 차량을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을 정도로 보복운전이 만연해 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지난 3월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중고차 매매사이트 게시판을 통해 보복운전 피해사례를 접수한 뒤 17명을 입건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에 들어간 데 이어 차제에 처벌 강화 방침을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삼단봉 사건’, ‘가스총 사건’, ‘막걸리 사건’ 등은 알려진 일부 보복운전 사례일 뿐 신고 접수가 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한 경찰 관계자는 “보복 운전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운전자가 직접 물리적 피해를 입지 않은 경우 신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사건 발생 후 며칠이 지나서 신고하는 경우 블랙박스 영상이 지워져 증거 채택도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이런 경우 진술과 정황에 의존하다 보니 실효성 있는 처벌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봐도 명백하게 보복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보복운전 유발자’는 어떤 제재를 받게 될까. 앞서 언급한 범칙금 4만 원짜리 난폭운전 정도에 그칠 공산이 크다. 전선선 팀장은 “상대방 차량이 문제가 있더라도 양보운전을 통해 해결해야지 보복운전을 하면 더 큰 처벌을 받는다”며 “향후 보복운전으로 형사 입건될 경우 운전면허 취소와 정지 처분도 병행될 수 있도록 법령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피해자의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