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00원 물값에 사모님들도 당황
디올 카페 내부 전경.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일대는 해외 유명 브랜드들의 단독 부티크가 즐비하다.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거의 모든 품목을 보유해 편리한 쇼핑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관에서부터 저마다 특유의 감성을 담아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수많은 명품 부티크 가운데서 유독 눈에 띄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 바로 ‘하우스 오브 디올’이다.
지난달 오픈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단독 부티크인 이곳은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취급 품목도 다양하다. 액세서리, 의류, 잡화, 향수 등에서부터 VIP 라운지, 갤러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디올 부티크에서는 쇼핑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의 목적지는 5층. 그곳엔 ‘제과계의 피카소’라 불리는 프랑스 명장 피에르 에르메와 디올이 손잡고 탄생시킨 ‘카페 디올 바이 피에르 에르메’가 자리하고 있다.
디올 부티크와 1㎞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부티크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된다. 수천만 원에 이르는 값비싼 핸드백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하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유는 디올 부티크와 같다. 에르메스 부티크에서도 지난 2006년부터 지하 1층에 ‘카페 마당’을 운영하고 있다.
디올 카페에서 판매되는 이스파한 아이스크림과 마카롱 4개 세트. 각각 2만 2000원에 팔리고 있다.
비즈니스 미팅이 있을 때마다 명품 카페를 찾는다는 손 아무개 씨(여·31)는 “지나치게 격식을 갖춘 느낌이나 오가는 사람이 많아 소란스러운 호텔 라운지보다는 명품 카페가 훨씬 쾌적하다. 명품 브랜드가 주는 고급스러움에 상대방도 대접받는 느낌인지 일을 시작하기 한결 수월하다. 또 적당히 조용한 분위기는 일행과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게끔 도와줘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명품을 소비할 수 있다는 점도 ‘명품 카페’를 찾는 주된 이유다. 명품 카페에서 판매하는 식음료 가격은 특급호텔 수준 이상으로 결코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의류, 액세서리, 핸드백 등 상품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싸게 명품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명품 브랜드에서도 이러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고객들의 눈길이 닿는 작은 인테리어 소품 하나까지 자사의 제품으로 채워 넣는데 카페 마당은 샌드위치를 감싸는 유선지 하나에도 에르메스 스티커를 부착한다. 호텔신라가 운영을 책임지고 있지만 식기류 일체도 에르메스 제품을 이용한다. 디올 카페 역시 식기류의 대부분이 자사 제품이다.
디올 카페 관계자는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만석일 때가 있어 예약은 필수다. 음료나 디저트 수준을 칭찬하는 고객도 있지만 분위기를 더 중시하는 손님도 적지 않다. ‘디올답다’ ‘명품답다’며 만족스러움을 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품 카페가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명품 브랜드 측에서는 “비교적 접하기 쉬운 식음료를 통해 친근하게 고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출입문턱을 낮춰 많은 고객들에게 수준 높은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할 수 있다”며 카페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위화감을 조성하고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자체 카페를 운영 중인 에르메스 부티크(위)와 디올 부티크 건물. 박은숙 기자
게다가 이곳에서는 물 한 잔도 마음 편히 마실 수 없다. 폭염주의보가 내렸던 지난 15일 오후 일행과 함께 디올 카페를 찾았는데 한 시간 남짓 머무는 시간에도 물 때문에 웃지 못 할 상황을 몇 차례나 목격할 수 있었다. 디올 카페에서는 생수도 판매품목에 포함돼 있어 용량에 따라 8500원, 1만 5000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를 몰랐던 손님들이 물을 주문했다가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은 것이다.
더위에 갈증을 느낀 듯 20대 여성 두 명은 카페에 앉자마자 물을 부탁했지만 직원이 건넨 메뉴판을 확인하곤 주문을 취소했다.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 ‘사모님’들도 단맛이 강한 디저트 때문에 물을 요청했지만 별도의 구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두 배 가격인 차를 주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명품 카페가 ‘허세의 완결판’이라는 핀잔을 듣는 이유도 확인이 가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부터 건물을 나갈 때까지 쉬지 않고 사진을 찍는 건 기본이고 이를 곧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느라 일행과는 대화도 별로 하지 않는 테이블도 눈에 띄었다. 그들의 대화도 “뭐 시켜야 해” “어떤 사진이 잘 나왔는지 봐줘” 등의 SNS 관련이 주를 이뤘다.
또 카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직원이 좌석 안내를 도우려 하자 그냥 나가버리는 20대 여성들도 있었다. 이들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을 발견하곤 그 안에서 다시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비치된 각종 화장품을 모두 사용해본 뒤 모습을 감췄다. 그동안 일본인 관광객은 화장실 사용을 하지 못해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명품 카페에 열광하는 이들의 부끄러운 이면이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