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에선 경대-동대라인 기싸움중
강신명 경찰청장의 총선 출마설 뒤에는 경찰 내부 알력 다툼이 놓여있다는 추측이 돌고 있다. 지난해 10월 경찰청 국감에 출두한 강 청장. 일요신문DB
조정정년은 경찰공무원법이나 경찰 인사관리규정에도 없지만 후배들에게 승진의 길을 터주기 위해 선배들이 정년을 앞당기는 관례인 셈인데, 올해는 1958년생이 그 대상이다. 최근 정년 연장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경찰도 행정자치부와 청와대를 중심으로 조정정년 완화를 추진해 왔지만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올해 조정정년에 걸린 경찰 고위직은 이상원 경찰청 차장,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이상 치안정감), 정해룡 강원지방경찰청장, 허영범 경찰청 보안국장, 윤철규 충북지방경찰청장, 김성근 경찰청 외사국장, 이철성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이상 치안감), 설용숙 대구지방경찰청 제1부장, 남병근 인천지방경찰청 제3부장(이상 경무관), 총 9명이다. 게다가 윤철규 청장과 김성근 국장은 계급정년(치안감은 4년 내 승진하지 못하면 퇴직)까지 동시에 걸려 있는 상황이다. 이들 9명은 조정정년 제도 폐지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8월 경찰대 출신으로는 첫 경찰청장 자리에 오른 강신명 청장의 내년 총선 출마설이 경찰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해 8월 취임한 강 청장의 임기는 내년 8월까지라 물리적으로 내년 4월 치러질 총선에는 출마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2004년 경찰청장 임기제 도입 이후 2년의 청장 임기를 채운 사람은 이택순 전 청장이 유일하다.
게다가 임기가 몇 개월 남지 않은 김진태 검찰총장의 후임으로 유력한 김수남 대검찰청 차장이 강 청장의 대구 청구고등학교 선배라는 사실 때문에 강 청장이 내년 4월 실시되는 20대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양대 사정기관의 수장을 같은 고교 출신으로 앉히기엔 청와대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이 때문에 강 청장이 조기 퇴진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에서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다.
강 청장은 이와 관련, 지난 5월 말 경남 김해서부경찰서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8월까지 임기여서 내년 4월 말 치러지는 총선에 출마할 수 없다. 제게 부여된 경찰청장의 임기를 완수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라며 “너무 먼 장래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경찰 총수를 한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강 청장의 출마설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 대기업 국회 대관업무 담당자는 “강 청장은 경찰대 출신 첫 청장으로서 2년 임기를 끝까지 채울 것이라고 참모들에게도 말하고 있다고 하는데, 총선 준비를 위해 오는 10월께 퇴임할 것이라는 얘기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찰 조정정년과 강 청장 총선 출마설과는 과연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올해 조정정년에 걸린 경찰 고위직 인사들의 출신 대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찰 조직 내 2인자로 통하는 구은수 서울지방청장, 이상원 경찰청 차장, 정해룡 강원지방경찰청장, 허영범 경찰청 보안국장, 윤철규 충북지방경찰청장은 모두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간부후보생으로 경찰에 입문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찰 조직은 지금껏 대체적으로 청장이 어느 경로로 입직했느냐에 따라 간부들의 명운이 갈리곤 했다. 고시 출신 청장이 탄생하면 고시 출신들이 약진하고, 간부후보생 출신들이 청장이 되면 간부후보 출신이 승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식이다. 첫 경찰대 출신 청장으로 기록된 강신명 청장도 다르지 않았다. 강 청장 취임 이후 경찰대 출신들의 고위직 승진은 더욱 늘었다. 이미 경찰대 출신 고위직 독점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는 비경찰대 출신들로서는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 1963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는,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경찰 고위간부들을 양성했다. 강 청장까지 역대 19명의 경찰청장 가운데 무려 6명의 청장을 배출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올해 조정정년 대상 경찰 고위직 9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명이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출신이라는 점은 ‘동국대 라인’으로서는 위기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 일각에서는 위기감을 느낀 구은수 서울청장을 비롯한 동국대 라인에서 강 청장 출마설을 계속 흘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한꺼번에 1958년생 동국대 출신 고위직들이 엄청나게 빠지게 돼 올라갈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청장이 특별히 잘못이 없으니까 ‘총선 출마설’로 계속 흔드는 듯하다”며 “10월 사임설이 나오는 것은 기존 청장들이 보통 1년 2개월에서 1년 3개월 동안 청장을 하고 바뀌었고, 또 11월에 치안정감 인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점을 전후해 청장이 바뀌면 치안정감부터 해서 싹 다 바뀐다”고 말했다. 경찰대 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당했다는 생각을 가진 동국대 라인이 다시 한 번 전세를 바꾸기 위해서 강 청장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이다.
강 청장 전임인 이성한 경찰청장은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출신으로 이 청장 재직 시절 동국대 라인이 약진했다. 앞서의 경찰 고위 관계자는 “구은수 청장이 서울청 경무부장을 인사혁신처에 보내 경찰의 조정정년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 전달도 했을 정도다”며 “경무관 이상은 지역 안배, 출신별 안배를 하는데 중간 계층인 총경은 그런 것도 없다. 동국대 라인으로서는 중간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장기적으로도 유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