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아! 우린 생명도 아니니?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실험용 동물을 주문하면 택배로 보내준다. 왼쪽 작은 사진들은 온라인 쇼핑몰 캡처.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흰 쥐를 비롯한 일부 실험동물들이 버젓이 ‘택배’로 거래되고 있다. <일요신문>은 직접 복수의 업체에 ‘실험용 흰 쥐’의 거래를 문의했고, 그 중 한 업체는 “포장을 워낙 꼼꼼히 하기 때문에 상품은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택배로 거래하면서 쥐가 죽거나 한 일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밝힐 정도였다. 지난 2013년 동물보호법 개정 및 일부 조항 신설에 따라 동물의 운송 및 운반에 대한 규정이 강화된 이후 대부분 반려동물들의 택배거래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공급이 있다는 것은 그에 따른 수요도 있다는 것.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거래되는 실험동물들은 관련 학과 대학생들이 실습 목적으로 구매하는 것 외에 초등·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설 학원 및 지역 공공센터의 실습수업에도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일부는 뱀을 비롯한 대형 파충류의 피딩(먹이)을 목적으로 구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요신문>은 실험동물의 실제 택배 거래 여부와 그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한 업체에 흰 쥐 세 마리를 주문해봤다. 가격은 마리당 1만 원 정도. 주문 다음날 택배는 도착했다. 택배 기록을 조회한 결과 주문한 흰 쥐들은 모두 세 곳의 물류 거점 터미널을 거쳤다. 흰 쥐들은 장장 23시간 동안 폐쇄된 공간에 갇혀 먼 거리를 이동한 셈이다. 포장된 흰 쥐들은 ‘축산물’로만 표기돼 있었다.
도착한 흰 쥐들은 과일용 종이상자에 넣어진 채 운송돼 왔다. 종이상자 안에는 그 어떤 완충장치도 없었다. 쌀겨에 약간의 사료와 무 몇 조각만이 넣어졌을 뿐이다. 세 곳의 거점을 거치는 동안 다른 취급물들과 함께 수하 과정에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 당연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극도의 스트레스 탓에 서로를 공격한 탓인지 한 마리는 등에 핏자국이 있었다.
대표적인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반려동물이냐 실험동물이냐를 떠나 동물을 택배로 운송한다는 것 자체가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라며 “게다가 이는 동물에 대한 명백한 신체 침해 행위이며 상당한 상해 가능성도 있다”고 비판했다.
불법 소지도 다분하다. 관련 법률은 크게 식품의약품안전처 관할인 ‘실험동물에 대한 법률’과 농림축산식품부 관할인 ‘동물보호법’이 있다. 이 중 동물의 운반과 그 처벌 규정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은 동물보호법이다. 참고로 법이 규정하는 ‘동물’은 신경체계가 발달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척추동물(포유류, 조류, 일부 파충류·양서류·어류)을 말한다.
지난 2013년 3월과 8월에 개정 및 일부 신설된 동물보호법 9항이 동물의 운반과 관련한 조항이다. 일단 국회는 지난 2013년 8월, 반려동물의 운송과 관련한 별도의 규정 ‘9조의 2’를 신설해 반려동물의 택배 배송을 전격 금지했다.
그렇다고 반려동물 이외의 동물은 택배거래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9조 1항은 실험동물을 포함한 포괄적인 동물운송의 준수사항을 규정했다. 해당 조항의 세칙에 따르면, ‘운송 중인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급격한 출발·제동 등으로 충격과 상해를 입지 아니하도록 할 것’과 ‘동물을 운송하는 차량은 동물이 운송 중에 상해를 입지 아니하고, 급격한 체온 변화, 호흡곤란 등으로 인한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을 것’으로 돼있다. 현실적으로 일반 택배배송은 이러한 준수사항을 이행하기 어렵다.
동물보호법에 정통한 정이수 변호사는 “실험동물의 경우 9조의 2에서 명시한 반려동물에 포함되진 않지만, 9조 1항의 내용을 놓고 볼 때 택배거래를 할 경우 위법 소지가 충분하다”라며 “택배라는 운송 수단 자체가 앞서의 내용을 준수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 이를 준수하지 않을 시, 동물보호법 47조에 따라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물론 관련법 9조 1항에 따라 실험동물도 준수해야 할 범주에 든다”면서도 “하지만 동물보호법이 아직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아직 처벌까지 가기에 법이 정교하지 못한 점이 있다”라고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조희경 대표 역시 “현행법은 일부 조항이 서로 앞뒤가 맞지 않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라며 “현재도 국회에 10여 개의 개정안이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현재의 누더기 법안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문제는 실제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실험동물을 팔고 있는 일부 과학 교구재 업체들이 합법적인 판매업자냐의 여부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실험동물 판매업자는 관련법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 등록한 자여야만 한다”라며 “일반 과학 교구재업체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판매에 나서는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라고 지적했다.
법규를 준수하고 있는 실험동물 판매업체 관계자는 “매일매일 실험동물을 아무에게나 공급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라며 “정상적인 업체라면, 정해진 기간에만 일정 수량을 직접 공급하거나 안전한 배송시스템을 활용하지, 절대 택배를 이용하진 않는다”라고 답변했다.
<일요신문> 취재 내용을 확인한 동물자유연대 측은 “곧 무등록으로 실험동물을 파는 것으로 의심되는 교구재 업체를 리스트업해 고발할 계획”이라며 “또한 실험동물의 운반에 대해 국회에 법 개정을 요청하는 한편, 식약처 등 관계 기관에 계도할 것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