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얼짱? 3cm만 컸으면 신성일 뺨쳤을걸 허허”
▲ 이순재 | ||
올해로 연기 인생 50년을 맞은 배우 이순재. 수십 년 동안 영화와 드라마, 연극 무대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그는 일흔한 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활기 넘쳤다. 62년에 TV드라마로 데뷔한 이후 거의 공백기 없이 왕성한 활동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연기에 대한 그의 순수하고 진지한 자세 때문인 듯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나 <허준>의 스승 ‘유의태’로 큰 인기를 모았던 80년대 이후의 전성기는 과거 하루에 네 편의 영화를 번갈아 촬영하던 힘든 시절의 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인 과거 60~70년대 방송국과 그 당시 연기자들의 생활에 대해 들어보니 요즘 같아서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순재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며 그 차이가 “천지가 개벽했다고 할 정도”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모두 담아 수많은 후배 연기자들과 스타를 꿈꾸는 배우 지망생들에게 들려주고만 싶었다.
이 코너의 주인공으로 이순재를 ‘모시게’ 된 이유를 한 가지만 거론한다면 최근 출연한 영화 한 편 때문이다. 그가 무려 18년 만에 선택한 작품은 남선호 감독의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 작품성은 물론 이순재 김유석 남호정 등 연극 무대에서 다져진 배우들의 연기력에서도 호평을 받는 작품이다(이순재는 이 영화에 이어 <파랑주의보>와 <음란서생>에도 출연했는데 공교롭게도 가장 먼저 찍은 <모두들, 괜찮아요?>가 가장 늦게 개봉했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모두들, 괜찮아요?>에서 이순재는 천진난만한 치매노인 ‘원조’를 연기했다.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 하면서도 돌아갈 때는 “대접 잘 받고 갑니다”라는 인사를 빼먹지 않는 ‘순수 노인’ 원조는 지금도 누군가는 겪고 있는 아픔을 상징하는 인물. 오랜만에 영화를 택한 이유를 들어봤다.
“영화는 안 하고 있었지만 늘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내가 연기자의 꿈을 꾸었던 것도 어릴 적 관객으로서 영화를 보며 그랬던 거고. 또 과거 60~70년대엔 최악의 조건에서 영화작업을 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현장에서 느껴보고도 싶었다.”
▲ 지난해 출연한 SBS 드라마 <토지>(위), ‘노출’로 화제가 된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 | ||
“이는 남의 일만은 아니다. 가끔 내 스스로를 걱정하기도 한다. 2000년도에 <허준>을 끝내고 몇 달 간 쉬면서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재공연을 했는데 그때 내 기억력에 대한 테스트를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당시 대사가 600마디에 가까웠는데 과연 이 대사를 차질 없이 구사할 수 있겠는가…라는 각오였다.”
홍보사에서는 극중 이순재의 ‘목욕 장면’에 대해 ‘연기 인생 처음으로 노출신 도전’이라는 타이틀의 보도 자료를 내보내기도 했다. 극중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욕조에 앉아 장난감을 갖고 노는 장면이었는데 이는 극중 흐름상 꼭 필요했던 신. 이 노출신이 화제가 되었다고 말을 꺼내자 이순재는 “보통 노출을 얘기하면 정사신을 갖고 얘기하는 거지 바닷가에 가서 수영한다고 그걸 노출이라고 표현 안하는 거거든”이라며 ‘허허’ 웃음을 보였다.
젊은 시절에만 70여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던 이순재는 이미 여배우들과 애정신을 숱하게 찍은 바 있다. 당시 시대를 풍미했던 문희 윤정희 남정임 등과 파트너를 이루며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지금과 30여 년 전은 애정신 하나만 보더라도 확연한 차이가 난다고.
“촬영장에서는 불가피하게 노출을 해서 찍더라도 편집 과정에서 모두 잘려 나갔다. 그 노출이라는 것도 지금처럼 과감하진 못했다. 여배우들도 상반신 노출은 전혀 안됐으니까. 그래서 그때 ‘왜 한국 영화에서는 하나같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잠자리에 드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웃음).”
이순재는 당시 영화계에 대해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옛날에는 영화 만드는 게 보따리 장사와 같았다. 영화 한 편 만들면 그걸 가지고 지방 극장주들한테 팔러 다녔다. 호남 광주 지역에 이 아무개라는 유명한 여자 극장주 한 분이 있었는데 이 양반이 한번 충무로에 올라오면 그 호텔에 시나리오 작가랑 감독이 찾아가서 영화를 들려준다. 우는 장면 울고 대사 직접 읊어주고. 옆에서는 다리도 주물러 주고 그러면서. 그러면 이 마나님은 드러누워서 그걸 듣는다. 옛날엔 그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고 팔고 그랬다(웃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순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기둥과 같은 존재였다. 이순재는 수많은 출연작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82년작 KBS의 <풍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 스타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순재의 말을 꼭 들려주고 싶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500회를 넘기며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장 기간 방영한 일일연속극 <보통사람들> <사랑이 뭐길래> <허준> 등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평소 대발이 아버지 같은 모습도 있느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했더니 이순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 강하고 못되고 선한 역할을 모두 할 수 있어야 배우이지, 그리고 하나를 끝내면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당연한’ 답변을 내놓았다.
요즘에야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인정받고 있지만 이순재가 활동하던 과거에는 흔히 ‘딴따라’라고 해서 이 직업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곤 했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시절 촉망받던 청년이었던 이순재가 연극을 하겠다고 나섰을 땐 부모가 ‘뜯어’ 말렸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이순재는 “그때는 우리 부모님뿐 아니라 자식이 연예인 한다고 하면 전국의 모든 부모들이 반대했을 거다”라며 껄껄 웃음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그를 찾아와 “정말 그렇게 하고 싶으냐. 그렇다면 한번 열심히 해봐라”라는 얘기를 건네주셨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이순재는 불편했던 마음을 모두 날리고 연기에 매진할 수 있었단다.
현재 MBC아카데미 연극음악원 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순재는 수많은 후배 연기자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점도 남다르다고 한다. 특히 SBS <루루공주>를 찍으며 알게 된 김정은을 보며 ‘참 괜찮은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요즘 드라마 속에서 중견 배우들의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것과 그 와중에서도 몇몇 이들이 영화나 CF를 통해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에 대해 그는 한 마디 평을 내놓았다.
“드라마 속 역할을 보면 중견들이 제 색깔을 내지 못하고 있다. 김수미나 백윤식이나 참 역량 있는 배우들인데 인기 있는 특정 캐릭터만을 반복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진 한 장 때문에 이순재는 네티즌들로부터 ‘원조 얼짱’으로 뽑히기도 했다. 감히 “배우로서 외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내내 인자한 웃음으로 답변하던 이순재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며 한 마디 ‘날리셨다’.
“키가 작아서 불만이었지. 내가 키가 3cm만 컸어도 신성일이를 이길 수 있었는데, 허허.”
[이순재 프로필]
1935년 10월10일 출생.
서울고등학교-서울대학교 철학과-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상도> <허준> <보고 또 보고> <야인시대> <장희빈> 영화 <집념> <상감마마 미워요> <윤심덕> <이조잔영> <토지> <파랑주의보> <음란서생> <모두들, 괜찮아요?> 외 다수.
조성아 기자 zzang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