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곳간 열어보니 현금 실탄 어마어마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하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지난해 말 기준 현금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유동자산만 9753억 원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가장 규모가 큰 곳은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하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이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유동자산만 9753억 원이다.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3278억 원의 투자자산까지 더하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만 1조 3000억 원에 달한다. 공익재단은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순자산은 전액 사용에 제약이 없는 이월금과 적립금 등이다.
주목할 점은 지난해 4145억 원이던 유동자산이 두 배 넘게 불어난 부분이다. 지난해 7월 삼성생명 지분 500만 주를 2650억 원에 매각한 결과다. 삼성생명 주주구성을 보면 이 회장 20%, 제일모직 19%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40%를 넘는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굳이 지분을 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 결국 불용자산 매각을 통해 현금을 확보한 셈이 된다.
삼성 측은 지분매각 당시 삼성서울병원의 결손금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이 매년 적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년말 삼성서울병원의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총액은 9314억 원에 달했다. 또 지난해 삼성서울병원 매출액도 1조 879억 원으로 전년(1조 102억 원)보다 7.7% 늘어난 데다, 영업적자(매출액-매출원가-판관비)도 907억 원에서 551억 원으로 줄었다. 굳이 주식까지 매각해서 자본을 늘릴 이유는 많지 않아 보인다.
삼성의 다른 병원과 비교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강북삼성병원을 운영 중인 삼성의료재단의 경우 수익사업(병원부문) 순자산은 2013년 –18억 원까지 추락했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한 눈에 띄는 조치가 없었다. 강북삼성병원은 2013년 9억 5000여만 원이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89억 3600만 원으로 급증하면서 자력으로 순자산을 76억 원의 플러스(+)로 전환시켰다.
재계 한 대관업무 관계자는 “시민단체에서는 후계승계에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이 자금을 쓸 것으로 이야기가 나온다”며 “다만 구체적으로 어디에 쓸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진행되는 시기에 지분을 매각했다는 점을 보면 지배구조 개편과 무관한 거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꿈장학재단도 상당한 자산을 보유한 곳이다. 지난 연말 기준 유동자산만 3450억 원이다. 또 마음만 먹으면 현금화가 가능한 증권형태도 4852억 원에 달한다. 다만 삼성꿈장학재단은 순자산 8081억 원 가운데 1005억 원이 사용에 일시적 제약이 있는 기부금이나 기금이며, 7180억 원은 사용에 영구적 제약이 있는 기본재산이다. 재단 자산을 지배구조 개선 등에 직접 동원할 여지가 크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국세청은 최근 삼성꿈장학재단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 중이다. 2002년 7월 삼성이건희장학재단으로 첫발을 뗀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비영리기관인 재단에 대한 첫 세무조사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다른 재벌계열 공익재단들도 삼성처럼 거대 자산을 가졌을까. 재계 2위 현대차그룹에는 정몽구재단이 있다. 정의선 부회장이 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 지분 167만 1018주(4.45%), 이노션 지분 18만 주(10%)를 보유하고 있어 지배구조와 연관이 없지 않다. 이노션은 상장을 추진 중이다. 유동자산은 채 27억 원이 안되지만 시장성 있는 계열사 지분은 필요하면 현금화가 가능하다. 1조 원이 넘는 순자산 가운데 사용에 제약이 없는 이월금이나 적립금이 7151억 원이나 된다. 현대차그룹도 아직 정 부회장으로의 후계구도가 마무리되지 않아 앞으로 정몽구재단의 역할을 주목할 만하다.
반면 LG연암재단은 총자산이 1782억 원이지만 유동자산은 62억 원뿐이다. 대부분이 현금화가 어려운 비유동자산이다. 순자산도 1664억 원 가운데 사용에 제약이 없는 이월금과 적립금 등은 732억 원뿐이다. 나머지 900억여 원은 공익목적으로만 사용이 제한돼 있다. 계열사 지분도 ㈜LG 지분 57만 주(지분비율 0.33%), ㈜GS 지분 31만여 주(0.33%), LG생명과학 지분 8만여 주(0.48%)에 불과해 지배구조와는 거리가 멀다. SK도 행복나눔재단이 있지만 주요 계열사 지분도 없고 총자산도 500억 원에 불과하다. 순자산 480억 원 가운데 380억 원이 사용에 제약이 없지만 삼성, 현대차, LG의 재단 등과 비교했을 때 절대금액 자체가 적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