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스케줄 살펴보니…‘헉! 사람 잡겠네~’
4월 14일 일본 히로시마공항에 착륙하다 활주로를 벗어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주변에서 현장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 항공기는 왼쪽 엔진 덮개가 벗겨지고 보조날개와 수평 꼬리날개가 파손됐다. 연합뉴스
지난 4월 14일 오후 8시 5분. 일본 히로시마 공항 활주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활주로에 착륙한 아시아나항공 OZ162편을 탄 승객들은 항공기 양 쪽에 펴진 비상용 슬라이드를 타고 지상에 내려온 뒤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기체 안에는 타는 냄새가 났고 연기가 퍼지고 있었다. 혹시나 항공기가 폭발할까봐 탈출하는 승객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이날 아시아나항공기는 착륙하면서 활주로를 이탈했다. 불시착한 항공기는 반 바퀴를 돌아 착륙 방향의 역방향으로 활주로 옆 잔디밭에 멈춰 섰다. 항공기 보조날개 2개와 왼쪽 엔진, 착륙시설 일부는 순식간에 파손됐다.
항공기에 탄 승객은 모두 81명이었는데 이중 가벼운 부상을 당한 승객은 20여명 정도였다. 항공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아시아나에 천운이 뒤따랐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최종 착륙 지점만 봐도 그렇다. 히로시마 공항은 산을 깎아 만든 공항이다. 고도는 331m로 우리나라 남산(262m)보다 높다. 잔디밭으로 급정거한 항공기는 그대로 10m가량만 더 이탈했으면 절벽을 마주할 뻔했다. 한 항공 전문가는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이 정도로 사고가 수습된 것이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전했다.
사고 원인을 두고는 갖가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일본 당국은 현장 조사와 비행기록장치 분석을 통해 “기체에 이상은 없었다”라고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그렇다면 남은 건 착륙 과정 분석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히로시마 공항은 활주로가 양쪽으로 되어 있다. 서쪽에서 동쪽 혹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착륙할 수 있는 구조다. 양쪽 활주로의 차이점이 있다면 정밀착륙유도장비(ILS, instrument landing system)의 유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착륙하는 활주로는 ILS가 설치돼 있지만, 동쪽에서 서쪽으로 착륙할 경우에는 ILS가 없다. 앞서의 항공 전문가는 “ILS가 설치돼 있으면 자동적으로 정밀 착륙을 유도하기 때문에 조종사 입장에서는 착륙하기 훨씬 쉽다. 그게 없으면 조종사가 직접 수동으로 착륙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사고 당시 조종사는 ILS가 없는 동쪽 활주로로 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동료 조종사는 “히로시마 공항의 경우 고도가 높기 때문에 바람 상태에 따라 활주로 진입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즉 활주로 방향을 택한 것까진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 이후 수동 착륙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나치게 낮은 고도’로 활주로에 접근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본 운수안전위원회에 따르면 항공기는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면서 활주로 약 300m 전방에 있는 6m 높이의 전파 발신 시설과 먼저 충돌했다. 통상 해당 지점을 지날 무렵 항공기의 고도가 30m 정도인 점을 감안한다면 비정상적으로 낮은 고도로 활주로에 향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이번 사고가 2년 전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샌프란시스코 사고’와 유사하다는 시각이 많다. 당시 아시아나항공기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면서 지나치게 낮은 고도로 접근, 활주로 앞 방파제에 충돌한 후 활주로를 이탈했다.
두 사고 모두 지나치게 낮은 고도로 활주로에 접근해 결국 사고를 일으켰다는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 해당 기장이 왜 낮은 고도로 운항을 했는지는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일본 측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기에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사고 기종인 ‘A320’을 두고도 여러 뒷말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중형기인 A320 기종은 대부분 3시간에서 4시간 거리인 단거리 국내선을 운항하는 기종이다. 때문에 대형기보다 비행횟수가 평균 4~5배 많다. A320 기종을 운항하는 한 아시아나항공 기장은 “A320을 운항하는 조종사들의 피로도가 상당하다. 열악한 공항에 이착륙도 많다. 히로시마 공항 역시 A320 조종사들이 기피하는 공항 중 하나다. 히로시마 공항으로 가기 전 다른 국제선 왕복근무를 자제시켜 달라는 건의를 수차례 했다”고 토로했다. 해당 기종을 운항하는 조종사들의 피로도와 공항 착륙 환경의 열악함 등이 사고의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 사고기를 운항한 기장 역시 히로시마 공항을 가기 전 일본 요나고 공항 왕복 비행을 1시간 30분 동안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측은 “통상적인 국내선 비행과 유사한 정도의 주간비행이었다”며 “히로시마 공항을 가기 전 왕복근무를 자제시켜 달라는 구체적인 건의가 올라온 적이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아시아나항공 내부에서는 A320 기종에 대한 비행스케줄을 전면 재점검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A320 비행스케줄에 따르면 연속되는 24시간 비행근무 기준으로 국내선 이착륙 횟수가 7회(편도 7회 비행)에 달하는 스케줄이 상당수 포착된다. 이는 사고가 난 이후인 5월 근무에도 마찬가지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기장은 “7회 이착륙을 하다보면 마지막 착륙에는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체력이 소진된다. 대부분의 사고가 이착륙에서 발생하는 만큼 사고 방지를 위해 횟수를 적당히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대한항공의 경우 노사 협약으로 24시간 기준 이착륙 횟수를 ‘5회’로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최근에는 이착륙 횟수를 5회에서 4회로 조정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라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이에 대해 “현행 항공법상 이착륙 횟수에 대한 제한은 없다. 국내선의 경우 사내 규정에 따라 1일 이착륙 횟수를 최대 5회로 제한하고 있으며, 5회 이착륙 스케줄은 운항승무원 1명당 월 1회씩 편성되도록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후 충분한 휴식 시간을 보장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복수의 아시아나항공 A320 기장들은 “1일이 아니라 24시간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 연속되는 24시간이면 6~7회 이착륙 스케줄이 상당하다”라고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번 히로시마공항 사고는 착륙 환경의 열악함과 더불어 낮은 고도로 착륙을 시도한 정황, A320 기종을 둘러싼 문제점 등이 복합돼 나타난 ‘예견된 인재’일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국토부는 사고 직후 A320 조종사들에 대한 긴급 기량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앞서의 아시아나항공 A320 기장은 “조종사들의 기량을 점검해 평가하겠다는 국토부의 방침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운항 스케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부터 해야 연속되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