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좋은데 외로움이…기자님, 소개팅 좀요”
“내가 강정호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 안착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검은 유니폼과 백넘버 27번이 그와 잘 어울린다. 5월 23일 뉴욕 메츠전에서 홈으로 쇄도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최근 메이저리그의 유명 칼럼니스트 제프 설리번은 미국 <폭스스포츠>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제프 설리번 외에도 피츠버그 지역 언론은 물론 파이어리츠 팬들도 강정호에 대해 호평 일색이다. 파이어리츠의 홈구장인 PNC파크에서 만난 팬들은 강정호에 대한 질문을 받자마자, “처음엔 강정호의 활약에 대해 반신반의했지만, 그가 경기장에서 보이는 허슬 플레이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지금은 우리 모두 강정호가 파이어리츠 선수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시즌 종료 후 파이어리츠와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계약을 이끌어낸 강정호는 당시만 해도 피츠버그에서의 생활이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훨씬 앞섰다고 한다. 그러나 직접 경험하고 있는 메이저리그는 두려움 대신 희망과 자신감을 선물했다. 메이저리그 1년차, ‘루키’ 신분으로 피츠버그에서의 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강정호를 현지에서 만났다.
강정호는 지난 6월 26일(한국시간) 현재 57경기에 출전, 48개의 안타와 4개의 홈런, 볼넷 14개, 25타점 등을 기록하며 타율 0.274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메이저리그 1년차인 데다 주전과 대타를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강정호는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선수 입장에선 매일 경기에 나가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6월 20일부터 22일까지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원정 3연전에서 3패를 하고 홈으로 돌아온 파이어리츠는 24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1차전부터 강정호를 선발 라인업에서 뺐다. 그날 파이어리츠 클럽하우스에서 기자와 처음 대면한 강정호는 오랜만의 재회에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저 오늘 경기 출전 안하는데 괜찮겠어요?”라며 기자의 ‘기삿거리’ 걱정을 먼저 해줬다. 지난 2월 플로리다 스프링캠프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편안하고 안정돼 보이는 강정호와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은 다음 “매일 경기에 나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매일 뛰고 싶죠. 그런데 그게 어디 제 마음대로 되나요? 좀 경험해보니까 여기 파이어리츠 코칭스태프가 약간 소심한 것 같아요. 넥센 염경엽 감독님은 진짜 대단하신 거예요. 선수가 잘하든 못하든 넣었다 뺐다 하지 않고 꾸준히 믿어주시는 걸 보면. 허들 감독을 비롯해 코치들은 경기 결과에 따라 라인업 변경을 정말 자주 해요. 제가 못하니까 이런 얘기도 핑계에 불과한데, 워낙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선발 명단에 제 이름이 없으면 ‘그러려니’ 하면서도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에요.”
파이어리츠의 경기 선발 명단은 전날 경기가 끝난 이후 선수들에게 발표된다고 한다. 즉 경기를 마치고 퇴근하면서 다음날 내가 선발로 나가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강정호는 최근 9경기 연속 선발 출전을 한 적이 있다. 시즌 초반 닐 워커와 조디 머서, 조시 해리슨의 체력안배를 돕는 백업요원 역할을 맡았던 그는 그때만 해도 당당한 주전 야수로 발돋움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잠깐 부상을 당했거나 아팠던 선수들이 복귀하면 강정호는 다시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상황을 반복해서 맞이했다.
강정호는 간판스타 앤드류 맥커친과 한국말로 농담을 할 정도로 클럽하우스 분위기에도 적응을 마쳤다.
강정호는 피츠버그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통역 김휘경 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경기장과 집을 오가는 생활의 연속이다 보니 피츠버그를 제대로 구경하러 다니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에 동물원에 가서 동물 구경만 실컷 했어요. 제가 동물들을 좋아하거든요. 집에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도 원정 떠나면 돌봐줄 사람이 없어 키우지 못하고 있어요. 모처럼 하루 휴식이 주어졌기에 ‘뭘 할까’ 고민하다가 휘경이랑 같이 동물원에 갔죠. 노루랑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했는데…. 거기 다녀오니까 피츠버그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더라고요(웃음).”
농담처럼 “이번엔 식물원에 가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식물은 별로…”라며 말을 흐린다.
외국생활을 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게 음식. 강정호는 기자에게 “이곳에서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미국이나 멕시코 음식점이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 “피츠버그에 아는 한식집 있어요?”가 아니었다. “한식이 먹고 싶지 않느냐”고 되물었더니 그는 “에이, 그건 집에서 해 먹을 수 있잖아요. 남들 못 먹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는 음식을 가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한식도 물론 좋아하지만 외국에선 외국 음식을 더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부모님이 왔다가셨는데, 제가 사는 모습 보시고선, 이제 걱정할 필요 없겠다는 말씀을 남기셨어요. 뭐든지 잘 먹는 터라 사는 데 걱정은 없어요. 좀 외로워서 그렇지.”
강정호는 요즘 부쩍 외로움이 물밀 듯 하다고 토로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여자친구가 없어서 그런가?”라며 잇몸을 드러내놓고 웃기에 정곡을 찔러본다.
“여자친구 없어요?”
“소개 좀 해주시고 물어보세요(웃음). 있었으면 좋겠는데, 피츠버그에 사는 남자를 누가 좋다고 하겠어요?”
“외국 여자는 어때요?”
“저야 상관없지만, 저희 부모님이 놀라실 것 같은데요? 하하.”
강정호는 여자친구가 필요하다고 ‘대놓고’ 말했다. 피츠버그에선 한국 여성을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시즌 마치고 한국에 들어가면 본격적인 ‘소개팅’을 하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류현진과 친구 사이인 강정호는 기자에게 류현진의 안부를 물어보면서 “현진이는 외롭다는 얘기 안 해요? 하긴 LA에는 만날 사람도, 놀 것도 많으니까”라고 ‘알아서’ 정리했다. 오는 9월 파이어리츠는 LA로 원정 경기를 떠난다. 강정호는 “벌써부터 그 때만 기다리고 있어요. 현진이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준다고 했거든요”라며 잔뜩 기대를 부풀렸다.
연합뉴스
강정호는 한국에서 막연히 메이저리그에 대한 상상만 하고 있을 때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와 보니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친절하고 배려있는 선수들의 마음 씀씀이에 강정호는 완벽히 적응을 마친 상태였다.
“(박)병호 형이 종종 이곳 생활이나 선수들에 대해 물어보는데, 한국보다 야구하기가 더 좋을 거라고 말해줬어요. 병호 형도 올 시즌 마치면 메이저리그에 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욕심 같아선 파이어리츠에서 같이 뛰었으면 좋겠어요.”
시즌 초반 관심을 끌었던 ‘레그킥’에 대해서도 강정호는 분명한 생각을 밝혔다.
“제가 여기에 온 여러 가지 이유들 중 ‘레그킥’도 포함돼 있는 게 아닌가요? 제가 레그킥하는 건 다 아는 사실인데, 그걸 못하게 하면 제 존재의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선 제 욕심을 내려놓고, 팀이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가려 해요. 아직은 데뷔 1년차이니까요. 내년에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땐 제 목소리를 많이 내야 하겠죠.”
시즌 초보다 체중이 3㎏이나 빠졌다는 강정호는, 훨씬 날렵해진 턱선을 자랑하며 “이동이 잦아서 가만있어도 살이 빠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강정호랑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순간 파이어리츠의 간판스타 앤드류 맥커친이 기자 옆을 지나가면서 우리말로 “안녕”하고 인사를 건넨다. 그러자 강정호가 “못생겼어”라며 장난을 친다. 맥커친은 “못생겼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바로 강정호를 지적했으니 말이다.
강정호는 잘 지냈다. 감독, 코칭스태프, 선수들, 그리고 기자들 하고도 살가운 관계를 형성했다. 마치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파이어리츠의 27번 정호 강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미국 피츠버그=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피츠버그 전담기자 인터뷰 빠른 움직임 강한 어깨…3루가 딱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전담하는 유명 저널리스트 탐 싱어 기자와 강정호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탐 싱어 기자는 플로리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강정호를 밀착 취재해 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피츠버그 전담 탐 싱어 기자는 강정호에 대해 “아주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호평을 했다. 왼쪽 사진의 강정호 옆 선수는 션 로드리게스. ―강정호의 현재까지의 활약에 대해 총평한다면. “그의 활약이 매우 인상적이다. 팬들이 처음에 그에게 기대했던 것 이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보니 시즌 전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출장 시간을 보장받고 있다. 수비적 측면에서 그의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진다. 사람들이 공격에 대해서는 그가 어느 정도 활약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수비는 예상보다 더 잘 해주고 있고, 활발한 주루 플레이 또한 보여주고 있다. 아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강정호는 유격수와 3루수 두 포지션을 소화했다. 각각의 포지션에서의 활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체적으로, 3루 위치에서 더 잘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빠른 움직임과 강한 어깨가 3루에 더 적합해 보이기도 하다. 팀에서는 그가 주전 선수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내 생각엔 주전 3루수가 그의 자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파이어리츠는 올 시즌 선수기용에서 많은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내야진 구성에서 그러한데, 이러한 선수기용을 어떻게 보나. “전혀 새로울 것은 없다. 늘 그렇게 해왔던 것이고. 지난 시즌에는 조시 해리슨을 2루, 3루, 유격수, 외야수 등 많은 포지션에 기용했다. 내 생각에는 강정호가 3루수로 자리를 잡고, 조시 해리슨의 경우는 외야에서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팀들은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을 선호한다. 허들 감독과 같은 유형의 지도자들에게 그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파이어리츠가 올 시즌 꽤 선전하고 있지만, 같은 디비전의 다른 팀들도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여주고 있다. 남은 시즌 파이어리츠, 어떻게 전망하나. “아주 재미있는 시즌이 되고 있다. 아직 파이어리츠가 카디널스에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진 못했다. 카디널스가 잘 하고 있다. 아직 파이어리츠와 카디널스가 많은 경기를 치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스타 휴식기 직전에 있는 시리즈에서 카디널스를 상대로 어떤 결과를 얻느냐가, 향후 시즌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파이어리츠는 이번 시즌만큼은 와일드카드가 아닌 디비전 우승을 원하고 있지만, 카디널스에 현재 여덟 경기 뒤처져 있기 때문에, 올해도 와일드카드로 만족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현재 두 장의 와일드카드 중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카디널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선전하더라도, 이제 곧 7월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여덟 경기 차이는 좀 크게 느껴진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