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은 치료제 아냐” 약 대신 푹 쉬며 극복~
최근 일본 대중지 <주간겐다이>가 현역 의사 20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내성이 생기거나 부작용이 따른다는 이유로 정작 의사들은 피하는 약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과연 일본 의사들이 말하는 ‘먹고 싶지않은 약’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도쿄에서 내과를 운영하고 있는 A 원장은 ‘어떤 약’을 먹고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이 있다. “수련의 시절, 심신이 극도로 지친 나머지 감기에 걸리고 말았어요. 열이 나고 콧물도 나서 증상을 가라앉히는 약을 먹었죠. 그런데 일을 마치고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엄청난 졸음이 쏟아지는 거예요.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죠. 그런 약은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네요.”
문제의 약은 비피린계 과립제 종합감기약으로,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가면 이 약이 처방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 A 원장은 “당시엔 감기약이 이렇게 부작용이 심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감기 증상을 억제하는 데는 좋은 약이지만, 사람마다 부작용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널리 쓰이는 약물이라고 해도 실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따라서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의사들은 “나 자신은 물론이요, 가족들에게는 절대 먹이고 싶지 않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주간겐다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은 의사들이 ‘복용하고 싶지 않다’라고 대답한 약은 뜻밖에도 감기약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내과 전문의는 “엄격히 말하면 감기약은 치료제가 아닌 증상완화제다. 종합감기약(PL배합 과립)에는 진통제 성분이 들어 있어 계속 복용하면 위에 좋지 않다”고 밝혔다.
감기약뿐만 아니라 “독감약도 먹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두드러졌다. 그 중에서도 타미플루로 잘 알려진 오셀타미비르 성분을 지목한 의사들이 많았다. 일본 예방의학협회 대표이사인 긴조 미노루 씨는 “실제로 독감환자에게 이 성분을 투여하면, 특히 어린아이들의 경우 심한 흥분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고 전하면서 “타미플루는 가급적 복용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은 약을 먹지 않아도 “충분한 수분 섭취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자면 그걸로 괜찮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싶지 않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독감에 걸렸을 때 투여하는 항바이러스제는 사실 바이러스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약의 작용은 세포 내 증식한 독감 바이러스가 세포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막는 데 있다. 즉, 독감 초기에 복용해야만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이미 독감 바이러스가 몸속에 퍼졌을 땐 복용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게다가 사람에 따라 환각증세 등 부작용이 클 수도 있으니 복용하고 싶지 않은 건 어찌 보면 당연지사다.
감기약, 독감약 외에 통풍약 때문에 호되게 당한 의사도 있다. 도쿄 도내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줬다. “2년 전 요산 수치가 높아져 통풍치료제인 벤즈브로마론을 복용하기 시작했어요. 한 달쯤 지나서 소변 색이 짙어지고 목에 갈증을 쉽게 느껴 ‘왜 그러지?’하고 혈액검사를 해보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요산 수치는 떨어졌지만, 간 기능 수치가 크게 악화됐던 겁니다. 그 후 바로 약을 중지했죠.” 이 의사는 “아마 모르고 약을 계속 복용했다면 간기능 부전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면서 “지금 생각해도 무서운 경험이었다”고 털어놨다.
통풍과 함께 대표적인 생활습관병으로 꼽히는 당뇨병 약 또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의사들의 지적이 많았다. 오랫동안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지바현의 종합병원 원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당뇨병 약을 복용했는데 내성이 생겨 그만둔 약도 많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당뇨병치료제 성분인 글리벤클라미드는 췌장을 자극하고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만, 계속 복용할 경우 췌장이 피로해져 더 이상 효과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
내과 전문의 후지 아키오 씨도 “글리벤클라미드 복용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의 설명을 빌리자면 “글리벤클라미드의 부작용 중 제일 무서운 것이 저혈당인데,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가 되거나 심혈관 질환에 의한 돌연사 위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절대 먹고 싶지 않은 약”이라고 잘라 말했다.
‘치매의 진행을 막는다’는 광고로 1999년에 발매되어 인기를 끌었던 도네페질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의사들이 많았다. 관동의료클리닉 원장인 마쓰모토 미쓰마사 씨는 “치매가 약으로 치료될 리 없지 않은가. 약물의 효능을 읽어봐도 ‘치매에 효과적’이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쓰여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도네페질을 ‘복용하고 싶지 않은 약’으로 뽑았다.
이와 관련, 실제로 도네페질 등 치매약을 환자에게 처방하고 있다는 한 치매 전문의는 “그동안 많은 치매환자에게 약을 처방해왔지만, 약을 복용해도 증세가 빨리 진행되는 환자들을 많이 봐왔다. 그럼에도 치매약을 처방하는 것은 가족들이 ‘꼭 약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차마 “이런 약은 의미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주간겐다이>는 “많은 의사들이 의미 없는 약을 환자에게 처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물론 약을 처방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이것 외에도 특별한 약효가 없는 약을 먹더라도 환자가 믿으면 실제로 증세가 호전되는 플라시보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
사이타마현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오히려 약을 먹지 않는 편이 좋을 때가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처방하지 않으면 환자가 불평한다. 환자 쪽에서는 모처럼 병원에 왔는데 약을 처방받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면서 “평판이 떨어지는 게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처방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우리가 병원에서 처방받는 약들은 정말 필요한 것일까. 아무런 의심 없이 복용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효과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부작용만 따르는 약이라면 어떨까. <주간겐다이>는 “처방하는 의사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