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꿈을 이루는 기독교 명문 사학 총신대학교 위상 재정립 박차
신자가 되라, 학자가 되라, 성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목자가 되라,
세계 개혁교단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학교. 총신대학교의 교훈 이다. 1901년 개교해 114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1938년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는 강압적으로 요구한 신사참배를 거부해 민족 혼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 일로 문을 닫았다가 1948년 5월 서울 남산에서 장로회신학교로 다시 개교했다.
사진=김영우 신임 총신대학교 총장
이후 총신대학교는 기독교 학생들의 미래와 꿈이 있는 명문대학으로 인정받아 왔다. 1970~1980년대의 총신대학교는 서울시에 있는 대학교 중에서도 중상위권 수준의 명문이었다. 1977년도 총신대학교의 예비고사 성적은 중앙대학교보다 높았다. 올해 총신대학교는 명문의 자리를 되찾아가는 분위기다. 2015학년도 수시입학의 경쟁률은 7대1, 정시입학은 4대1, 편입학은 7대1로 지난해보다 높았다. 교원 임용고사에서도 12명의 합격생을 배출했다. 역사교육과의 경우는 국내 30여개 역사교육과 중 최상위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총신대는 교육부에 ‘분규 대학’으로 비춰져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당장 정원·재정 감축, 학교 이미지 실추,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손실로 다가온 상태다. 이런 위기를 이겨내고 총신대를 다시 명문 신학교로 새우겠다는 신임총장이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주인공은 총신대 제6대 총장으로 선출된 김영우 전 재단이사장이다. 2010년 16대 이사장으로 모교를 섬기기 시작한 김 총장은 17대 재단이사장을 거쳐 이젠 총장으로서 직접 학교를 섬기게 됐다. 그의 임기 기간은 2년6개월이다. 길자연 前 총장이 ‘70세 정년제’ 총회 결의에 따라 사퇴하면서 잔여 임기를 수행하게 된 셈이다.
바른 믿음으로 고통 감내
“이사장으로 수년간 학교를 챙겨왔다. 학교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에 중점을 둘 것인지 파악하고 있다. 총신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임기중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오리라고 본다. 하지만 총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고통을 감래 할 것이다.”
김 총장이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는 학교 정관과 관련된 논란이다. 그는 “세 가지 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했다는 점이다. 9월 말 총회 후 10월 말까지 정관을 개정해야 했지만, 15명 이사 중 9명밖에 없어 2/3 정족수에 부족한 상황이었다. 교육부 승인까지 보통 2~3개월 소요되는 것을 생각하면 학교 사정을 전혀 모르고 한 결정이라는 얘기가 된다.
둘째는 임기에 대한 소급적용이다. 이를 정관에 개정토록 한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11월 1일까지 정관개정을 하지 못했을 경우의 일이다. 총회 내 공직을 정지하고, 이사장의 경우에는 교회 시무권 정지 등 중벌을 받게 돼 있다. 이에 대해 김 총장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총회가 이사들에게 사임압력을 행사해 학교와 총회가 어려움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개정 방향에 대해서는 “이사도, 이사장도 아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새로운 이사들이 선출돼 이사회가 정상화되면 소급문제를 제외하고 총회의 바람대로 정관이 개정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총신대학교 운영이사회는 7월 28일 총신대 사당캠퍼스에서 재단이사 9명을 새로 뽑았다. 이에 따라 총신대 재단이사는 기존 안명환·김승동 목사를 포함해 모두 11명이 됐다. 정수는 15명으로, 나머지 4명은 개방이사다.
사진=총신대 교훈이 새겨진 비문(碑文)
총신을 세계신학의 중심으로
교단과의 갈등 해소도 김 총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사회와 교회 생활에서 축자영감설을 신봉하는 입장에서 총회의 결의는 충분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최선의 노력이다. 수반되는 고통은 지도층으로서 감수해야 할 문제다.” 올바름에 대한 믿음으로 갈등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총신대 문제의 빠른 해결을 위해 예장합동 총회와의 합의 내용 준수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김 총장은 “합의정신을 깨트릴 마음도 없고 깨트릴 만한 일을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명문사학으로서의 총신대 비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총신대는 수 년간 흑자 기조를 유지했지만, 정부의 등록금 인하정책과 평생교육원 수입 급감, 신학원 학생수 감소 등으로 수입은 줄었다. 반면 교수 충원과 시설 확충으로 150억원 이상 소요되면서 적자가 발생했다. “산업교육학부를 운영하고 신대원 야간학부와 영어 교역학석사(M.Div) 등으로 2~3년 내 재정의 취약성을 벗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 국제화 기술 혁신의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국제화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개혁신앙을 보수하는 미국 등 세계의 유수한 신학교 및 교단과도 교류하고 있다. 나아가 영어 M.Div 코스에 이어 중국어 M.Div 코스도 개설할 계획이다.”
김 총장은 또 총신대가 ‘분규대학’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상대주의적 포스트모던의 시대에서 총신대가 지향하는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걸어갈 방향을 밝혔다. “기독교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확실한 기준과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통보수라고 해서 고루하고 교조적이어서는 안된다. 신축성 있게 적용하고 운영해야 한다.”
김 총장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이다. 굳이 싱글을 고집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홀로 사는 이유가 궁금했다. “책 읽는 것과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계속해서 일을 벌이고, 그 일이 마무리되면 또 다른 일들이 생기고... 지금까지 혼자네요”
하나님 말씀 실천에 일생
김 총장의 집안은 전통적인 대가족이었다. 아버지 형제도 8남매나 됐다. 더구나 8대 종가 출신으로 5살 때부터 지방을 작성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하나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2학년때부터다.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기 시작했다. 성장을 하면서 신학에 대한 그의 갈증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총신대학교다. 개혁신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 도움을 주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목사가 된 후 그의 취미는 두 가지가 됐다. 책 읽기와 사역이다. 시간이 될 때마다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일에 파묻히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 개혁신학을 더욱 공고히 하고 어려움에 빠진 학교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김영우 총장의 힘찬 발걸음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고진현 기자 koreamedianow@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