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쇼핑’ 지렛대로 단독정권 굳히기
남산에서 바라본 롯데호텔 건물. 왼쪽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임준선·박은숙 기자
현재 호텔롯데는 일본롯데홀딩스(19.07%)와 L투자회사들(80.21%) 등 일본국 법인들이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롯데홀딩스는 L투자회사를 지배한다. 이들 일본법인들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롯데가 신주발행 방식으로 상장을 하면 신 회장 입장에서는 신격호-신동주 부자의 영향력이 큰 일본 법인들의 지분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때 관건은 신 회장이 상장과정에서 어떻게 호텔롯데 지분을 직접 확보하느냐다.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신 회장이 보유한 비핵심 계열사 지분을 활용할 것이 유력하다.
신 회장은 롯데쇼핑(13.5%), 롯데제과(5.4%), 롯데푸드(2%), 롯데칠성음료(5.7%), 롯데케미칼(0.3%), 롯데손해보험(1.4%), 롯데상사(8.4%), 한국후지필름(9.8%), 롯데정보통신(7.5%), 코리아세븐(9.6%), 롯데역사(8.7%), 롯데닷컴(2.4%) 등의 지분(1% 이상 보유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롯데그룹 매출과 지배구조에서 동시에 핵심을 이루는 기업은 롯데쇼핑과 롯데제과다. 이 두 회사만 지배한다면 나머지 계열사 지분은 중요도가 떨어진다. 이들 비핵심 계열사 지분을 매각 또는 현물 출자하는 방법을 통해 호텔롯데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김선아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배구조 개선비용 가운데 일부는 계열사 추가상장을 통해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롯데정보통신과 코리아세븐의 상장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롯데정보통신과 코리아세븐은 신 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곳들이다. 상장으로 지분가치가 높아지면 지배력 강화를 위한 자금확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신 회장이 호텔롯데에 대한 지배력만 확실히 확보한다면 상장으로 마련된 회사자금으로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을 사들여 손쉽게 지주사로 전환할 수 있다. 새로운 주주들이 낸 돈으로 지배구조도 개선하고 계열사들의 재무건전성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호텔롯데에 대한 지배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면 롯데쇼핑을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도 있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계열사 지분율이 높은 롯데쇼핑 및 롯데제과를 지주사로 활용하면 과정은 복잡하지만 비용발생이 최소화되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쇼핑은 신 회장이 가장 많은 지분(13.46%)을 가진 회사다. 신 총괄회장(0.93%)과 신 전 부회장(13.45%),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0.74%) 지분도 적지 않지만, 신 회장이 사실상 이사회를 통해 경영권을 장악한 롯데 계열사들의 지분율이 46.75%에 달한다.
한국후지필름, 롯데제과, 롯데정보통신, 롯데칠성음료, 롯데건설 등의 롯데쇼핑 지분율은 약 25%로 시가 2조 원 상당이다. 롯데쇼핑의 현금성자산도 약 2조 원이다. 이들 5개사의 롯데쇼핑 지분은 롯데그룹 순환출자의 92.1%(383개)를 차지한다. 롯데쇼핑이 이들 계열사로부터 자기주식을 취득하면 롯데의 가장 거대한 순환출자 고리들이 동시에 끊긴다. 재계의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신 회장이 연말까지 불과 4개월여 만에 순환출자의 80%를 끊겠다고 말한 것은 결국 고리의 가장 핵심을 해소하겠다는 생각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신 회장은 지주회사 전환에는 금융계열사 처리 같은 어려움이 있어 대략 7조 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약 2조 원의 비용이면 대부분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관측이 더 많다.
순환출자 고리를 푼 이후 인적분할을 통해 자회사를 지배하는 롯데쇼핑홀딩스(가칭)와 사업회사 롯데쇼핑으로 분할하고, 이때 기존 법인이 보유했던 롯데쇼핑 주식을 롯데쇼핑홀딩스로 넘기면 된다. 이렇게 되면 롯데쇼핑홀딩스(가칭)가 롯데쇼핑 지분 25% 이상을 가진 최대주주가 된다. 그리고 다시 신 회장이 가진 기존 롯데쇼핑 지분 13.46%를 롯데쇼핑홀딩스에 현물출자하면 신 회장의 지배력은 50%에 육박할 수 있다.
※ 호텔롯데는 순환출자구조에 포함되지 않으나, 상기 10개사 지분 모두 보유 상기기업 중 군청색으로 처리된 기업은 상장기업 (자료: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
롯데쇼핑이 지주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호텔롯데와 합병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호텔롯데 상장 과정에서 시장에서 조달한 돈을 사실상 지배구조 개편에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호텔롯데는 계열사 지분을 보유만 하고 있을 뿐, 호텔롯데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는 부산롯데호텔 외에 없다. 따라서 합병이 이뤄지면 호텔롯데가 다수 지분을 가진 롯데케미칼, 롯데알미늄, 롯데건설, 롯데상사 등이 자연스럽게 지주사 아래로 편입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상장 과정에서 확보한 현금으로 계열사끼리 엮인 순환출자 관계도 여유 있게 해소할 수 있다.
다만 신 회장이 상장과정에서 호텔롯데에 대한 지배력을 얼마나 높이느냐가 관건이다. 호텔롯데에 대한 충분한 지배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합병 과정에서 지분율이 희석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주사 체제로 가더라도 롯데손해보험, 롯데카드, 롯데캐피탈 등 금융계열사 처리 문제가 남는다. 현행법상 일반 지주사는 금융계열사를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롯데손보와 롯데캐피탈은 호텔롯데가 각각 26%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이며, 롯데카드는 롯데쇼핑이 93.7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유일한 금융상장사인 롯데손보의 경우 시가총액이 채 4000억 원이 안되고, 롯데카드도 연간 매출액(영업수익)이 1조 5000억 원 안팎으로 해당 업종 내에서는 아주 큰 규모가 아니다. 신 회장이 지주체제 밖에 별도의 개인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이들 금융계열사 지분을 인수한 후 금융계열사 및 금융지주회사 기업공개로 비용을 충당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한편 TFT의 경우 사실상 그룹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면서 신 회장 중심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TFT가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는 물적 정리뿐 아니라 인적정리도 함께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