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라마 속 요리가 오늘 우리집 식탁에 짠~
본격 먹방 드라마를 표방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tvN <식샤를 합시다2>의 홍보 포스터와 드라마 속 음식들.
케이블 채널 올리브TV에는 먹방의 원조 격인 <테이스티로드>가 시즌5까지 롱런 중이고,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 <올리브쇼> 등이 인기다. tvN에서는 <삼시세끼>, <수요미식회>, <한식대첩>을 비롯해 본격 먹방 드라마를 표방하는 <식샤를 합시다2>가 주가를 올리고 있다. 이밖에 <맛있는 녀석들>(코메디TV), <식신로드>(K STAR), <냉장고를 부탁해>(JTBC)와 지상파의 푸드멘터리(푸드 다큐멘터리) <요리인류>(KBS1) 등 거의 모든 채널에서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다.
TV에서 시작된 미식 열풍은 브라운관을 뚫고 나왔다. 과거에는 TV에서 소개하는 맛집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라 찾기가 어려웠지만, 이젠 해당 프로그램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때문에 방영 바로 다음날부터 손님이 밀려들고, 온라인에 관련 후기는 쏟아진다.
<수요미식회>에 방영돼 유명해진 한 음식점 사장은 “예전엔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이었는데 방송 바로 다음날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이제 주말에는 11시 30분이면 이미 재료가 동난다. 평일에도 2시면 끝난다”며 열기를 전했다. 지난 28일 점심시간이 지난 때에도 홍대입구역 인근의 TV 방영 맛집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다른 상점에 손님이 없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미식 열풍이 거세지면서 대기업들도 숟가락을 얹고 있다. 하나카드는 지난 3월 tvN의 ‘먹방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 방영을 앞두고 ‘식샤 카드’를 출시했다. 음식업종 5%, 주요 커피전문점 10% 할인 혜택을 제공해 외식에 특화했다. 유통업계도 맛집 모시기에 공들이고 있다. 과거 대형마트나 백화점 푸드코트는 프랜차이즈가 차지했지만, 이제 서울 홍대 앞, 이태원 일대의 ‘핫플레이스’가 입점하기도 한다. 작은 가게로 시작한 햄버그스테이크 집, 떡볶이 집, 케이크 가게 등이 대형 쇼핑몰 매장 한 쪽을 당당히 차지하거나, 백화점 지하에 팝업스토어를 열어 인기를 끌고 있다. 부산에 있는 한 노점상 호떡집은 먹방 열풍에 힘입어 백화점에 입점하기도 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와 올리브TV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 포스터.
맛집 탐방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를 좌우명으로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길 원하는 것. 28일 오후 3시쯤 홍대 앞 스테이크 집에서 2시간째 기다리던 정 아무개 씨(21)는 “어차피 먹어야 한다면 맛있는 걸 먹으면 더 좋지 않나. 먹방 프로그램을 즐겨 보면서 가고 싶은 곳은 찾아서 메모해 둔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맛집 탐방을 목적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맛집 블로거 김 아무개 씨(22) 역시 “최장 6시간까지 기다려봤다. <테이스티로드>에 나오고 바로 다음날 찾아갔는데 큰길까지 줄을 서 있더라. 겨우 곱창 한 번 먹어보겠다고 반나절을 기다리는 게 남들 눈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나한텐 중요하다”고 말했다.
‘먹방파’는 맛집 탐방을 나서는 반면 ‘쿡방파’는 스스로 요리를 한다. 연예인이 나와 음식을 만들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용기를 얻어 부엌에 서고 싶어진다는 게 쿡방파의 얘기다. 직장인 이 아무개 씨(29)는 평소 전혀 요리를 하지 않다가 최근 쿡방에 빠지면서 앞치마를 둘렀다. “TV로 보다보니 ‘저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백종원 씨가 알려준 레시피로 닭볶음탕을 해 먹었다. 제법 ‘고난도’ 요리를 성공적으로 했다는 만족감에 뿌듯했다”고 이 씨는 말했다. 또 다른 이 아무개 씨(28)는 “3포 세대, 5포 세대라며 다 포기하는데 먹는 걸로라도 위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바쁘다고 맛있는 음식을 해먹는 것마저 포기할 순 없다”고 말했다.
MBC 드라마 <맨도롱 또똣>에서 소개된 멜국수와 전복밥.
미식 열풍은 온라인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까진 주부 블로거가 요리과정 사진과 함께 레시피를 올리는 게 전형적인 먹방 콘텐츠였다면, 이젠 연령도 성별도 파괴됐다. 페이스북에서 240만 팔로어(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오늘 뭐 먹지?’ 페이지는 팔로어들이 보낸 맛집과 요리 후기를 통해 채워진다. 남자 고등학생이 만든 10단 도시락, 아빠가 직접 만든 수십 가지의 케이크 등 별별 화려한 후기가 올라온다. 이 페이지는 국내 페이스북 팔로어 수 3위에 올라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먹방, 쿡방은 과거 ‘힐링 열풍’의 또 다른 단면이다. 위안을 찾기 어려운 시대에 비교적 손쉽게 힐링할 수 있는 수단으로 요리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과거에도 맛집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요즘 키워드는 ‘공감’이라고 진단했다. “과거 요리 프로그램은 요리사가 시청자를 가르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시청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스스로 요리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며 공감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