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500만원’ 접대 받았지만 뇌물 아니라고?
국세청 간부 성매매 비용을 업무 연관성이 큰 회계법인 임원이 계산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뇌물죄 적용은 안돼 봐주기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국세청 전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국세청 간부 성매매 비용을 계산한 이들을 밝혀냈다.”
지난 4월 26일 서울 수서경찰서는 국세청 간부 2명의 성매매 사건을 수사하다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 당시 룸살롱에서 국세청 간부와 동석을 하고 술값 계산까지 한 이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동석자들은 국내 1위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 소속 임원들이었다. 삼일회계법인 임원 2명과 국세청 간부 2명이 룸살롱에서 동석한 사실만 두고도 파장은 거셌다.
당장 관심은 왜 이들이 함께 술을 마셨으며, 게다가 왜 회계법인 임원이 술값과 성매매 비용까지 계산했는지로 쏠렸다. 당시 회계법인 임원이 계산한 술값 및 성매매 비용은 총 ‘400여만 원’이었다. 이 정도 비용을 계산할 정도면 ‘대가성’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삼일회계법인 홈페이지.
당사자들은 우선 대가성 의혹을 철저히 부인했다. 단순한 친목 모임이었을 뿐이라는 것. 국세청 간부는 경찰 조사에서 “개인적 친분이 있어 회계법인 임원들을 만났을 뿐 로비나 대가성이 없다”라고 진술했다. 이는 회계법인 측도 마찬가지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해당 임원들이 국세청 간부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이들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세청 간부 A 씨는 회계법인 임원 B 씨와 같은 대학 동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A 씨와 B 씨는 전공도 같다. 두 사람이 친분을 쌓은 지는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국세청 간부인 C 씨는 A 씨의 소개로 임원 B 씨를 알게 됐다. C 씨 역시 전공은 다르지만 같은 대학 출신이기에 세 사람은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임원 B 씨는 같은 회계법인을 다니는 임원 D 씨를 무리에 소개시켜 준다. 사건 당사자인 4인방은 이렇게 완성됐다.
이날 모임은 국세청 간부 A 씨가 외국에서 근무를 하다 입국을 한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모인 일종의 ‘귀국 축하 자리’였다고 한다. 강남 한정식 집에서 모인 네 사람은 2차 장소 예약을 처음엔 하지 않았으나 분위기가 무르익자 술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에는 단순히 저녁 약속으로 모였다가 식사 후 ‘술 한 잔 더 하자’고 해서 2차(룸살롱)를 간 것으로 파악됐다”라고 전했다.
의혹이 이는 것은 계산 방식이다. 일단 한정식 집에서 계산은 회계법인 임원들이 했다. 가격은 80만 원 정도다. 문제는 1차에 이어 2차 룸살롱 비용까지도 회계법인 임원들이 냈다는 점이다. 2차 비용은 대략 420만 원 정도. 밥값과 술값, 성매매 비용까지 포함해 ‘500만 원’ 정도를 회계법인 임원들이 계산한 셈이다. 아무리 친분이 있는 사이라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비용이다. 경찰 역시 비용을 보고 접대나 대가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계법인 임원들은 경찰 조사에서 자신들의 연봉액을 언급하며 “그 정도 계산은 가능하다”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에 따르면 “임원들의 연봉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셌다. 2차 비용이 좀 많이 나오자 임원 중 한 명은 영업실장과 ‘왜 이렇게 많이 나왔느냐’며 다투기도 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의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경찰조사 결과 회계법인 임원들은 자신들의 개인카드가 아닌 ‘법인카드’로 결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로비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회계법인 임원 측은 해당 법인카드는 카드로 결제한 뒤 회사에 따로 비용 청구를 하는 시스템이기에 사실상 ‘개인카드’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계법인 임원들은 이후 2차 비용을 따로 회사에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세청 간부와 회계법인 임원들이 얼마든지 말을 맞출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국세청 간부의 성매매 사실이 발각되자 임원들이 개인적인 계산임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회사에 청구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다. 경찰 관계자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국세청 간부와 임원들의 통신기록을 살펴봤지만 통화 기록이 잡히지 않았다. 휴대폰을 압수하기 위해 영장도 신청했지만 검찰에서 기각됐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결국 경찰은 30일 국세청 직원 2명에 대해 성매매 혐의는 기소, 뇌물수수 혐의는 불입건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한 마디로 친분 이상의 ‘대가성’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2달 동안 장기간 이어진 수사가 이렇게 마무리되자 경찰 내부도 허탈한 분위기다.
삼일회계법인 측 관계자는 “친분이 있는 대학 선후배들끼리 진하게 술 한 잔 한 것을 가지고 너무 몰고 갔다는 시각이 일부에서 있다. 해당 임원들은 모두 대기발령 상태다. 경찰 조사가 끝나는 대로 회사 징계절차에 따라 징계를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수사 길어진 까닭 동석자 찾는 데만 두달 허비 지난 3월 2일 밤 11시 50분. 서울 역삼동 한 고급 모텔에 경찰관들이 들이닥쳤다. 곧이어 말쑥한 차림의 40대 남성 두 명이 성매매를 한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찰서로 이동한 이들은 4시간 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버티다가 결국 ‘국세청 간부’로 신분이 탄로 났다. 여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세청 간부 성매매 사건이 세간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건은 이렇게 동석자를 파악하기 위해 4월 말까지 거의 두 달 가까이 지지부진 진행됐다. 경찰 안팎으로 “수사를 너무 끄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쏠렸다. 그러다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동석자를 확인할 수 있는 첩보를 입수한 것이다. 업소 한 관계자는 “국세청 간부들 외에 방에 2명이 더 있었다”라고 경찰에 털어놨다. 경찰은 곧바로 동석이 의심되는 인물 리스트를 확보했다. 인물들을 사진으로 뽑아 업소 관계자들에게 보여줬다. 동석자들이 삼일회계법인 출신 임원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뒤늦게 파악할 수 있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