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낀 새우 “극성수기 피하자”
광복절 연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암살>에 이어 <베테랑>도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이종현 기자
<암살>이 여름 기대작 중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 역시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암살>의 투자배급사는 쇼박스미디어플렉스. 국내 4개 투자배급사로 손꼽히지만 이 회사는 영화관 체인을 갖고 있지 않다. 수직계열화를 통한 자사 영화 밀어주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지난해 역대 영화 개봉일 스코어 4위(55만 명)에 오른 <군도>를 선보였으나 각각 CGV와 롯데시네마를 등에 업은 영화 <명량>과 <해적>이 연이어 개봉되며 상영관을 내주고 477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던 아픔을 겪었던 쇼박스로서는 개봉 시기를 잘 잡는 것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라 할 수 있다.
<암살>은 올해 롯데, CJ가 각각 내놓는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 <베테랑>과 각각 1주일, 2주일의 차이를 두고 7월 22일 개봉해 선점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무주공산이던 이 시기에 개봉돼 10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베테랑>이 개봉한 8월 4일까지 이미 737만 관객을 동원해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기며 ‘성공’에 방점을 찍었다.
이 배경에는 <암살>을 만든 최동훈 감독과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등 주연 배우들에게 대한 기대 심리가 깔려 있었다. 게다가 친일파 척결을 소재로 다룬 이 영화가 올해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영화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테랑> 개봉 직후 다소 스크린 누수가 있었지만 관객이 찾으니 자연스럽게 상영관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암살>의 만듦새가 부족했다면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과 <베테랑>의 개봉 이후 스크린 수가 급감했을 것”이라며 “두 영화가 개봉된 후에도 좌석점유율이 유지됐기 때문에 지금도 <암살>을 극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롯데는 마음이 급해졌다. CGV와 함께 영화 체인망 양대 산맥을 구축하고 있지만 계열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기대를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은 개봉 2주 동안 500만 관객을 모았다. 대단한 성적이긴 하지만 CJ엔터테인먼트가 수입 배급했던 전작 <미션 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이 75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을 감안하면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수치다.
물론 상영관을 유지하며 계속 관객을 모을 수도 있다. 하지만 13일 또 다른 야심작 <협녀:칼의 기억>이 개봉되면서 상영관을 나눠줄 수밖에 없게 됐다. 롯데가 투자와 배급을 맡은 이 영화는 올 여름 주력 상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연 배우인 이병헌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며 개봉이 연기되고, 여전히 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에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영화가 개봉된 후 관객들의 평가 역시 엇갈리고 있어 <암살>과 <베테랑>의 아성에 도전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뷰티 인사이드>와 <협녀:칼의 기억> 포스터.
CJ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이다. 전략적으로 개봉 시기를 미루며 여름 성수기에 배치한 <베테랑>이 기대대로 관객들의 호평과 입소문을 타고 탄탄대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절을 낀 연휴를 거치며 600만 고지를 넘어선 <베테랑>은 <암살>에 이어 1000만 달성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CJ는 타 영화들의 추이를 살펴보며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느 영화에 상영관을 내줄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4대 투자배급사 중 후발주자인 NEW도 <뷰티 인사이드>로 시장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미 <연평해전>으로 600만 관객을 동원한 NEW는 <뷰티 인사이드>로 활기를 이어간다는 복안이다. 쇼박스와 마찬가지로 극장 체인을 갖고 있지 않은 NEW가 여름 성수기가 시작되기 전 <연평해전>을 먼저 선보이고, 휴가철 막바지로 넘어들고 9월의 문턱인 8월 20일을 개봉일로 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들의 치열한 스크린 확보 경쟁이 지나간 다음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인 셈이다.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드라마와 멜로적 요소가 가미한 <뷰티 인사이드>는 찌는 듯한 무더위가 지나간 후 선선해지는 계절에 관객들이 더 많이 찾을 영화”라며 “게다가 극장 체인을 갖지 못한 NEW가 무리하게 타 투자배급사와 경쟁보다는 무혈입성을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배우 이정현 주연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김성균, 유선이 출연하는 <퇴마:무녀굴>, 고아성, 박성웅의 <오피스> 등 중소 영화들이 상영관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형 투자배급사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있지만, “될 영화는 된다”는 반박도 있다.
한 대형 멀티플렉스 홍보 담당자는 “계열사가 제작하고, 유명 배우가 출연한다고 해서 무조건 상영관을 내주는 것은 아니다. 극장 역시 흥행되는 작품을 걸어야 관객이 들어 수익을 낼 수 있다”며 “스크린 확보 경쟁이 치열한 것은 사실이지만, 개봉 후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돌면 자연스럽게 옥석이 가려지고 관객이 찾는 영화에 더 많은 상영관을 배정한다”고 해명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