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악령이 그녀를 임신시켰다고?
1980년대 마쓰자카 게이코가 출연한 티슈 광고. 당시 이 광고를 둘러싼 괴소문은 일본 열도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고 결국 방영은 중단됐다.
중년 이상의 일본 영화 애호가라면 마쓰자카 게이코(松坂慶子)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1952년에 도쿄에서 태어난 그녀는 1970~80년대 일본 연예계를 주름잡던 청춘 스타였다. 화려하지 않고 청순한 느낌과 함께 관능적이며 섹시한 톤을 지닌 이중적 이미지의 그녀가 연예계에 진입한 건 1960년. 어린이 합창단 활동을 시작한 마쓰자카 게이코는 아역 배우가 되었고, 연극과 TV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연기자가 되었다. 다이에이를 거쳐 쇼치쿠의 전속 배우가 된 그녀는 1979년에 TV 드라마 <수중화>에 출연했는데, 드라마 주제가를 부르면서 가수로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엔 영화 쪽에서 이름을 높였다. 주로 후쿠사쿠 긴지 감독 영화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는데 <카마타 행진곡>(1981) <청춘의 문>(1983) <8인의 사무라이 전설>(1983) 등은 당대의 대표작들. 일본을 대표하는 서민극 프랜차이즈인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에도 출연하며 위치를 확고히 했고, 1990년엔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죽음의 가시>로 여러 영화상을 수상했다. 전성기를 맞은 마쓰자카의 주 활동 분야 중 하나는 CF였다. 중년에 접어든 후에도 그녀는 꾸준히 CF 모델로 활동했는데, 그 시작은 열여덟 살에 찍었던 화장품 광고. 이후 라면, 보온병, 자동차, 카레 등 일상과 친숙한 제품들의 광고에서 그녀의 얼굴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크리넥스 티슈 CF였다. 30대 초반이었던 1985년에 찍은 이 광고 필름에서 마쓰자카는 하얀 옷을 입고 나와 티슈의 깨끗한 느낌을 전한다.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마쓰자카.
첫 번째 도시 전설. 광고에 붉은 도깨비 분장을 하고 등장했던 꼬마는 3일 동안 악몽에 시달리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몸에서 머리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끔찍한 사고였다. 두 번째 전설. 꼬마뿐만 아니라 광고 제작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아프다가 죽어갔거나 의문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일례로 카메라맨은 사우나에서 기계 고장으로 불에 타 죽었으며, 광고에 TV에 방영될 즈음엔 스태프 중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세 번째 전설. 이 광고를 보는 사람들도 저주에 걸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광고를 본 후 자살했다. 또 계속 반복해서 광고를 보면 처음엔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던 노래 소리가 나중엔 할머니 목소리로 들린다. 그리고 광고가 방영되는 화면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아 다시 보면, 붉은 도깨비가 푸른 도깨비로 바뀌어 있다.
전설의 가장 끔찍한 대상은 마쓰자카 게이코였다. 난데없이 임신설이 나돌았다. 도깨비 꼬마에 깃들어 있던 악령에 의해 임신했으며, 이후 마쓰자카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광고의 섹슈얼한 암시(휴지를 건네는 여성) 때문에 만들어진 듯한데, 급기야 은퇴설마저 나돌았고, 그녀가 정신병원에서 목매달아 자살했다는 사망설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허구였지만 당시 이 광고를 둘러싼 괴이한 이야기들은 일본 사회를 뒤흔들 정도로 강렬했고 결국 광고 방영은 중단되었다. 흥미로운 건 애초 두 개의 광고로 기획된 아이템이었다는 것. 다른 광고엔 천사 분장을 한 꼬마가 등장해 역시 슬로모션 속에서 티슈를 뽑아 공중에 날리는데, 여기엔 일본 전통 음악인 듯한 배경 사운드가 흐르며, 이 CF 역시 다소 음산한 톤을 드러낸다.
경력의 전성기에 뜻하지 않은 도시 전설의 주인공이 된 마쓰자카 게이코. 하지만 그녀는 구설수와 무관하게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고, 환갑이 넘은 지금도 현역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요즘 관객들이 알 만한 작품으로는 <카타쿠리가의 행복>(2001) 정도.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1998)을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이외에도 아오이 유우가 나왔던 <하와이언 레시피>(2009)에서도 만날 수 있으며, 2004년엔 하리수와 함께 <하리수 도색>에 출연했다. 올해로 영화 연기 50년차를 맞이하는 베테랑 연기자인 마쓰자카 게이코.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일본인으로, 우리 이름은 ‘한경자’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