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점 떼내고 마른 행주 쥐어짜니…
현대증권의 흑자전환을 이끈 윤경은 사장. ‘아름다운 퇴장’은 지난한 일일까? 거액 ‘셀프 포상금’이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현대증권은 최근 몇 년간의 실적 부진을 씻고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서일까.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은 올해 상반기 6억 원의 포상금(인센티브)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현대증권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윤경은 사장은 2015년 상반기에 총 10억 850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세부적으로 보면 윤 사장은 상반기 동안 급여 3억 5000만 원에 직무수당 1억 3000만 원, 포상금은 6억 원 등을 챙겼다.
이는 증권사 현직 전문경영인(CEO) 중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13억 14만 원)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액수다.
현대증권 측은 윤 사장의 포상금에 대해 “2014년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이 전기 428억 원 적자에서 373억 원으로 흑자전환했고, 경영정상화를 위한 공로를 감안해 보상위원회의 결의로 지급하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윤 사장의 이번 성과급 지급을 두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대그룹 자구계획의 일환으로 일본계 사모펀드 오릭스 프라이빗에쿼티로의 매각작업을 마무리 중인 현대증권은 지난 8월 24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새 대표이사에 김기범 전 KDB대우증권 사장을 내정했다. 이어 현대증권은 오는 9월 16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김 내정자의 선임을 확정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통과되고 김 내정자가 사장에 오르면, 현대증권은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오릭스 체제로 다시 시작하게 된다.
김 내정자가 현대증권의 새로운 대표이사에 오름에 따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선임한 윤 사장은 물러나게 됐다. 따라서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돈을 챙기기 위해 스스로 성과급을 지급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대증권 측은 반기보고서를 통해 ‘보상위원회 결의로 포상금을 지급하였다’고 밝혔다. 현대증권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보상위원회는 사내이사인 윤 사장과 2명의 사외이사, 총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상 윤 사장이 자신에 대한 포상금 지급을 결의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증권 한 관계자는 “현대증권이 지난해 부진에서 벗어나 흑자전환하고 성과가 좋았던 것은 맞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봐야한다. 현대증권은 증권사 중 지난해 정규직을 가장 많이 해고했다. 금융기관의 경비절감은 인건비와 전산비용 절감이 대부분이다. 또한 지난해 업황이 좋아지면서 장이 살아났다. 현대증권만 흑자가 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증권사가 다 수익이 증가했다”며 “최고경영자 개인의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현대증권만 수익이 발생하고 흑자전환했다면 인정하겠다. 하지만 직원들을 자르고 장이 살아나 실적이 호전된 것을 두고 성과를 냈다고 포상금을 챙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대증권은 지난해 400여 명의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30일 기준 정규직 직원은 2368명이었지만, 1년 사이 504명이 줄어 올해 6월 기준 1864명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504명이 줄어든 것은 국내 증권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이 기간 동안 비정규직 직원은 167명에서 143% 증가해 406명으로 대폭 늘었다.
또한 업계에서는 현대증권이 윤 사장뿐만 아니라 임원과 각 지점의 지점장들에게도 성과급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은 외부는 물론 직원들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
결국 윤 사장과 관리직급인 지점장들은 실적을 인정받아 포상금을 받았는데, 일선의 일반직원들에게는 인센티브가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증권 내부에서는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는 등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앞서 현대증권의 한 관계자는 “물론 경영진들도 현대증권 성과를 위해 열심히 일했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조정 등 회사 경영정상화를 위해 피해를 감수하고 양보한 것은 직원들이다. 그런데 실적이 나오자 직원들은 빼놓고 윤 사장과 임원, 지점장들끼리만 포상금을 나눠가졌다. 그런 사실이 몰래 쉬쉬한다고 감춰질 수 있겠느냐”며 “경영진이 리더십을 발휘해 직원들과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도록 해야 하는데, 도리어 돈 때문에 임원진·지점장과 직원들 사이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직원들의 불만 목소리가 높아지자 결국 전국민주금융노동조합 현대증권지부에서도 “윤 사장에 대한 포상은 악의적으로 자행된 구조조정에 대한 포상”이며 “2014년 흑자전환과 2015년 상반기 성과를 이루기 위한 조합원의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실시하라”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