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인듯 소주아닌 소주같은 ‘너 뭐야’
5월 1일 오전 서울 한 대형마트 소주 진열대에 롯데주류 ‘처음처럼 순하리’ 소주의 품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그런데 저도수 경쟁이 한창인 소주 업계에 난데없는 ‘달달한 공격’이 시작됐다. 롯데주류가 최근 선보인 ‘처음처럼 순하리’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순하리’는 천연유자과즙과 유자향이 첨가된 알코올 도수 14도의 칵테일 소주로 부드러운 목 넘김과 상큼하고 달달한 맛까지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덕분에 여성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출시 한 달 만에 130만 병이 판매됐다.
현재는 물량 부족으로 인해 원활한 공급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수도권의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2박스를 받아 매장에 깔면 그 즉시 품절이 된다. 이른 아침부터 술이 품절되는 상황은 처음 겪은 일이다. 소주계의 ‘허니버터칩’ 물량 부족 사태라는 말이 틀린 게 아니다. 소주 특유의 쓴맛이 없고 향도 좋아 특히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순하리’의 인기는 맥주에 밀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던 소주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허니버터칩이 큰 인기를 끈 이후 여러 종류의 유사품이 나오며 업계 전반에 호재로 작용했듯 ‘순하리’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예상되고 있는 것. 곧 성수기도 다가오는 만큼 소주의 옛 명성을 다시 찾을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도수가 한층 더 낮아졌다는 점도 원가 절감과 이어짐으로 업계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소주는 주정(알코올)을 물에 희석시키는 방식으로 제조돼 주정이 차지하는 원가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도수가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원가도 절감되고 이는 실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업계에서는 알코올 도수 1도를 낮추면 병당 10원가량의 원가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또한 도수가 내려가면 소비량도 증가한다. 기존 소주보다 도수가 낮아 같은 양을 마셔도 덜 취하기 때문에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 실제 2006년 20도 소주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소주 출고량이 전년보다 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주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저도수 소주가 인기를 끌면 끌수록 원가는 줄이고, 판매량은 늘릴 수 있으니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더 달고, 더 순한’ 소주를 만들어내고 있는 업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저도수 소주는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청소년 음주와 20대 초반 청년들의 과도한 음주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양한 도수의 소주가 출시되면서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진 장점도 있으나 ‘술 같지 않은 술(순한 술)’로 인한 폐해가 더 크다는 설명이다.
최근 만 24세 이하의 스포츠 스타, 연예인은 주류광고에 출현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하면서 이 같은 논란은 더욱 거세게 일고 있다.
김지현 청소년상담사는 “광고모델 연령제한도 아예 효과가 없진 않겠지만 그보다 먼저 개선해야 할 게 훨씬 많다. 음주로 상담소를 찾아온 청소년들로부터 ‘술이 맛있다’ ‘요즘 술은 술이 아니다’ 등의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도수가 낮아지고 여기에 단맛까지 첨가되면 술에 대한 청소년들의 경각심이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 술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과 맛있어지는 술에 대해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