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농협 회장 선거 힘 겨루기
정 씨의 회사 매출액 절반은 NH개발 사업 수주와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 최원병 회장의 동생이 정 씨 회사에 고문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검찰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결국 검찰은 정 씨의 특혜성 수주와 대가성 거래 여부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일요신문>은 정 씨 체포 직후 그의 최측근이라고 주장하는 A 씨와 만났다. 그는 이번 수사의 ‘의도성’에 주목했다. A 씨는 “정 씨가 횡령 혐의에 대해선 분명히 인정한다. 증거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할 말 없다”라면서도 “하지만 최 회장과 관련해 수주를 목적으로 상납을 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이미 회사를 창업한 22~23년 전부터 농협 말단 직원들과 인적 관계를 맺으며 성장했다. 그런 인적 배경이 쌓여서 지금까지 온 것이다. 최 회장 이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형태의 영업을 계속해 왔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수사는 누군가의 제보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내년 1월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예정돼 있는데, 벌써부터 조합장들의 신경전이 치열한 상황이다. 내년 선거에서 현직인 최 회장의 입김은 상당하다. 그러한 농협 내 정치지형에서 최 회장의 지원이 없으면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최 회장 반대쪽의 B 조합장이 최 회장의 타격을 염두에 두고, 정 씨와 관련해 제보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정황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A 씨는 ‘반 최원병’ 조합장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는 친박계 인사를 실명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B 조합장 뒤에 친박계 실세인 C 의원이 있다”라며 “C 의원의 지역구 선거 때, B 조합장이 두어 차례 방문한 것을 목격한 사람도 있다. 이번 수사에 정치권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A 씨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이번 검찰 수사에 실마리를 제공한 곳은 다름 아닌 최 회장과 경쟁관계에 있는 농협 내 세력이며, 이는 정치권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 즉, 검찰 수사의 물밑에는 농협 조합장들 간의 경쟁구도가, 또 그 물밑에는 정치권의 구도가 흐른다는 설명이다.
물론 A 씨의 말은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농협을 구성하는 각 단위조합과 정치권의 상관관계는 이미 예전부터 회자되어온 얘기다. 농협은 전국 1134개 단위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조합을 이루는 전국의 조합원들은 약 235만 명에 달한다. 하나의 조합은 적게는 1000명에서 많게는 1만 명의 조합원들로 구성된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관계자는 “한 지역의 조합장들과 해당 지역의 정치인들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라며 “지역 금융을 좌우하는 조합장은 지역 내 어마어마한 권력자이고, 정치인 입장에서 조합장과 조합은 거대한 표밭이다. 또 조합장 입장에선 차기 선거 재선(조합원 직선제) 혹은 좀 더 큰 꿈(회장직·대의원 조합장 간선제)을 꾸기 위해 정치권의 협조가 상당히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전남 지역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한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 지역구만 해도 크고 작은 조합이 네 개가 있다”라며 “특히 우리 같은 농·어촌 지역구에선 이러한 조합원들이 큰 표밭을 차지한다. 올 3월 치러진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와 같이 큰 이벤트가 있으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라고 말을 대신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관계 탓에 이전 검찰 수사와 달리, 정치권의 목소리가 뜸한 이유이기도 하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농협 수사와 관련한 공식 논평이나 브리핑은 현재까지 전무하다. 지난 8월 13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농수산위 소속 신정훈 의원(농어업담당 원내부대표)이 검찰 수사와 관련해 간략히 언급한 정도다.
앞서의 농수산위 관계자는 “이전 검찰의 정치 수사 의혹과 관련해 정치권에선 제법 큰 목소리가 나왔다. 포스코를 비롯한 자원수사만 하더라도 여러 의혹이 정치권에서 제기되며 검찰 역시 적잖은 압박을 받았다”라며 “하지만 이번 농협 수사와 관련해, 몇몇 인사들의 발언이 나오긴 했지만 대체로 정치권은 차분한 분위기다. 관련 상임위인 농수산위 쪽도 마찬가지다. 자칫 잘못 나섰다가 자신과 자신의 지역구까지 칼날이 올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