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신데렐라의 스토리를 보자,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다음은 대략의 줄거리다.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새 언니와 사는 신데렐라는 새어머니와 새언니들의 구박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간다. 왕자가 신부를 찾기 위해 무도회를 열었지만 새엄마가 시킨 집안일 때문에 갈 수 없는 상황에 몰린 신데렐라는 요정을 만나 도움을 받고 무도회에 가서 왕자를 만난다. 요정의 마법이 풀리는 밤 12시 전에 급히 집으로 돌아오느라 신데렐라는 유리 구두를 무도회장에서 잃어버린다. 그렇지만 왕자가 유리 구두의 주인을 찾아 나서고 결국 다시 만난 왕자와 신데렐라는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
현장 요원들의 임무 수행을 돕는 CIA의 내근 요원 수잔 쿠퍼(멜리사 맥카시 분)가 있다. 그가 바로 현대판 신데렐라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파이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외모의 소유자다. 뚱뚱하고 둔해 보이는 데다 얼굴도 그냥 친근해 보이는 수준이다. 영화를 통해 접한 기존 스파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영화<신데렐라>의 신데렐라와 <스파이>의 수잔
007로 시작해 요즘의 킹스맨까지 스파이는 하나 같이 잘 빠진 몸매에 고급 의상을 입고 멋진 외모를 자랑한다. 여자 스파이도 마찬가지다. 영화 <솔트>의 CIA 요원 에블린 솔트(안젤리나 졸리 분), <겟 스마트>의 에이전트 99(앤 해서웨이 분)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섹시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수잔은 CIA 요원이긴 하지만 외부에서 활동하는 스파이가 아닌 현장 요원을 돕는 내근 요원이다. 사실 그는 이런 외모적인 편견으로 인해 그는 내근 요원이 됐다.
캐런 워커(모레나 바카린 분)라는 CIA 현장 요원이 있다. ‘슈퍼 스파이’라 불릴 만큼 실적이 좋은 그는 ‘완벽한 머리와 완벽한 얼굴의 소유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 속 스파이와 아주 잘 매치가 되는 인물이다. CIA 훈련소 성적은 수잔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이후 그는 최고의 현장 요원이 됐고 수잔은 내근 요원이 됐다.
사실 수잔은 캐런과 1,2등을 다툴 만큼 CIA 훈련소 성적은 좋았다. 그렇지만 수잔은 자신의 멘토였던 브래들리 파인(주드 로)를 짝사랑하게 되며 그를 돕는 내근 요원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CIA 내부에서도 그의 외모를 감안해 그를 내근 요원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 솔트>, 영화 <겟스마트>, 영화 <스파이> 속의 여자 스파이들
훈련소 성적만 보면 그는 충분히 훌륭한 예비 스파이였다. 그렇지만 그의 외모만 놓고 판단하는 우리의 편견이 그를 스파이가 아닌 내근 요원으로 만들었다.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딸이었던 신데렐라가 새 엄마와 새언니들로 인해 고생을 하며 살았듯이 수잔 역시 빼어난 훈련소 성적의 예비 스파이였지만 편견으로 인해 내근 요원으로 지낸 것이다. 외모만 놓고 여성을 평가하는 사회의 편견이 바로 새엄마이고 새언니들이었던 셈이다.
결국 수잔을 현장에 투입하면서도 미행과 보고로 역할을 제한한 CIA 부국장이나 수잔을 스파이로 인정하지 못하고 단독 행동을 벌이는 CIA 현장 요원 릭 포드(제이슨 스타뎀 분) 역시 새엄마이고 새언니다.
이제 무도회는 시작됐다. 수잔이 현장에 투입돼 불법 핵무기 거래를 막아내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는 것. 사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직접 해결이 아닌 미행과 보고다. 이렇게 그의 업무를 제한한 것은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가지 못하도록 엄청난 집안일을 시킨 새엄마의 지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수잔은 무도회장에 나선다. 임무를 무시하고 진정한 스파이로서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 다만 동화 속 요정이나 마법은 없다. 훈련소에서 높은 성적을 받았듯이 둔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빼어난 운동 신경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 오랜 기간 내근 요원으로 활동하며 쌓은 정보 분석력을 갖추고 있다.
사실 영화에선 이런 수잔의 숨겨져 있던 능력을 매우 코믹하게 그려낸다. 그러다 보니 둔해 보이는 수잔의 엄청난 액션 연기가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매우 코믹하다. 그렇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수잔이 이미 상당히 준비돼 있던 스파이였다는 점이다. 신데렐라 역시 요정의 마법만으로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아니다. 요정의 마법은 그가 무도회장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일 뿐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순전히 신데렐라의 능력(?)이었다.
수잔이 무도회장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요정의 마법이 아닌 개인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수잔의 동료 낸시 B. 아팅스탈(미란다 하트 분)는 수잔이 캐런보다 부족한 부분은 자신감이라고 얘기한다. 소심하기 때문에 CIA 요원이 됐지만 현장에서 활동하는 스파이가 아닌 내근 요원으로 지낸다고 지적한다. 실제 수잔은 홀로 파인을 짝사랑하며 소심하게 살아온 여성이다. 그가 파인의 죽음 이후 적극적인 여성으로 변화한다. 이런 변화가 바로 요정의 마법이 된 셈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현장 대응력과 순발력으로 수잔은 점점 최고의 스파이가 돼 간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오가는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해낸다. 이제 수잔은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고 외부의 편견까지 넘어서 세계 평화를 지켜낸다. 신데렐라는 왕자의 사랑을 얻어내는 것으로 행복을 쟁취한다. 당시 사회상에선 여성의 행복이 왕자님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선 다르다. 이제 좋은 조건의 남성을 만나 결혼하는 것보단 자신만의 영역에서 성공한 여성이 더 행복할 수도 있는 세상이다. 결국 수잔은 진정한 슈퍼 스파이로 거듭나며 자신의 영역에서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된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사랑을 쟁취해 행복해지기 보단 올곧은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모습까지 그려진다. 수잔에겐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유리 구두였으며 일에서의 성공이 진정한 행복이 된 셈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배경과 능력으로는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설 수 없을 때 여성이 자신의 인생을 180도 바꿔 줄 왕자님에게 보호받고 의존하고 싶어 하는 여성의 심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위키백과 참조) 그렇지만 이것은 과거 사회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선 수잔처럼 자신의 능력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180도 바꿔낼 수 있는 여성이 진정한 신데렐라 아닐까.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서는 것이 아닌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성공하는 것을 진정한 행 복아닐까. 왕자님에게 보호받고 의존하는 것보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현대판 신데렐라 아닐까. 이런 생각에 영화 <스파이>를 기자는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