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 출신 낙하산 한계 드러냈다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이 알려지면서 주채권은행이자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는 가운데 홍기택 회장 역시 질타를 받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낙하산 논란도 빼놓을 수 없다. 홍 회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금융권의 핵심 위치를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는 ‘서금회(서강금융인회)’ 와 같이 서강대 출신인 데다 박 대통령의 경제교실로 불리는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홍 회장 스스로 ‘낙하산 인사’임을 인정할 정도였다.
이 같은 이유로 박 대통령이 홍 회장을 KDB금융을 이끌 새 회장으로 점찍었을 때 주변에서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이를 강행, 금융권과 정치권의 우려를 낳았다. 무엇보다 이론을 연구한 경제학자로서 당장 은행 실무를 감당할 수 있느냐에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더욱이 홍 회장이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철회하고 정책금융의 본질을 강화하겠다고 나서자 걱정스러운 시선은 늘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홍 회장 취임 이후 산업은행은 재계와 금융권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 일쑤였다. 현대·동부·금호그룹 등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인 깔끔하지 못한 일처리는 재계의 불만을 자아냈다. 한 대기업 고위 인사는 “산업은행에 불만이 팽배해 있으면서도 주채권은행에 밉보일까봐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대표적인 예가 동부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인 미숙함, 금호산업 매각 과정에서 보인 책임 회피성 모습 등이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작업을 위임받은 상태에서 동부그룹과 제대로 조율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3월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묶어 포스코에 인수 제안을 한 일은 홍기택 회장과 산업은행의 미숙함을 대표하는 사례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따로 매각하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굳이 묶어서 낮은 가격에 매각하겠다는 생각도 그렇거니와 구조조정에 나서겠다는 포스코에 인수 제안을 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결국 산업은행의 패키지 딜은 무산됐다.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방안은 동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김준기 동부 회장이 직접 “구조조정 과정에서 패키지 딜의 실패와 자산의 헐값 매각, 억울하고도 가혹한 자율협약, 비금융 계열사들의 연이은 신용등급 추락, 무차별적인 채권 회수 등 온갖 불합리한 상황들을 겪으며 동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지난 반세기 동안 땀 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의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습니다”라며 직접 산업은행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금호산업 매각 과정 역시 홍기택 회장에 대한 평가 점수를 낮추는 요인 중 하나다. 2010년 금호산업이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에 돌입할 당시 박삼구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주면서 박 회장을 배려한 산업은행이 막상 금호산업 매각 절차에 들어가자 박삼구 회장과 금호에 ‘매각을 계속 방해하면 우선매수청구권을 박탈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홍 회장의 체면이 우습게 된 결정적 계기는 금호산업 매각 본입찰이 호반건설 단독 참여로 유찰되자 미래에셋에 협상 주도권을 넘긴 일이다. 홍 회장은 금호산업 매각 본입찰이 유찰된 후인 지난 5월 13일 “미래에셋이 지분이 제일 많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협상할 것”이라며 “자본주의시장에서 지분율대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때껏 금호산업 매각을 주도해온 곳은 산업은행이다. 따라서 홍 회장의 발언은 매각과 흥행 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일요신문>이 지난 5월 당시 입수한 ‘금호산업(주) 채권금융기관협의회 지분율 및 의결권’ 현황에 따르면 비록 금호산업의 최대주주는 8.48%를 보유한 ‘미래에셋삼호유한회사’지만 산업은행(4.38%), 대우증권(3.83%), KDB생명(0.75%) 등을 합하면 ‘산업은행그룹’이 실질적인 최대주주인 데다 의결권도 앞서 있다. 자산운용업계와 재계에서 홍 회장의 매각 실패와 헐값 매각의 책임을 면하려 한다는 비난이 일어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현재 금호산업 매각 협상의 주도권을 받아든 미래에셋은 박삼구 회장에게 매각 가격으로 1조 213억 원, 주당 5만 9000원을 제시했다. 외부평가기관은 금호산업 기업가치를 주당 3만 1000원으로 산출했지만 1조 원은 받아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채권단 의지가 반영돼 경영권 프리미엄을 무려 52%가 넘게 얹은 것이다. 그러나 이 가격은 금호산업 매각 본입찰에 단독 참여한 호반건설이 제시한 6007억 원과 크게 차이가 난다. 금호산업 매각이 또 다시 삐걱댄다면 산업은행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우조선 부실 문제가 터졌다. ‘몰랐다’는 산업은행의 항변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질타가 쏟아진 후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 경영관리단을 파견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유상증자, 신규 자금지원 등 수조 원에 이르는 자금을 새로 투입해야 하는 일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곧 산업은행의 대규모 실적 부진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국책은행으로서 국민 세금이 축나는 일이기도 하다.
홍기택 회장 취임 전 산업은행은 매년 1조 원이 넘는 순이익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홍 회장 취임 첫 해인 2013년에는 무려 1조 4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겨우 1835억 원의 이익을 냈다. 물론 STX그룹 부실을 떠안은 것과 금융 환경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취임 전 실적과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여기에다 대우조선 부실이 반영되면 올해 실적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 정책금융을 강조한 국책은행 수장인 홍기택 회장의 최대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