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5그루 꿈나무들 ‘놀이동산 대신 반상으로…’
원 안은 최강부에서 우승한 한우진 군(왼쪽)과 준우승한 문지환 군이 신상철 <일요신문> 사장과 포즈를 취한 모습. 아래 사진들 맨 왼쪽은 최강부 결승전 대국. 가운데는 부모 스승님과 펼쳐진 ‘환상의 짝궁, 2인 1조 바둑대항전’. 맨 오른쪽은 심판위원이자 다면기에 참여한 프로기사들로 왼쪽부터 이호범 4단, 이민진 7단, 김신영 초단.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5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SK핸드볼경기장에서 ‘제4회 일요신문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가 막을 올렸다. <일요신문>이 주최하고 (사)대한바둑협회와 한국초등바둑연맹이 주관하며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스포츠토토에서 후원한 이번 바둑대회는 ‘Hello baduk’이라는 슬로건으로 개최됐다.
개막식은 바둑계의 귀빈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일요신문>의 신상철 사장(한국중고바둑연맹 회장)을 비롯해 한국초등바둑연맹 강준열 회장, (사)대한바둑협회 차재호 사무국장, 한국초등바둑연맹 이승주 부회장, 바둑TV 명해설자 심우섭 아마7단과 이민진 7단, 이호범 4단, 김신영 초단 등이 참석했다.
대회를 주최한 <일요신문>의 신상철 사장(한국중고바둑연맹 회장)은 개회사에서 “바둑대회가 4회째를 맞이하면서 점점 대회가 자리를 잡고 성숙해가고 있다”며 “Hello baduk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새로운 만남과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여러분들도 기존에 하던 컴퓨터 게임 대신 3000년 이상 된 게임인 바둑을 주변 친구들에게 소개시켜줬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지금부터 대국을 시작하겠습니다.”
오전 10시 30분 신상철 사장의 힘찬 개국 개시 선언으로 경기는 시작됐다. 이번 바둑대회는 최강부, 유단자부, 고급부, 중급부, 꿈나무부, 샛별부, 새싹부 등 총 15부로 나뉘어 바둑 유망주 어린이 총 925명이 참가해 바둑 실력을 겨뤘다. 어린이와 함께 온 학부모를 포함하면 총 25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초등바둑연맹 강준열 회장은 “어린이 바둑대회 중에서는 이렇게 큰 규모를 본 적이 없다. 그만큼 대회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경기는 예선부터 치열한 승부와 더불어 ‘축제’를 방불케 했다. 대회 최연소 참가자인 김민 군(5)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참가자들과 겨뤄 2승 1패의 뛰어난 성적을 거둬 3자 동률을 이뤘지만, 아쉽게 추첨으로 예선 탈락을 했다. 인터뷰 내내 생글생글한 표정을 지은 김민 군은 “두 번 이겼는데 떨어져서 아쉽다”며 “바둑이 너무 재밌어요”라고 전했다. 처음 대회에 참가했다는 배찬진 군(신풍초 4)은 “오늘 첫 대회인데 2승 무패로 본선 진출을 해서 무척 기분이 좋다. 경기마다 대마를 잡은 게 좋은 결과로 나온 것 같다. 끝까지 분발하겠다”라고 전했다.
오후 5시가 되자 입상자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대회에서 아깝게 탈락한 참가자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유단자부는 치열한 접전 끝에 주한중(KIBA 국제학교)이 김영광(중원초)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일요신문배 제3회 어린이 바둑대회에서 예선 탈락을 했다는 주한중 군은 “우승을 하게 되어서 정말 기쁘고 상금은 부모님께 다 드릴 것이다. 내년에는 최강자전에 꼭 출전해서 TV 화면으로 중계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고급부 우승은 김정우(여문초), 준우승은 민주영(의왕초), 일반부 우승은 함지성(화랑초), 준우승은 김요한(성원초)에게 돌아갔다. 일반부 우승자 함지성 군은 “작년 1승 3패로 예선탈락해서 기분이 안 좋았지만 이번에 우승해서 기분이 너무 좋다”며 “앞으로 집안에 우승컵을 계속 쌓고 모으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어린 바둑 유망주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1~3학년 중급부 우승은 박현성(금장초), 준우승은 양종윤(응암초)에게 돌아갔다. 4~6학년 중급부 우승은 서지유(중원초), 준우승은 김현종(신자초)이 차지했다. 중급부 우승자 서지유 군은 “바둑학원을 1년 정도 다녔다. 8전을 위기 없이 전승했다. 앞으로 더 우승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1~3학년 꿈나무부 우승은 이오우(송촌초), 준우승은 유민상(동자초)이 차지했다. 4~6학년 꿈나무부 우승은 김대희(상갈초), 준우승은 정윤서(송현초)에게 돌아갔다. 꿈나무부 우승자 이오우 군은 “3~4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8번 다 이겼다.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라고 전했다. 이밖에 ▲샛별부(1~3학년) 우승 조준우(미양초) ▲샛별부(4~6학년) 우승 고세웅(동자초) ▲새싹1학년부 우승 박우진(부곡초) ▲새싹2학년부 우승 심동준(능내초) ▲새싹3학년부 우승 황동언(상갈초) ▲새싹4학년부 우승 조예준(석성초) ▲새싹5~6학년부 우승은 김진원(미래초)에게 돌아갔다.
기력이 가장 높은 최강부(아마4단 이상) 결승은 단연 대회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날 최강부 결승은 문지환(삼산초 6)과 한우진(신도림초 4)이 맞붙었다. 초반에 백을 든 문지환이 날선 기세로 흑 한우진을 제압하는 모양새였지만 이윽고 백이 대마를 잡히는 바람에 흑이 131수 불계승을 거뒀다. 승자가 결정될 때까지 걸렸던 시간은 대략 40분. 그만큼 치열하고 빠른 승부가 이뤄졌다. 준우승자 문지환 군은 “대마를 살렸어야 하는데 욕심을 내다가 패했다. 일요신문배 어린이 바둑대회를 이제까지 다 참여했다. 1, 2회 때는 탈락하고 3회 때 16강에 올라가서 탈락했는데 이번에 준우승하게 되어서 매우 기쁘다. 내년에는 중고 바둑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우승자 한우진 군은 “작년 대회 때 유단자부 16강에서 탈락해서 슬펐는데 올해는 우승하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이동훈 프로기사를 가장 존경한다. 그 분처럼 되고 싶고 앞으로 우승을 많이 하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최강부 우승자인 한우진 군에게는 100만 원의 장학금과 상장이, 준우승자 문지환 군에게는 장학금 50만 원과 상장이 돌아갔다. 이와 더불어 최강부, 유단자부 우승·준우승자에게는 ‘제4회 아시아학생바둑대회’ 참가 자격이 주어졌다.
이렇게 제4회 일요신문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지난해 3회 대회 때부터 심판위원으로 참가한 김신영 초단은 “지난해 대회 때보다 아이들의 실력이 더욱 발전하고 대회 규모도 커져 무척 보기 좋았다”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어린이날 축제 한마당 친구·부모·스승님과…‘환상의 짝궁’ 이벤트 제4회 일요신문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는 대회 전 다채로운 사전행사로 눈길을 끌었다. 대회 전 경기장 입구에서 진행된 페이스페인팅, 티셔츠 증정 등으로 참가 어린이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일본에서 홀로 비행기를 타고 온 고타로 군(왼쪽)과 페이스페인팅 행사 모습. 개회식 때 개최된 학부모 대상의 행운권 추첨에는 다양한 상품이 등장했다. 행운권 추첨 1등은 70만 원 상당의 아이패드(1명), 2등은 외식상품권(1명), 3등은 고급 와인(3명), 4등은 휴대용 바둑판(8명), 5등은 <일요신문> 1년 정기구독권(30명) 등이 증정됐다. 대회 본선 과정에서는 ‘한일전’도 눈길을 끌었다. 대회 하루 전 일본에서 혼자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후쿠오카 고타로 군(쓰쿠바대학교 부속초 2)은 이날 남다른 집중력으로 경기에 임했지만, 아쉽게도 3전 전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고타로 군은 “바둑을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다. 앞으로 3개월간 한국에서 연수를 할 예정이다. 프로기사가 될 때까지 바둑을 계속 두고 싶다”라고 전했다. 고타로 군은 국내 아마계 바둑대회를 석권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홍맑은샘 사범이 운영하는 도장에서 바둑공부를 해왔다. 프로기사와 함께하는 다면기에서는 대회에 심판위원으로 참가한 이민진 7단, 이호범 4단, 김신영 초단이 총출동했다. 다면기를 끝낸 이민진 7단은 “어린이날 때 이런 대회를 갖는 게 참 유익한 것 같다. 아이들의 발랄한 한 수, 한 수를 보면서 기분이 뿌듯했다. 아이들에게 큰 추억이 됐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이벤트는 친구, 엄마, 아빠, 스승님과 함께 하는 ‘환상의 짝꿍, 2인 1조 바둑대항전’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 시도하는 이벤트인 2인 1조 바둑대항전은 아빠와 엄마, 아들, 딸, 스승과 제자 등이 팀을 이뤄 대국을 벌여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주은 씨(57)는 제자인 김도경 군(아산초 6)과 함께 참여했다. 이 씨는 “제자랑 같이 호흡을 맞춰보니 아주 좋았다”며 “이런 큰 대회를 열어준 일요신문에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환] |
최강부 결승국 의젓한 두 아이 총기 반짝반짝 최강부 결승전은 경기장 2층 VIP실에서 진행되었다. 대국실 환경이 그럴 듯하다. 프로 고수들이 결승전을 벌이는 한국기원의 특별대국실 못지않다. 계시기가 잘 작동되는지 확인하고는 안락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호흡을 고르는 두 주인공, 초등학생 같지 않게 너무 의젓해 대회 관계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난다. 장소가 분위기를 만들고 바둑 두는 어린이들은, 실력이 유단자급 되면, 바둑판 앞에 앉으면 저토록 어른스러워진다. 이미 대회 경험이 많은 탓인지, 결승전인데도 상기되거나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대국실에는 기록자까지 세 사람뿐이고, 녹화 카메라가 소리 없이 돌아가고 있다. 한우진 군이 흑을 들었다. 나이에 비해 덩치는 좀 작고 여린데, 정말 총명해 보인다. 문지환 군은 듬직하고, 눈매에서는 승부사 기질이 느껴진다. 초반에는 흑이 실리로 앞서 나갔다. 그러나 좌하귀 일대 공방에서 백이 노련한 수순을 구사하면서 큰 집을 만들었다. <1도> 백1과 흑2가 교환된 시점에서는 백이 괜찮은 국면이다. 흑은 도처에 실리를 장만했지만, 좌변 일대 백집이 40집이 넘어 흑집 전체를 너끈히 감당하고 있다. 그런데 상변에 들어간 백3이 좀 지나쳤다. A 정도로 어깨짚어 부드럽게 삭감하는 것이 온당했으며, 그랬으면 백이 계속 유망했다는 것. 흑은 <2도> 1~7로 백의 한쪽 퇴로를 차단하며 공격 채비를 갖추고, 백은 8로 붙여 기대면서 14까지 수습에 나서는데, 물론 단곤마여서 쉽게 잡힐 말은 아니지만, 좌상 부근이 흑의 철벽이어서 당분간 고생은 좀 할 것으로 보인다. 흑15,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승부처다. <3도>는 <2도>에서 10여 수가 진행된 장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흑1은 급소. 백의 형태가 조금 여의치 않다. 그래도 아직 활로는 있어 보이며, 일단 살면 백이 나쁘지 않는 형세여서, <4도> 백1~흑6 다음 백이 A를 선수하고 B쪽을 막아 살아둘 자리였는데…. <5도> 백1-3으로 단수, 단수한 것이 ‘아차!’였고, 패착이 되었다. 흑4로 되끊고 6으로 이은 것이 통렬한 반격. 백 대마의 생사가 애매하게 되고 말았다. 계속해서 백A로 끊으면? 흑은 B로 나간다. 백A로 끊지 않고 백B로 여기를 막으면? 흑은 이번에는 C쪽으로 나간다. 백은 몇 수를 더 두어보다가 돌을 거두었다. 백 대마는 잡혔고, 바둑은 131수 단명국으로 끝났다. 바둑이 끝나고 곧바로 복기를 시작한다. 좌하변에서의 공방, <1도>의 백3, 대마 사활을 검토하며 의견을 주고받는다. 문 군이 한 군을 보며 활짝 웃었고, 한 군은 총명한 눈을 깜박깜박하며 웃음을 감췄다. 두 어린이는 모두 ‘양천대일도장(원장 김희용)’에서 함께 공부하는 형, 동생 사이. 양천대일은 대단한 도장이다. 프로기사가 운영하는 바둑도장이 아니다. 1999년에 문을 열어 2002년 김은선(27·여자프로 4단)을 시발로 지금까지 29명의 남녀 프로기사를 배출하는 발군의 성적으로 프로기사 바둑도장들과 만만치 않게 경쟁하고 있다. 이날은, 김 원장은 두 제자가 결승전에 올라가자 누구를 응원할 수 없어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일찍 대회장을 떠났다. 이광구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