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룰 놓고 여당 내부에 살얼음이…
김무성 대표와 친박핵심 윤상현 의원, 이정현 최고위원(왼쪽부터)이 최근 오픈프라이머리 추진, 지뢰폭발 책임론 등 현안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일요신문DB
국회법 거부권 파동으로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 지 한 달, 청와대와 여당의 평화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유승민이 아웃되면 다음 타깃은 김무성”이라던 당시의 우려가 곧 현실로 드러나려는 듯, 여당 내부에 조금씩 살얼음이 끼고 있다. 친김무성계로 통하는 한 재선 의원은 “총선에 가까이 갈수록 양측의 갈등은 깊어질 것이다. 친박계가 지금은 따발총을 쏘지만 나중엔 대포를 들고 나올 것”이라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 서서히 영점조준을 하고 있는 친박계의 김무성 함포사격의 배경을 따라가 봤다.
#지난 11일 오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북한군이 비무장지대(DMZ)에 목함지뢰를 매설해 도발한 사건을 두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지”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끝낸 직후 기자들이 “야당에서는 우리 군 당국도 경계태세가 안일했다는 등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질문하자 내놓은 답이었다.
그런데 이로부터 한 시간여 뒤, 친박계 윤상현 의원이 자신과 가까운 정치부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책임?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은 북한군 지휘부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군에게 주어진 이행임무는 책임이 아닌 응징이다. 지금은 우리 군의 책임 운운할 때가 아니다. 적군이 아군을 공격했을 때에는 그 적군을 겨냥해야지 아군 지휘부를 겨냥하는 것은 결코 옳은 판단이 아니다. 이러한 표적오인은 매우 유감스럽다.”
누가 봐도 김무성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메시지가 퍼지자 한 핵심 당직자는 “윤 의원이 주도해서 친박계 의원들(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러시아를 다녀온 직후 윤 의원이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안다. 이번 러시아행은 친박계의 세력 결집 성격도 있으니 앞으로 으쌰으쌰 하지 않겠는가. 윤 의원의 메시지는 그 서막”이라고 했다.
#이어 1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정현 최고위원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공천제도, 선거제도를 일갈한다.
“정치권에 쟁점 되는 걸 보면 선거구 획정, 오픈프라이머리, 권역별 비례대표제, 의원 정수, 석패율제, 공천권 이런 부분이다. 비애감을 느낀다. 매번 선거 치를 때마다 쟁점이고, 새로 나온 것처럼 개혁이라 말하는데…선거 임박해서 시간적 여유도 없고 검토할 여유도 없고 국민적 공감대 형성할 여유도 없을 때 복잡한 문제를 들고 와서 임시방편으로 하고…보나마나 다음 국회도 또 논의된다.”
이 중 오픈프라이머리는 김무성 대표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관철을 목표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사안이다. 이후 비공개로 전환된 회의에서 김 대표가 이 최고위원에게 ‘발언의 저의가 뭐냐’ ‘오픈프라이머리를 깐 것이냐’는 취지로 물었고 이 최고위원이 ‘오픈프라이머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김 대표는 이 최고위원에게 “앞으로는 공격 포인트를 잘 조절해라”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 하루 뒤인 13일. 이정현 최고위원이 당 회의에서 북한의 지뢰 도발과 관련해 “지금 어디에다 대고 공격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아군 진지에 대고 혀를 쏘아대는, 설탄(舌彈)을 쏘아대는 일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은 모두 그 전날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지뢰 폭발 다음날 통일부가 북한에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것을 두고 “정신나간 짓”이라고 나무란 것을 겨냥한 것이라 해석했다. 이후 이 최고위원은 “한 사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지난해 8월 11일 김무성 대표가 재보선에서 당선된 이정현 의원을 업어줘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국회는 비판 기능이다. 견제 기능이다. (이 최고위원이 주장한) 타이밍을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은 있을 수 있으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지 못한다면 국회의 기능이 아니다.”
사흘 연속으로 이뤄진 김 대표와 친박계 핵심의 설전 아닌 설전은 앞으로 있을 거대한 소용돌이의 복선으로 읽힌다. 윤 의원이 현재 청와대 정무특보이고, 이 최고위원이 과거 박근혜 대통령의 대변인 격이었는 데다 청와대 정무수석, 홍보수석을 지내 청와대 ‘촉’이 좋다는 것을 감안하면 개인 의견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발언들이다.
정가에서는 양 진영의 이번 기싸움을 5개월 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정국과 오버랩시키고 있다.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드 도입을 두고 당 의원총회를 열어 자유토론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곧바로 윤상현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동북아 외교안보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몰고 올 내용을 전문성이 뒷받침되기 어려운 의총에서 결정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라고 반대했다(최근 김무성 대표의 목함지뢰 사건과 관련한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는 발언 뒤 나온 윤상현 의원의 메시지 대응을 연상시킨다).
이어 이정현 의원은 당 회의석상에서 “사드에 대한 개인 의견을 공개석상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되냐”고 유 원내대표 면전에서 따지면서 순간 회의장이 얼어붙었다. 윤 의원과 같은 청와대 정무특보인 김재원 의원은 “당이 사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봤자 국익 차원에서 얻을 게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최근 김 대표와 친박 사이의 한랭전선이 그 때와 꼭 닮았다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특히 김 대표가 밀어붙이고 있는 ‘오픈프라이머리’는 만약 시행될 경우 친박계 의원들은 공천을 확약받을 수 없게 돼 있다. 당원과 대의원, 주민들이 직접 예비선거를 통해 당 후보를 뽑으니 청와대나 주류 진영에서 ‘공천 몫’을 내 놓으라 말할 수 없게 되는 탓이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당론으로 정한 뒤 당내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던 점에서 이번 이정현 최고위원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친박-비박간 총선 공조체제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