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합병 ‘반기’…삼성도 바짝 긴장
국민연금공단 입구. 일요신문 DB
국민연금이 SK C&C-SK 합병에 반대한 배경을 분석해보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진다. 우선 증권가에서는 합병비율 문제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견해가 많다. 국민연금이 SK와 SK C&C에 모두 지분을 갖고 있어 어느 한쪽의 합병비율이 낮게 산정돼도 다른 쪽 합병비율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져 손실과 수혜가 상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3대 원칙은 △수급자 이익 △주주가치 증대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 등 책임투자 요소다. 수급자 이익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합병비율이 낮게 산정된 회사의 주주가치에 피해를 준다면 역시 그 회사 주주로서 간과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SK와 SK C&C의 합병이 최태원 회장이 그룹 지배권을 안정적으로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 의결권 행사 원칙인 ‘투명한 기업지배구조’까지 고려했다면 반대를 택할 수도 있겠다”고 설명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이 두 회사 지분을 모두 보유하고 있지만, 삼성물산 주주에게 피해가 된다면 제일모직 지분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를 방관한다면 원칙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역시 이번 합병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뚜렷하게 높아진다는 점도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의결권행사위원회가 ‘SK 자사주 소각이 합병비율 확정 후 결정돼 주주가치가 훼손됐다’고 언급한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자사주 처리도 합병 전에 이뤄지도록 해 주주이익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삼성물산도 합병비율 결정된 후 자사주를 KCC에 넘겼다.
익명의 한 펀드매니저는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자사주를 우호세력에게 넘길 수 있지만, 제일모직-삼성물산 주총은 경영권이 걸린 게 아니라 합병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따라서 일부 주주가 추진하는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즉 다른 주주들과 맞서기 위해 주주 공동의 자산을 활용했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의 한 변호사는 “KCC는 제일모직의 주요주주다. 이번 합병에서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면 제일모직 주요주주인 KCC에는 이익이다. 유·불리를 떠나 합병상대방 회사의 주주에게, 그것도 합병비율이 정해진 후에 자사주를 넘겼다면 이해상충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엘리엇펀드도 이 같은 점을 파악하고 소송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론 부담으로라도 SK C&C-SK 합병에 반대한 국민연금이 비슷한 구조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비슷한 사안에 대해 일관되지 않은 결정을 내놓는 다면 또다시 여러 의혹과 비판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영향이 큰 국제적인 의결권 자문기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의 견해와 다른 결정을 내린 점은 주목하고 있다. 익명의 재계 관계자는 “7월 초에 나올 ISS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의결권행사 방침이 삼성에 불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연금이 SK C&C-SK 합병에서 ISS와 같은 견해를 냈다면 제일모직-삼성물산 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여지가 줄어든다. 다행히 SK C&C&-SK합병은 국민연금이 반대를 해도 통과될 확률이 크다. 이제는 ISS와 엇갈린 결정을 내놔도 부담이 적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대해서도 나름의 견해를 피력할 명분도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