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는 어디가고 암담한 미래만…
미래부의 주요 업무가 다른 경제부처와 중복되자 힘겨루기에서 밀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국정감사에서 최양희 장관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직원은 미래부 신설 당시 다른 경제부처가 모두 세종시로 이전하는데 미래부만 과천에 남은 것을 반겼다. 결혼을 앞둔 배우자도 서울에 근무하니 아무래도 세종시는 부담스러웠다.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부의 파워도 높을 것으로 기대했다. 지식경제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핵심 업무를 이관 받았고, 우정사업본부까지 가져왔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공룡부처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3년차에 접어들면서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미래부가 창조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창업 정책은 이미 기획재정부에 빼앗겼다. R&D 정책은 호시탐탐 사업을 노리던 산업부와 교육부가 가로챘다. 그나마 남아 있던 통신 주파수할당 등 통신 정책은 다시 방통위로 회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분위기는 지난해 말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미래부의 주요 업무가 다른 경제부처와 중복되자 힘겨루기에서 밀렸다. 청와대에서도 미래부보다 산업부나 국토부 등 기존 경제부처에 힘을 실어줬다.
#바람 잘 날 없는 미래부…첫 단추부터 꼬였다
미래부는 박근혜 정부의 상징이자 핵심이다. 아직도 정부에서는 최고의 경제부처로 꼽힌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엉망진창이다. 정보기술과 과학, 통신은 아직도 ‘물과 기름’ 같은 존재다. 내부에서 협업도 제대로 되지 않는데 박근혜 정부의 큰 골격인 ‘창조경제’가 어떻게 순항할 수 있을까.
당초 미래부 신설 취지는 우리나라 벤처산업 육성과 정보과학기술(ICT)의 컨트롤타워 임무였다. 제2의 벤처붐을 통해 대기업 위주의 산업 생태계를 바꾸고자 하는 박 대통령의 의지인 셈이다. 이런 미래부의 신설에 대해 산업계에서는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 다만 미래부 설립 취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문제는 초대 미래부 장관 선임이었다. 김종훈 후보자가 자질론에 휩싸이며 자진 사퇴를 하면서 미래부의 장밋빛 청사진에 어두운 먹구름이 몰려왔다.
당시 미래부로 자리를 옮긴 공무원들은 미래부가 정치적 대립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교육과학기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4개 부처와 14개 산하기관은 미래부 출범이 제동이 걸리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종훈 후보자 사퇴 이후 취임한 최문기 장관은 2년간 창조경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기자들 질문에도 ‘그 얘기는 하지 맙시다’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최 장관 스스로도 창조경제 개념을 정립하지 못했다는 꼬리표가 퇴임식까지 이어졌다.
구원투수로 올라온 최양희 장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취임사에서 최 장관은 창조경제를 3차례밖에 언급하지 않았다. 그나마 언급한 것도 창조경제에 대한 방향성보다 문맥 흐름에 포함되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창조경제를 일자리 창출로 연계시키면서 당초 취지가 반감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흔들리는 컨트롤타워…부처 먹잇감으로 전락
가장 먼저 미래부 사업에 개입을 한 것은 청와대와 산업부다. 미래부가 대기업 참여에 소극적으로 일관하자 청와대가 산업부에 자문을 구하면서 주도권을 빼앗겼다. 예산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도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 이미 최고 실세로 꼽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창조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모양새가 됐다.
정부 부처 한 관계자는 “미래부 정책이 점차 다른 부처로 쪼개지는 양상이다. 사공이 많다는 것”이라며 “혁신센터의 경우 지자체 눈치를 봐야 한다. 이미 미래부의 장악력이 실종된 상태”라고 말했다.
정부와 업계에서는 창조경제를 다음 정권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벤처 육성 경험이 있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맡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3년차 접어들면서 창조경제의 틀이 산업부로 상당수 이관되는 분위기다. 학계에서는 벌써부터 산업부가 창조경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 대학 교수는 “유명무실해진 미래부보다 그동안 창업 육성을 추진한 산업부가 기업과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유민 언론인
미래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정치싸움 희생양… 핵심기능 조각조각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정권과의 정부조직 개편 차별화를 위해 ‘미래부’ 카드를 야심차게 추진했다. 하지만 공식 출범 때부터 말이 많았다. 부처 이기주의와 여야 협상의 산물로 태어난 미래부의 조직은 ‘누더기’가 돼 버렸다. 미래부를 둘러싼 방통위의 일부 기능 이관을 두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벌였다. ICT 및 ICT융합 산업의 진흥과는 무관한 정치 싸움으로 미래부는 주파수 관할, 방송 정책 등 일부 핵심 기능이 쪼개졌다.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 현판 제막식.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문가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야 합의’를 위해 주파수 정책 기능을 미래부, 방통위, 국무총리실로 나누었다. ICT 산업의 핵심 자원인 주파수 정책이 시대착오적 탁상행정으로 나눠지면서 규제만 강화됐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ICT 산업에 있어 미래부의 힘이 집중되기도 힘든 상황이다. 미래부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소프트웨어 산업 기능을 이관해 왔지만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는 남겨뒀다. 문광부에서 게임산업도 넘겨 받지 못했다. 이처럼 ICT 업무의 분산으로 미래부의 ICT예산은 정부예산의 0.5%인 1조 5000억 원에 불과한 수준으로 책정됐다. 지난 2007년 정통부의 예산은 2조 2000억으로 정부예산의 0.9%였다. ICT 융합산업을 기반으로 창조경제를 이끌 핵심부처의 예산이라고 하기에 너무나도 초라했다. 당시 관가에서는 “산업 측면에서 볼 때, 미래부 구성이 바람직하게 됐다고 보기는 힘들다”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지금 현실이 됐다.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부처 1개를 놀리면서 세금만 낭비한 꼴이 됐다. [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