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으로 기록된 역사 바로잡히길”
수십 년간 영예로운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살아온 한 70대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양심선언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그것도 광복절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서 나와 더욱 관심이 쏠린다. 이와 관련, 지난 6월에는 ‘독립운동가 김태원 공훈 의혹 진실규명 시민 공동조사단’이 건국공로훈장 독립장(3등급)을 받은 ‘대전 김태원’에 대해 다양한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대전 김태원’은 이름이 같은 ‘평북 김태원’의 행적을 가로챈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비슷한 경우로 독립운동가로 등록돼 관리돼 왔던 김정필 선생의 증손자 김 아무개 씨(73)가 자신의 증조부 역시 ‘독립유공자가 아니다’라고 당당히 밝힌 것이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등에 따르면 김정필은 충남 대덕군(현 대전 대덕구) 출신으로 1907년 한봉수(한민구 국방부 장관 조부)의 병진에 입진, 한봉수 의병장을 보좌하며 용인, 괴산, 여주 등지에서 격전을 치르는 등의 활동을 했다. 이후 1920년 만주로 망명해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 끝에 같은 해 10월 순국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정부는 김정필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68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한 데 이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기도 했다.
이런 김정필의 증손자가 갑자기 자신의 증조부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며 서훈 취소를 요청하고 나섰으니 파문은 컸다. 조상의 독립운동 행적을 부풀리거나 허위로 만드는 경우는 많아도 자진해서 조상이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던 걸까.
김 씨는 <일요신문>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1960년대 당숙부가 증조부에 대해 독립유공자를 신청했고 (보상금) 혜택을 받다가, 선친께서 ‘받으려면 장손인 내가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1970년대부터는 아버지께서 10년 정도 혜택을 받고 1979년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김 씨 당숙부와 김 씨 선친은 사촌 간으로 김 씨 증조부인 김정필은 김 씨 선친뿐 아니라 김 씨 당숙부에게도 조부가 된다. 그러나 독립유공자 보상금 혜택은 장남·장손 등 1인에게만 지급되는 게 원칙이다. 또한 2대까지만 보상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이번에 양심선언을 한 김 씨의 경우 보상금은 받지 않았다. 김 씨의 설명이다.
“아버지는 생전에 당신의 조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얘기를 전혀 모른다고 했다. 이상하다고 했는데, 당숙부는 고집을 부리며 ‘사실이다’고 했다. 그런데 당숙부는 성상이 좋지 않으신 분으로 사기성이 좀 있었다. 옛날 분들은 이름을 여러 개 썼는데 증조부는 자로 ‘원필’을 썼다. 실제 독립운동을 한 ‘김원필’이라는 이북 사람과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증조부의 공적이 그 분과 같다고 들었고 그러면 내가 생각하기에 ‘아니다’ 싶었다. 아버지에게 증조부의 독립 운동 얘기를 들은 것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당숙부가, 이북에서 독립운동을 한 김원필 선생의 공적을, 같은 이름을 썼던 증조부에 끌어다 붙인 것이다.”
김 씨의 당숙부가 형편이 어려워 독립유공자 혜택을 받으려고 거짓으로 꾸며 서류를 냈다는 게 김 씨의 판단이다. 김 씨 당숙부의 요청에 따라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공훈에는 김정필이 1920년 만주로 망명해 무장 항일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김 씨는 이 때 이미 증조부가 75세였다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족보에도 자신의 증조부인 김정필은 1920년이 아닌 1925년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당숙부가 실제 독립운동가인 김원필 선생의 공적을 가로채기 위해 증조부의 사망년도를 김원필 선생과 같게 바꿨다고 밝혔다.
양심선언 배경에 대해서 김 씨는 이렇게 털어놨다.
“역사라는 게 결국 사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거짓으로 오랫동안 기록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고 빨리 바로 잡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그동안 대전의 독립운동가로 알려졌지만 동명이인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김태원 사건이 터졌다. 그 사람도 10촌이 넘어 촌수는 따지지 않지만 같은 문중이다. 거기 자극이 돼 이 기회를 빌려 사실을 밝히고 싶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국가보훈처 편의주의적 행정 문제 있다 “공적 가로채기 악습 방치” 지난 6월 ‘독립운동가 김태원 공훈 의혹 진실규명 시민 공동조사단’에 참여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홍경표 사무국장은 <일요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국가보훈처의 주먹구구식 행정 행태를 비판했다. 공적 가로채기를 통한 대전지역 김태원, 김정필의 독립유공자 등록이 국가보훈처의 편의주의적 행정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이 홍 국장의 주장이다. 그는 “지난 1963년 최초로 독립유공자 서훈이 내려졌는데, 그때 이미 많이 돌아가셨고 자료도 없어진 상황이다 보니 국가보훈처에서 철저한 검증 작업 없이 독립유공자를 선정함으로써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대전 김태원의 경우, 평북의 김태원 선생과 동명이인이고 만주로 간 사실까지는 증명이 된다. 그런데 국가기록원에 있는 자료를 뒤져 보니까 원래 독립운동가인 평북의 김태원 선생은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집하러 국내에 들어왔다 체포돼 평양 감옥에서 사형을 당했다고 나왔다. 그 부분에 대해 훈장을 내렸던 것인데 가짜인 대전 김태원은 1951년까지 살았다. 대전 김태원 후손은 자신의 선조가 평양 감옥에서 사형을 당한 게 아니고 탈출했다고 가짜로 꾸며내 사형 언도 받은 부분까지만 자료를 제출했던 것이다. 보훈처에서는 재심 요구에 대해 미적거렸고 조사단에서 조사를 통해 대전 김태원이 평북 김태원 선생의 공적을 가로챈 사실을 밝혀냈다. 국가보훈처에서 어제(8월 5일) 재심까지 마쳤는데 유족에게 결과를 먼저 통보하고 정작 조사한 우리에게는 공개여부에 대해 나중에 알려준다고 했다.” 이어 홍 국장은 “대전의 가짜 독립운동가 김태원의 아들인 김 아무개 씨의 경우 월 200만 원 넘는 보상금을 수십 년간 받아 온 것은 물론 광복회 대전·충남연합지부장을 맡아오다 이번에 조사단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논란이 되자 사직을 했다”며 “가짜로 밝혀지면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금 전액 환수를 해야 하는데 대법원의 판례는 최근 5년까지밖에 환수를 못 한다고 나온다. 민법 등의 시효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