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 뒤에서 ‘세금’ 조물락 회장님들 딱 걸렸네
검찰과 신원그룹 등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은 최근까지 신원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해 박성철 회장의 11억 원 탈세 및 위법 사실을 확인하고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또 국세청은 주식이 한 주도 없는 박 회장이 회사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박 회장에게 명의를 빌려 준 박 회장의 부인 송 아무개 씨와 회사 관계자 등에게 증여세 탈루 혐의로 190억 원가량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서 신원그룹에 대해 올해 초부터 4월 초까지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검찰에 고발을 했다”고 전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국세청의 중수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을 만큼 정기세무조사가 아닌 심층(특별)세무조사를 전담으로 하는 조직이며 탈세나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이 포착되거나 이 같은 제보 등이 있을 때 움직이는 조직이다. 이번 검찰 고발이 단순 탈세 조사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박 회장은 지난 1999년 신원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신원이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16.77%를 회사에 모두 무상증여한 뒤 2003년 워크아웃 졸업 후 대표이사를 맡아왔다. 단 한 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경영권을 휘둘러 온 셈이다. 이런 구조가 가능했던 것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티엔엠)’라는 광고대행사가 배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광고 영화 및 비디오물 제작업체’로 등록돼 있는 티엔엠은 신원이 워크아웃 중이던 지난 2001년 설립돼 이렇다 할 영업활동이나 실적 없이 지난 2003년부터 워크아웃 졸업을 앞둔 신원의 주식을 사들였다. 지난 3월 31일 기준 지분 30.84%를 보유, 현재 신원의 최대주주로 회사 경영권을 갖고 있다.
문제는 티엔엠의 최대 주주가 박 회장의 부인 송 씨라는 점이다. 송 씨는 지난 2013년 말 기준 티엔엠의 지분 26.6%를, 박 회장의 세 아들도 사내이사 등으로 재직하며 각각 1%가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박성철 신원 회장은 지분 1%도 보유하지 않은 채로 경영권을 행사해왔다. 사진은 신원 빌딩.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하지만 신원 측 관계자는 이번 조사가 회사와는 무관한 사안임을 강조하는 한편 정·관계 로비 등에 대한 가능성을 일축하며 세금 미납 부분 외에는 확실한 선을 그었다. 신원 관계자는 “지난 2003년 당시 박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대전케이블, 한밭케이블 등 케이블방송 등의 지분 가치가 홈쇼핑 활황에 힘입어 상승하면서 티엔엠 매입 자본을 마련했다”며 “가족 명의가 아닌 티엔엠이라는 회사를 통해 지분을 매입한 것은 워크아웃 후 회사의 정상화만 생각하던 상황이었기에 외부의 불편한 시선을 의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당시 박 회장이 세법을 잘 몰랐던 부분이 있는 만큼 국세청의 추징금은 순차적으로 납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원그룹 박 회장 건과 별개로 최근 국세청은 국내 또 따른 의류업체 A 사를 주시하고 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A 사는 매출액이 2~3년 전부터 절반씩 뚝뚝 떨어지고 수백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세금 체납액이 수십억 원이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세청에서 세금 징수를 위해 계좌, 부동산, 거래처 채권 압류 등의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사정기관 일각에서는 A 사의 B 회장이 그동안 ‘로비의 신’으로 통했기 때문에 회사를 일으켜 세우고 승승장구할 수 있었지만,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고 소위 ‘총알’이 떨어지면서 이제는 ‘약발’이 다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B 회장은 그동안 정·관계를 포함해 다방면으로 로비를 통해 보험을 들며 사업 규모를 키워 왔던 사람이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그래서 B 회장을 사정기관에서도 쉽게 건드릴 수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잘나가던 의류업계 CEO(최고경영자)들이 세금 문제로 말썽을 일으키는 것과 관련, 업계 일각에서는 의류업의 특성상 탈세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전직 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영세 의류업체들은 매출 신고가 안 되는 부분들이 부지기수다. 매출 누락이 쉽고 비용 계상이 안 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며 “최상위 몇 퍼센트의 업체들을 제외하고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도 업체들이 탈세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