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불통 심화…마이웨이 계속할 것”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민심전달 루트가 왜곡됐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불리한 여론은 전달되지 않는다”며 일부 측근들을 ‘소통을 막는 장벽’으로 지목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확연히 달라졌다. 대선 이전까지 주변 의견을 상황판단의 중요한 잣대로 활용했지만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어떤 의견도 듣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청와대 내부의 정보전달과 상황판단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무엇이 심각한 문제인가.
“정상적인 의사결정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번 사안도 국회법 문제라면 절차에 따라 법리적 쟁점을 만들어 따져봐야 하고, 만약 여당이 못마땅해서 생긴 문제라면 직접 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조용히 얘기하면 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서 문제를 원만하게 풀 장치를 모두 고장내놓고 그 이유를 바깥에서 찾는다. 당청간 소통이 원만하게 안 되는 원인이 새누리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청와대와 집권당이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지난 6월 25일 대통령 폭탄발언을 보면 ‘네 죽고 나 죽고’식이었다. 국민들은 크게 놀랐다.
“무서웠을 것이다. 대통령 취임 직후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문제를 생각해보라. 정치권이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애국자 한 사람을 내쫓는다며 얼마나 야단을 쳤는가. 지금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표현도 마찬가지 선상에 있다. 원인에 대한 진단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니 결과만 놓고 책임을 당 지도부에 모두 돌리는 형국이다. 절차를 무시하고 평소에 쌓여있던 것을 그대로 쏟아낸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은 자기절제다. 특히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런던이 독일군의 공습을 받았다. 처칠 수상이 스스로 감정절제를 하지 못했다면 영국 국민은 얼마나 큰 공포에 떨어야 했겠는가. 무섭다고 울어야 하는 게 지도자가 아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내부 절차를 무시하고, 어법에도 맞지 않는 문장으로 격앙된 목소리를 내면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번 발언은 시점, 형식, 내용 등 모든 면에서 잘못됐다.”
―사실 국회선진화법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큰 업적으로 홍보했던 게 아닌가.
“그렇다. 새누리당은 선진화법을 국정 발목의 주범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이건 야당이 만든 게 아니라 박 대통령이 의원 시절 주도적으로 추진한 일이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국민 여망이었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선진화법으로 해결했다며 얼마나 홍보를 했던가. 지금 이런 과정을 여당 안에서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야당에게 돌리는 것은 난센스다.”
―2011년 새누리당 비대위 시절의 박근혜 위원장도 이런 모습이었나.
“아니다. 당시 국회의원 중 강남에 있는 호텔 미팅 룸 사용빈도가 가장 많은 사람이 박근혜 위원장이었다. 이는 그만큼 사람을 많이 만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규모 토론을 꺼리긴 했어도 소규모 모임이나 식사자리는 중요한 소통의 장이었다. 의견을 주고받으며 견해차에 의한 이런 저런 갈등을 봉합하며 조정자로서 역할을 충분히 했다.”
―지금 모습과 비교하면 어떤가.
“같은 사람인데 완전히 딴판이다. 지금 박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를 개별적으로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부처 장관이 어떻게 대통령을 면담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알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다. 심지어 일부 야당 의원은 ‘권력의지가 너무 과한 나머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자기 본성을 숨기고 가장무도회에서 연기를 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대통령 앞에 거대한 불통장벽이 놓여 있고 이것이 만성화되면서 소통기능을 완전히 잃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소통을 막는 장벽은 무엇인가.
“일부 측근 비서다. 이름을 다들 알지 않느냐(정호성, 안봉근 비서관 등을 지칭). 대선 이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정치인 박근혜를 위해 몸을 던졌던 충실한 참모들이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어느 날 정권 창출의 주인공이었던 인물이 하나둘씩 대통령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인수위 시절과 각료 인선 과정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원리가 작동하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박근혜정권이 실패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지금 현실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아 매우 착잡하다.”
―알 수 없는 원리라는 게 무엇인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 청와대 참모나 장관으로 지명되고 있었다. 수준 이하의 평가를 받아도 고집불통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대통령 수첩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을 영원히 덮고 갈 수 없으니 이런 내용이 언젠가 세상에 드러날 것으로 본다.”
이상돈 전 비대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비대위원장 시절엔 소통에 문제가 없었다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고 안타까워했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한 이상돈·김종인 비대위원, 박근혜 비대위원장(왼쪽부터). 일요신문 DB
―측근 비서의 문제는 무엇인가.
“김무성 대표가 ‘조무래기’, 유승민 원내대표가 ‘얼라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봐라. 이들은 박근혜 의원을 모시는 참모로서는 성공할 수 있었지만 대통령을 보좌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들이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이들만 믿고 국가를 운영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것은 분명하다. 모 청와대 수석이 사표를 낸 이유 중 하나가 대통령 의중도 모르고 전화로 여당 지도부와 현안을 논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와대 수석의 이런 행동을 누가 대통령에게 보고하겠는가.”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국정운영 방식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이미 늦었다. 어느 구석을 보더라도 대통령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데 국정이 어떻게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가. 원내대표 사퇴를 둘러싼 여당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봉합된다고 하자. 그때부터 당청 관계에 훈풍이 불어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제대로 된 국정운영의 동반자가 되겠는가. 비관적이다. 여기에다 정치적 반대진영에 있는 야당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가.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장본인은 박근혜 대통령인데 책임을 야당에게 덮어씌우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어떤 명분으로 집권당과 협조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으로 보는가.
“한마디로 ‘마이웨이’를 선택할 것이다. 이미 민심전달 루트가 왜곡됐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불리한 여론은 전달되지 않는다고 봐야한다. 누군가 전달해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 2012년 비상대책위원회 시절 진보성향 신문에 밑줄 그어가며 기사를 읽던 박근혜 대선 후보가 아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국민이 불행한 것 아닌가.
“정치가 발전하려면 일정한 혼란을 감수해야 한다. 혼란의 수준이 높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이런 혼란이 질서 있는 정리로 이어지느냐의 문제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문제의 본질에 더욱 집중해 자기만의 해법을 내놓고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회피하면 안 된다. 더럽다고 피하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정치인이라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기 결정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정치의 질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 그런 숙제가 대통령, 당 대표, 원내대표 등에게 동일하게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 jkw68@hanmail.net
이상돈 교수가 본 유승민의 ‘선택’ “대구 4선 접고 자기정치 해야” “유승민 원내대표는 대구에서 4선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정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본인의 경제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치를 걸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상돈 교수는 유 원내대표가 명분 없이 물러나는 것도 안 되지만 지역구의 볼모가 되어 ‘협량정치’를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자세로 ‘유승민식 정치’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유 원내대표가 진지한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정치인으로서 두 가지 한계를 보였다. 의원 개인의 소신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원내대표 신분으로 대통령의 국정방향과 달리 증세 없는 복지나 단기부양책을 비판한 것은 본분을 벗어난 행동이다. 또한 대통령의 배신정치 비난에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마치 죄인인 것처럼 사과하는 모습에 실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평정심을 찾아 유감표명을 하고 필요할 경우 책임지겠다고 말할 줄 알았다. 원내대표직을 던지더라도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남아야 한다. 지금도 여론 추이보다 본인 의지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이 교수는 유 원내대표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적절한 시점에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현 지도부가 청와대와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데다 사태가 장기전으로 가면 정국 파탄의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번 사태를 정치적 성장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짧게 편한 길을 찾는 것보다 길게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게 지도자”라며 “더 큰 정치인으로 가든 아니면 비례대표와 같은 대구경북(TK) 4선으로 주저앉든 자기선택에 달렸다”고 조언했다. [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