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에서 손가락질 ‘잔인한 4월’
▲ 7월 전당대회 조기 개최를 주장한 한나라당 ‘수요모임’이 안팎으로 궁지에 몰렸다. 수요모임의 수도권 3인방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왼쪽부터). | ||
수요모임의 분란은 7월 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선출 문제가 발단이 됐다. ‘남원정’ 강경파가 박근혜 대표를 직접 겨냥해 7월 전대를 요구한 것에 대해 영남 출신 소속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수도권에선 ‘반박’ 노선이 통해도 영남에서 ‘반박’은 정치생명을 걸어야 할 정도로 두 지역간의 박 대표에 대한 정서는 상당한 편차가 있다. 당내 비주류인 김문수 이재오 홍준표 의원이 모두 수도권 출신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친박’ 대 ‘반박’ 대립 구도가 갈수록 첨예해지는 가운데 수요모임의 분화는 당내 역학구도에도 주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유기준 김명주 박승환 김기현 김희정 의원 등 수요모임 영남 출신 의원들은 최근 모임을 갖고 ‘남원정’ 중심의 강경 반박노선에 대한 수정과 함께 수요모임 지도부 교체를 요구키로 뜻을 모았다. 박 대표 교체를 요구한 남원정에 대해 역공을 취한 셈이다.
이에 앞서 ‘남원정’은 지난 3월27, 28일 경기도 용인의 한 콘도에서 모임을 갖고, 7월 전당대회 개최와 새지도부 선출, 책임당원제 실시 중단 요구 등 박 대표를 압박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중대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며 분당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20여 명의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수요모임의 수도권 대 비수도권 비율은 반반 정도다.
유기준 의원은 “7월 전당대회가 재창당 수준의 환골탈태를 하는 자리가 돼야 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박 대표 진퇴를 묻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며 “지난해 전당대회를 통해 정통성을 부여받은 박 대표를 흔드는 것은 당 개혁을 이용해 당권을 노리는 계략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명주 의원은 “수요모임이 당내 의견을 무시한 채 소수파 전략으로 나가는 것은 당의 분열을 가속화시키고 주체세력 교체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의원은 “수요모임은 제사보다는 젯밥에만 관심이 많다는 비판을 직시해야 한다”며 “수요모임에 ‘반역의 피’가 흐른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자성의 목소리는 “상황이 불리해지면 말을 바꾼다”는 비판과 맥이 닿아 있다. 수요모임은 지난해 4·15 총선 전 최병렬 대표를 지지했다가 결정적인 순간 최 대표를 버렸으며, 이후 박 대표 체제를 옹립했다가 지난해 말 국가보안법 등 4대 법안 처리에 대한 의견차로 갈라서는 등 책임보다는 실리를 쫓는 행보를 보여 왔다.
수요모임의 지도체제 개편과 책임당원제 실시 중단 요구도 도마위에 올랐다. 수요모임은 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상임위원회를 ‘협의체’에서 ‘합의체’로 바꾸는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대선 후보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박 대표의 1인 독주와 사당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 명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당내 시각은 곱지 않다. 지난해 5월 비주류인 김문수 홍준표 의원 등이 집단지도체제를 요구했을 때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것이 수요모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박 대표를 적극 지원하는 ‘주류’였던 수요모임은 박 대표에게 불리한 집단지도체제를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 ||
중도파인 박진 의원 역시 “조기 전당대회 주장은 당 내분으로 비치고 있다”며 “전당대회에서 무엇을 할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지도부 교체를 주장하는 것은 전후가 뒤바뀐 모순된 주장”이라고 소장파를 비판했다.
수요모임의 책임당원제 실시 중단 요구와 관련, 당내에서는 “소장파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당내 모든 사람들이 수용한 개혁안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당권 욕심에 눈이 먼 행동”이라는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매월 일정한 금액의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들이 당직, 공직 후보자 선출권을 행사하는 책임당원제 역시 소장파가 앞장서 주장해온 것이다.
다만 김문수 홍준표 박계동 의원 등 비주류들은 “대선후보 선출과 당운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책임당원제가 실시될 경우 ‘박사모’들이 대거 가입해 박 대표 체제가 더욱 공고화된다”며 소장파와 보폭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수요모임이 박 대표와 등을 돌리기 전까지 사사건건 충돌했던 ‘앙숙’이었다. 정치에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속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요모임 대표인 정병국 의원은 “새 지도부 선출 요구를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식의 분열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야말로 당을 떠나야 할 사람”이라며 “이렇게 해서는 당이 제2창당 수준의 혁신을 할 수 없고 2007년 재집권도 어렵다”고 7월 전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수요모임 한 의원은 “현 상황에서 박 대표가 다시 나선다면 어느 누가 박 대표를 이기겠냐”면서 “개인적으로도 전혀 지는 게임이 아니고 당으로서도 전당대회를 통한 혁신과 지지율 상승의 기회를 갖자는 것인데 피하려는 모습은 참 이해하기 어렵다”고 자신들의 순수성이 왜곡됐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는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대가 열린다면 대표직을 사퇴하고, 출마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배수진을 친 채 수요모임의 주장을 일축했다. 수요모임의 못된 버릇을 이번에 다잡겠다며 단단히 벼르는 모양새다. 이래 저래 수요모임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 될 전망이다.
유영욱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