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배신” 발언 한 달 전 ‘문고리 3인방’ 축출시도 있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지난 8일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국회정론관으로 가고 있다. 작은 사진은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왼쪽부터).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병기 비서실장이 지난 2월 발탁되자 정치권에선 문고리 권력 3인방에 주목했다. 정윤회 문건 유출 당시 인적 쇄신 대상으로 거론됐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았던 3인방과 이 실장이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시선이 모아졌던 것이다. 여권 주변에선 이 실장이 비록 상급자이지만 박 대통령의 각별한 신뢰를 받고 있는 3인방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부통령’으로 불렸던 김기춘 전 실장조차 3인방과의 파워게임에서 패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예상과 달리 이 실장은 취임하자마자 김 전 실장과는 차별화된 스탠스로 입지를 다져나갔다. 폐쇄적이고 경직됐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기춘 체제’ 때와는 달리 이 실장은 소통을 중시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참여한 ‘3자 회동’을 주선하는 등 정치권과의 관계 개선에도 신경을 썼다. 청와대 비서실 관계자는 “이 실장은 ‘내 방은 항상 열려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중요하게 여겼다. (김 전 실장보다는) 아무래도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마음이 편한 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이 실장은 3인방과 비교적 원만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친박 핵심 원로 인사는 “국회에 있을 때부터 이 실장과 3인방은 사이가 괜찮았다. 특별히 업무가 겹칠 일도 없었거니와 이 실장은 적을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3인방이 이 실장을 김기춘 후임으로 적극 추대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물론 여기엔 정윤회 파동 후 3인방 운신의 폭이 다소 좁아졌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3인방이 위축되면서 자연스레 이 실장 목소리가 커졌고, 또 양 측 간에 우호적인 기류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실장 임명 100일이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파열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이 실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를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청와대 내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 친박계 전직 의원은 “이 실장 주도의 온건한 국정 운영에 대해 3인방을 포함한 몇몇 강경파 측근이 불만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박 대통령 역시 국회법 개정안 처리 등 여러 현안을 놓고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강경파들에게 힘을 실어줬고, 그 결과 이 실장에게로 쏠리는 듯했던 힘의 추가 다시 (3인방 등에게로) 기울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급기야 공개석상에서 이 실장 ‘왕따’ 의혹이 제기됐다. 7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동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실장이 왕따고, 박 대통령 독대도 못한다고 하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실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아직까지도 ‘3인방’이란 얘기가 나와 저로서도 자괴감을 느낀다”고 반박했다. 이 실장은 6월 26일 박 대통령의 이른바 ‘배신의 정치’ 원고 기초를 정호성 비서관이 작성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그런 오해가 나오기에 확인했더니 사실과 달랐다”고 답했다.
이병기 비서실장
이 실장 부인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내에선 박 대통령의 ‘독한’ 발언에 3인방이 관여했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더군다나 유 전 원내대표와 3인방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유 전 원내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 의원 시절부터 3인방이 치고 있는 ‘인의 장막’에 대해 여러 차례 비판했다. 지난해 7월엔 이들을 가리켜 ‘청와대 얼라’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친박 핵심 원로 인사는 “박 대통령과 유 전 원내대표가 멀어진 게 3인방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예전부터 3인방을 못마땅해 했다. 유 전 원내대표가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이던 2005년엔 박 대통령에게 ‘3인방을 멀리하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비서실장 모르게 3인방과 다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3인방이나 박 대통령도 그런 유 전 원내대표가 달가울 리 없지 않겠느냐”면서 “3인방과 유 전 원내대표의 오래된 앙금도 이번 사태가 벌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 발언이 나오기 한 달 전쯤인 5월말경 3인방에 대한 교체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관심을 끈다. 공석이던 정무수석 인사를 하면서 3인방 중 일부는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이다. 청와대 내부는 물론 몇몇 당 지도부와 핵심 친박 인사들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이 3인방에 대해 재신임 결정을 내린 지 불과 3개월여 만의 일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친위 쿠데타’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앞서의 친박 핵심 원로 인사는 “4월 재보궐 선거 이후 모처럼 해빙기에 있던 당·청 관계가 재차 위기에 빠질 무렵이었다. 청와대 특정 라인 쪽에서 당을 비롯한 여러 의견들을 종합해 박 대통령에게 (3인방 용퇴를) 보고했다. 3인방이 박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면서 “그러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마 3인방은 그러한 보고를 올린 장본인으로 유 전 원내대표를 지목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어떻게 보면 유 전 원내대표를 향한 3인방의 반격인 셈”이라고 귀띔했다.
유 전 원내대표가 물러나면서 여권의 당·청, 계파 간 갈등은 일단 수습 모드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 중심엔 3인방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은 “몇몇 친박 의원들을 제외하곤 이번 사태가 비정상적이라는 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3인방 등 특정 참모들과만 논의해 일을 처리하다보니 생긴 일이라고 본다”면서 “지난해 불거졌던 비선라인 논란이 언제든 재 점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3인방의 거취 문제는 향후 여권 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