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당황할 때마다 숨죽여 웃는다
4월26일 오후 7시경. 도쿄 네리마구에서 한 남성이 길을 걷고 있던 여고생을 자전거로 추월해 머리에 커피를 붓고 달아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네리마구 인근에서는 비슷한 수법으로 커피나 홍차를 끼얹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는 10~40대로 모두 여성이었다.
이노마타 고타
희한한 일은 이와 유사한, 즉 여성에게 액체를 쏟는 사건이 최근 일본에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4월 8일 도쿄 에도가와구에서는 한 40대 남성이 지하철 안에서 여고생(18)의 스커트에 자신의 정액을 묻히다 발각됐다.
용의자 남성은 미혼이었으며, 3년간 무려 100차례 이상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동기에 대해서는 “처음 범행을 저질렀을 때의 쾌감을 잊지 못해 한 달에 2~3번씩 반복해왔다”면서 “내겐 유일한 즐거움이었다”고 밝혔다.
음료수와 체액은 그나마 양호한 축에 속할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욱 위험천만한 액체가 범행에 쓰인 사례도 있다. 지난 4월 2일 군마현에서는 회사원 여성(23)이 의문의 남성으로부터 황산 테러를 당해 발목에 경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슷한 시기 다른 4명의 여성도 동일범으로 보이는 남성에게 피해를 입어 경찰이 즉각 수사에 나섰다. 특이사항은 5명의 피해 여성 중 4명이 검정 스타킹의 스커트 차림이었다는 것.
기타무라 노리아키
더욱이 12월에는 자신의 정액과 소변이 든 캔을 여성의 가방에 몰래 넣어 기물손괴 혐의로 또 다시 체포되는 등 몇 번이나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이다. 당시 기타무라 용의자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 스트레스를 풀고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극히 미량일지라도 여성에게 황산을 가한 행위는 자칫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상황.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반드시 기타무라 용의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도쿄미래대학의 범죄심리학과 데구치 야스유키 교수는 “범행 도구가 정액과 소변에서 황산으로 증폭된 점”을 지적하며 “전형적인 ‘에스컬레이터 범죄’의 패턴이다. 단순한 괴롭힘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피해자가 어떤 반응을 할지 기대하는 범죄로, 점점 성에 차지 않아 신체적 고통을 주는 방법이 고조되어 가는 특징이 있다”고 위험성을 알렸다.
그렇다면 왜 하필 액체를 쏟는 범행을 저지르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정신과 의사인 와다 히데키 씨는 “상대에게 무언가를 끼얹는 행위는 지배욕 또는 정복욕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범인은 액체를 쏟아 상대방을 더럽히는 걸 통해 자신이 승리했다고 여긴다는 것. 싸움을 하기 전 상대에게 침을 뱉는 행위도 이런 심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일단, 황산 사건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 5명 중 4명이 검정 스타킹을 신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와다 의사는 “검정 스타킹은 강한 여성성의 상징으로 범인은 그걸 정복하고 싶다고 여겼을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어쩌면 “범인은 여성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거나 반대로 위험한 성벽(性癖)의 소유자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사회심리학과 교수인 우스이 마후미 씨도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우스이 교수는 “범인들이 대부분 무직이거나 사회 소외계층인 것으로 볼 때 평소 실현할 수 없었던 여성에 대한 지배욕이 삐뚤어진 방식으로 표출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덧붙여 그는 ‘여성에게 정액을 묻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이렇게 전했다. “흔히 성인비디오(AV)에서 여성의 얼굴에 사정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는 정복욕의 표현이다. 범인이 여성에게 정액을 묻히는 것도 연장선에 있는 행동이다.”
한편 지난 4월 한 달 동안 교토, 시즈오카, 나라 등 일본 각지의 사찰 건물에 누군가가 기름을 끼얹는 사건이 30건 가까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는 사람 대신 건축물에 액체를 끼얹은 것으로 ‘정복욕’이나 ‘지배욕’과는 무관한 듯 보인다.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신과 의사 와다 씨는 “예로부터 신성한 장소에 소변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일종의 권위주의에 대한 반항이자, 신성을 모독하는 행동을 통해 만족감을 얻으려는 것이다. 사찰의 귀중한 건축물에 기름을 끼얹는 행동 또한 비슷한 심리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더 빌리자면 “특히 지배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이런 욕구는 강해진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본 주간지 <주프레뉴스>는 “소득 불평등으로 계급 격차가 커진 일본 사회에서 앞으로 액체를 끼얹는 범죄가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