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많이 소녀 순결 빼앗나’ 경쟁
미국 최고의 명문고 세인트폴 기숙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남학생들이 후배 여학생들의 순결을 ‘수집’하는 전통이 내려온 것으로 밝혀져 파장이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로 알려진 오웬 라브리에(19)가 15세 후배 여학생을 학교 캠퍼스 내 건물 옥상의 기계실로 데리고 간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당시 라브리에는 졸업을 이틀 앞둔 상태였으며, 여학생은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당시 전교회장이었던 라브리에는 후배들을 책임감 있게 잘 챙기는 모범생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틀 후 열린 졸업식에서는 ‘학교 활동에 헌신했다’는 이유로 학교장상을 받았으며, 하버드대에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후 신학을 전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라브리에는 결국 하버드대에 입학하지 못했다. 성폭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하버드대 입학 허가가 취소됐기 때문이었다.
오웬 라브리에
소녀는 기계실로 자신을 데리고 들어간 라브리에가 갑자기 달려들더니 키스를 하자 당황했다. 라브리에는 이내 여학생의 속옷을 억지로 벗기려고 했고, 소녀는 ‘안 돼’라면서 양손으로 속옷을 꼭 붙잡고 저항했다. 라브리에의 행동을 멈추려고 했지만 소녀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소녀는 “그는 아주 공격적이고 빠르게 밀어붙였다”라면서 “브래지어를 벗긴 후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세게 가슴을 깨물었다”라고 진술했다. 이에 덧붙여 검사 측은 “성경험이 없는 15세 소녀였다. ‘노’라고 말하려고 노력하면서 몸짓으로는 안 된다는 표현을 하려고 애썼다”라고 말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선후배 간의 성폭행이 단순히 혈기왕성한 한 10대 소년의 충동적인 범죄 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는 데 있었다. 검사는 사건이 벌어졌던 캠퍼스 내 건물의 옥상 열쇠가 남학생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대대로 물려주면서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열쇠란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수년 전부터 전통적으로 열쇠가 대물림되면서 비슷한 용도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검사는 라브리에가 2014년 3월 31일, 한 차례 소녀들의 명단을 작성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명단은 ‘선배 예식’에 초대하기 적합한 소녀들의 이름이었다”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따라서 라브리에가 충동적으로 사건을 저질렀다기보다는 수개월에 걸쳐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라브리에의 변호인 측은 소녀의 주장이 100% 사실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는 상태. 라브리에는 그저 서로 호감을 갖고 있던 선후배가 만나 데이트를 했을 뿐이고, 이 과정에서 키스를 하고 포옹은 했지만 성관계는 맺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동의하에 성적인 접촉, 즉 옷을 벗기고, 키스를 하고, 애무를 하긴 했지만 그 이상은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경찰 진술에서 라브리에는 소녀의 주장과 반대로 “오히려 여학생이 나와 성관계를 맺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순간에 자제력을 발휘해서 성관계를 맺지 않았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신적인 영감’을 받아 겨우 참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변호인 측은 라브리에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소녀와 주고받았던 이메일과 페이스북 메시지 교환 내용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 내용을 보면 소녀가 라브리에를 자진해서 만났으며, 주고받은 메시지는 연인처럼 다정했으며, 또한 어떤 면에서는 라브리에를 유혹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가령 달콤한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눈 메시지가 그러했다. 또한 변호인 측은 둘이 만나기 전에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도 증거로 제시했다. 소녀는 만나기 전에 라브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 둘만 몰래 만나는 경우에만 만날래요”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라브리에가 털어놓은 ‘선배 예식’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었다. 이 ‘선배 예식’은 ‘순결 뺏기 게임’이라고도 불렸으며, 비록 일부 남학생들 사이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이긴 했지만 해당 남학생들은 졸업하기 전 여자 후배들의 ‘순결을 수집’하는 경쟁을 벌이면서 이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관계 횟수를 놓고 서로 경쟁했던 남학생들은 세탁기 뒤편의 벽에 점수판을 만들어 놓고 유성 매직으로 횟수를 기록하곤 했었다. 학교 측이 이를 발견하고 페인트칠을 해버리자 점수판을 온라인으로 옮겨 계속해서 경쟁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런 전통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지만 라브리에의 변호인 측은 이미 1971년 여학생 입학이 허용됐을 때부터 내려온 오래된 전통이며, 여기에 기꺼이 참가하길 희망하는 여학생들도 더러 있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소녀들은 예식에 참가하는 것을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예식의 중심은 바로 여학생들이었다”라고 말했다.
사실 세인트폴 교내의 문란한 전통에 대해서는 이미 몇몇 졸업생들의 입을 통해 간간히 알려진 바 있었다. 가령 현 컬럼비아대 사회학 교수이자 세인트폴 졸업생인 샤머스 칸은 2011년 출간한 책 <특권: 세인트폴 학교의 엘리트 청소년 만들기>에서 학교 내에서 행해지는 전통 의식에 대해 몇 가지를 소개한 바 있었다. 대부부의 의식은 주로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용됐으며, 일부 의식은 성적인 행위와 연관되어 있기도 했다. 가령 ‘뉴비 나이트’는 신입 여학생들이 과거 성관계 경험에 대해서 털어놓는 자리였다.
세인트폴 파문이 커지는 가운데 미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성폭행당한 미국 여성들의 절반 가까이가 이미 18세 이전에 성폭행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미시간대 사회학과 교수인 엘리자베스 A. 암스트롱은 “성폭행은 대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고등학교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세인트폴 기숙학교 어떤 곳 미국서 ‘두 손가락’ 안에 꼽혀 뉴햄프셔주 콩코드에 위치한 세인트폴 기숙학교는 미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명망 높은 사립 고등학교다. 미 8개 명문학교연합(ESA) 고교 가운데 하나에 속하며,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률이 높아 아이비리그 대학의 예비학교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 매년 졸업생들의 50%가 아이비리그 대학 또는 그에 버금가는 수군의 명문대에 입학하고 있다. 세인트폴 기숙학교 출신 유명인사 로버트 뮐러 전 FBI 국장, 존 케리 미 국무장관, 로버트 F. 케네디의 아들 마이클 케네디(왼쪽부터). 1856년 개교한 이 학교는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기숙학교로, 여학생들의 입학이 허용된 것은 1971년부터였다. 역사가 깊은 만큼 뿌리 깊은 전통도 많은데 가령 일주일에 두 번 전교생들이 정장을 갖춰 입고 교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전통도 있다. 까다로운 입학 조건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으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낙방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교생은 530명 정도며, 미 전역 및 전 세계에서 온 유학생들이 입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령 2014-15년 입학생 가운데 17%가 전 세계 25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었다. 학비와 기숙사비를 모두 포함해서 연 5만 3810달러(약 6400만 원)의 비용이 든다. 명문고인 만큼 졸업생 면면도 화려하다.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했는가 하면, 외교관 13명, 퓰리처상 수상자 3명, 월드시리즈 포커 대회 우승자 2명도 세인트폴 출신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로버트 뮐러 전 FBI 국장은 1962년 졸업한 동기생이며, 이밖에 명문가인 애스턴 가문과 케네디 가문의 자녀들도 상당수 이 학교를 졸업했다. 로버트 F. 케네디의 아들인 마이클 케네디가 대표적인 경우다. 또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연재만화 ‘둔스베리’의 작가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개리 트루도, 은행가 겸 독지가인 J.P 모건 주니어, 세계은행 전 총재인 루이스 톰슨 프레스톤, 작가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새뮤얼 엘리엇 모리슨, 뉴욕시 발레단 수석 무용수인 필립 닐 등도 이 학교 동문이다. 이밖에 다이애나비의 외조부이자 영국 보수당 의원을 지낸 에드문드 모리스 버크 로셰와 버나드 마키하라 미쓰비시 상사 전 CEO 등도 세인트폴 졸업생이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