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고도 살아남아?’ 싸늘한 시선
바쁜 스케줄에 쫓겨 먹고 잘 새도 없다고 엄살을 떠는 ‘스타’들이 많다. 그 와중에도 대학에 입학해 학업에 정진하겠다고 공언하는 ‘스타’들도 적잖다. 실제 피곤을 무릅쓰고 강의실을 찾거나 휴학을 반복하며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애를 쓰는 연예인이 있다. 그러나 강의실에 코빼기 한 번 안 비추고도 때가 되면 학사모를 쓰는, 납득하기 힘든 경우가 다반사다.
학교 - “선정기준 문제 없다”
‘무늬만 대학생’, ‘유령 대학생’ 연예인을 양성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학교라는 사실이 지난해 11월 MBC <뉴스후>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제작진은 작년 9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2005년에 특기자 전형 등으로 대학에 입학한 연예인 10여 명의 불성실한 학교 생활을 알렸다. 명지대의 Y, S, 경희대의 K, C, M, H, 건국대의 P, L 등은 강의실에 장기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제작진은 그러면서 객관적이지 못한 연예인 특기자 전형 기준을 문제 삼았다. 또 연예인이 수업에 출석하지 않아도 학교 행사 참여나 기부 등을 하면 학점이 부여된다는 주장을 폈다. 일반 학생과는 달리 출석 외에 기부금(발전기금), 봉사활동(학교행사), 연예활동을 통한 학교 홍보 등이 기준으로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일부대학에서는 담당교수가 F를 줘도 학내의 ‘연예인 특별관리위원회’가 학점을 재부여하는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있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설마’ 했던 우려가 ‘사실’로 알려지면서 전국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해당 대학 홈페이지에는 해명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특혜 시비가 일었던 연예인 특기자 전형에 대한 개선책이 요구되기도 했다.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섰던 해당 학교는 과연 변화에 나섰을까. 이들 중 한 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이 수업에 불참하고도 학점을 받는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기준을 적용,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면서도 “특기자 입학전형의 선정기준이 모호하거나, 다른 대학에 비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학교 관계자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선정 기준이 돼야 한다는 점은 이전부터 공감해 왔던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어 당시 보도된 ‘결석 연예인’의 출석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내비쳤다.
연예계에서는 여러 학교와 인기 연예인의 끈끈한 관계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 연기자 매니지먼트사 대표는 “일부 연예인들에게 대학은 이미지 제고와 군대 연기 구실이 된다. 학교로서는 큰돈을 들이지 않고 연예인을 ‘얼굴’로 삼으니 이보다 더 좋은 홍보효과가 없다”며 “일부 연예기획사의 목적과 대학의 얄팍한 상술이 맞아 떨어져 어느 한 쪽도 이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학업 정진을 통한 지성인과 사회일꾼 양성이라는 대학의 본질에는 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생 - “객관적 잣대 필요해”
또 다른 문제는 학생들의 상실감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입학 시즌인 3월 초가 되면서 어김없이 ‘새내기 대학생 연예인’에 대한 뉴스가 이어지고 있으나 이들을 바라보는 일부 대학생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서울 S대 김정호 씨(21)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매일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처절하게 공부했다”며 “연예인은 인기만 있으면 고생 않고도 대학에 들어가니 불공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연예인들의 대학 특례 입학에 대해 지난해 11월 15일 ‘조인스 풍향계’가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75.3%가 ‘불공정하다’고 답했다. ‘공정하다’는 응답은 17.5%였다. 19~29세 응답자들은 ‘불공정하다’는 의견이 80.4%로, ‘공정하다’는 의견 18.3%보다 높았다.
게다가 수업태도가 ‘엉망’이면서도, 학과 선택을 좌우하는 학부 경쟁에서 연예인이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학생들의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 K대 이준호 씨(20)는 “학부과정 내 전공 선택은 성적이 우수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밀려서는 안 된다”며 “수업태도 등이 불성실한 학생이 더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했다.
단과대학에 속해 있는 여러 학과들을 하나로 묶어 함께 수업을 받다 2학년 때 전공을 결정하는 학부제를 시행하는 학교가 많다. 때문에 원하는 학과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1학년 때 학점 관리에 신경을 써야만 한다. 1학년 때 학점 관리를 못하면 비인기학과로 가게 마련. 좋은 과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학생들 사이에선 1학년을 가리켜 ‘고(高)4’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전체 학생 중 ‘A학점 30%, B학점 40%, C학점 이하는 30%’라는 식의 상대평가로 학점이 부여되다보니 학생들은 ‘A그룹’에 속하려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이 씨는 “필기 노트를 안 빌려주는 것은 다반사고 수업 도중 사라진 학생들을 의식, 강의가 끝날 무렵에 ‘다시 한 번 출석을 부르자’고 권하는 학생도 있다”며 살벌해진 학내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는 연예인이 수업을 경청하는 내 성적까지 좀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난다”고 불쾌해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연예인 특기자 전형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다양한 자질을 가진 학생들의 적성을 살리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학교는 객관적인 잣대를 만들어 취지를 퇴색시키지 않고, 연예인은 학생의 본분을 다해야 문제가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지연 뉴시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