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줄 알았더니 물 건너가 말썽
베트남 바다이야기 오픈식에는 현지 유명 모델들이 직접 방문했다. 하지만 현지 상품권 성인 오락실은 자체가 불법인 것으로 확인됐다. 오른쪽 사진은 현지 교민 신문에 실린 바다이야기 홍보전단지.
지난해 12월 인천강화경찰서에 한 건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고소장에는 베트남에 바다이야기 사업을 하려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주장이 적혀 있었다. 고소장을 제출한 이 아무개 씨(46)는 “합법적인 영업이라고 속아 그대로 투자를 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라고 하소연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씨는 지인의 소개로 김 아무개 씨(44)를 처음 만났다. 이 씨는 “(김 씨가) 베트남에서 바다이야기를 영업할 수 있게 정식 허가서를 발급해줄 수 있다. 상품권 예치금 2억 원만 은행에 예치하면 합법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으니 투자를 하라고 요구했다”라고 주장했다.
이 씨는 ‘바다이야기’라는 얘기에 솔깃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섰다. 성인오락실인 만큼 허가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가 워낙 배경이 좋아 신뢰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이 씨에 따르면 김 씨는 베트남에서 모델 기획사와 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고 한다. 이 씨는 “김 씨는 은연중에 자신이 베트남 실세들과 친분이 두텁다고 자주 어필하곤 했다. 김 씨의 부인 역시 베트남 사람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는데, 베트남 재무부 장관과 문화부 차관의 일가친척이라고 소개했다”라고 전했다.
바다이야기 상품권. 고소인 측은 상품권이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씨는 이후 김 씨의 요구에 따라 투자를 하기 시작한다. 고소장에 따르면 투자금 명목은 (베트남) 문화부 정식 인허가비 3억 5000만 원, 상품권 은행 예치금 2억 원, 오락기계 114대와 인테리어 1억 원 등 총 ‘8억 7000만 원’에 달했다. 이 씨는 투자금 일부를 은행 계좌로 송금하거나 나머지는 현금을 직접 주는 방식으로 전달했다.
그렇게 ‘바다이야기’는 베트남 상륙 준비를 완료했다. 실제로 바다이야기는 지난해 7월 베트남 호치민 지역에서 오픈을 했다. 성대한 오픈식에는 베트남 유명 모델들이 직접 방문했다. 베트남 교민 신문에는 ‘한국 바다이야기 베트남 상륙 오픈 영업 중’, ‘최고 잭팟 1억동’ 등의 문구가 써진 광고 전단지가 실렸다.
하지만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바다이야기’는 오픈 직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손님 유치부터 대리점 상담까지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이 씨는 “오픈식은 성대하게 치렀지만 이후 손님 유치나 운영에 김 씨가 슬슬 뒤로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대리점을 상담할 때 사람들이 ‘인허가증’을 좀 보여 달라고 해서 김 씨에게 이를 요청하자 김 씨가 ‘나를 못 믿느냐’고 짜증을 내기에 ‘뭔가 이상하다’라고 직감을 했다”라고 전했다.
이후 이 씨는 현지 변호사를 통해 김 씨가 제시한 인허가증과 계약서 등이 모두 허위인 사실을 파악하게 됐다고 한다. 이 씨는 “김 씨가 제시한 인허가증이나 문서들은 모두 조작되거나 말도 안 되는 문서였다. 심지어 상품권 발행 명목으로 은행에 예치했다는 금액은 김 씨가 자기 부인의 적금으로 들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며 “베트남에는 상품권 성인 오락실이 아예 불법으로, 심의 자체가 없었다. 한 마디로 완벽하게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현지 변호사를 통해 파악한 결과 베트남에는 상품권 성인 오락실이 불법인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수억 원을 날린 이 씨는 김 씨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이후 김 씨는 인터폴 수배를 통해 지난 3월 국내로 들어오게 됐고,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고소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아직 수사 초기 단계라 혐의는 명확히 드러난 게 없다”라고 전했다. 김 씨는 현재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고소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변호사와 상의해본 후 연락을 주겠다”며 짤막하게 답변한 후 전화를 끊었다.
한편 취재 과정에서 이 씨와 비슷하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다른 이들도 접촉할 수 있었다. 피해를 당했다는 A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김 씨가 자신이 인허가증이 있고 바다이야기를 운영할 수 있다고 얘기해 수천만 원을 투자했으나 결국 인허가증이 모두 엉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김 씨가 베트남에 있었기에 신고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시간이 흘러갔다”라고 주장했다. 김 씨를 잘 알고 있다는 베트남의 한 교민은 “김 씨에게 크게든 작게든 당한 피해자들이 아마 여럿 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워낙 치외법권 지역이라는 인식 때문에 한국 경찰에 신고가 쉽지 않다. 김 씨와 베트남 마피아가 친하다는 얘기도 있어서 함부로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이에 대한 김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김 씨에게 수차례 전화, 문자 등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국 닿지 않았다.
결국 이번 ‘베트남 바다이야기 사건’은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사기 여부를 비롯해 구체적인 피해 규모 및 추가 피해자 여부 등이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가 쉽지는 않다”며 고개를 젓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일어났으니 쉽게 밝혀낼 수 있겠느냐. 게다가 쌍방 고소사건이기 때문에 김 씨가 정말 사기를 저질렀는지 확신할 수도 없다. 아직 명확한 조사계획도 잡히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