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요’ 싫어 떠났더니 가는 곳마다 ‘생지옥’
최근 자발적으로 ‘해외 취업’을 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실상은 매우 참담하다. 사진은 마카오 현지 성매매 업소.
“큰돈은 하루도 쉬지 않고 악착같이 일해야만 벌 수 있었다. 그래도 빚만 늘고 남은 게 없어 또 다시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만 반복됐다.”
일본에서 원정 성매매 경험을 한 A 씨(여·30)는 <일요신문>과 만나 이렇게 운을 뗐다.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년간 일본에서 원정 성매매를 했다는 그는 “한국에서 텐프로나 룸살롱을 전전하는 생활에 회의가 들었다. 벌이도 시원찮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숨이 턱턱 막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특히 ‘나가요’를 바라보는 시선과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지난 2012년, A 씨에게 함께 일하던 룸살롱 업주가 ‘해외 취업’을 알선했다. 그는 “환율 차이로 월 1000만 원은 거뜬히 벌 수 있고, 업무 강도나 수위도 낮다. 깨끗한 업소에서 술시중만 들면 된다”는 말로 권유했다고 한다. A 씨는 “당시 할 수 있는 게 그 일밖에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본까지 가서 술집에 나간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다른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주의 유혹에 빠져 일본에 도착한 A 씨는 빚부터 얻었다. 당장 살 곳이 없어 가게에서 ‘마에킹’ 또는 ‘반스’라 불리는 선금 5000만 원을 받은 것. 1년에서 3년 내에 갚아야 하는 돈이다. 관련 업계 여성들이 합숙하는 ‘료’라는 맨션이 있었지만, 그 사실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통해 나중에야 알게 됐다고 한다.
A 씨가 일했던 곳은 ‘크라브’라는 오픈 바 형태의 고급 단란주점이었다. A 씨는 “첫인상은 괜찮았다. 알선해준 업주의 말대로 오픈된 공간에서 남성들과 술을 마시는 일이 전부였다. 2차(성매매) 강요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었다. A 씨는 “일했던 크라브는 철저하게 매출 위주였다. 매달 매상에 따라 여성들의 순위를 매기고 거기에 따라 월급이 나왔다. 매출을 올리려면 ‘도항(동반)’이라는 것을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며 “도항은 쉽게 말해 출근 전 손님을 미리 만나 가게로 데려오는 것을 말하는데, 손님을 얼마나 끌어오느냐에 따라 월급이 달라졌다. 결국 매일 영업시간 외에 손님과 대가 없이 데이트를 하면서 성매매 아닌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월 10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었다. A 씨는 “보통 하루에 25만~30만 원을 벌긴 했다. 그 가운데 70%는 빚을 갚고 가게에 수수료를 내야 해 실제로 번 돈은 월 300만 원 정도였는데, 이 돈도 옷이나 화장품 등 치장하는 데 사용해야 했다. 결국 가게에서 생활비 명목으로 또 다시 돈을 빌렸다”고 말했다.
A 씨는 일본에 간 지 5개월 만에 탈출을 결심했다. “이렇게 살다간 평생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1년 동안 악착같이 모았다. 식사비부터 모든 생활비를 줄이고 어떻게든 빠져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결국 일본에 간 지 1년이 조금 지나서야 빚을 다 갚았다. 그나마 운이 좋았던 편”이라고 털어놨다.
그렇게 힘들게 탈출에 성공했건만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모아둔 돈도, 마땅한 기술도 없었던 A 씨는 결국 다시 일본행을 선택했다. 이번엔 ‘데리헤르’ 또는 ‘호텔헤르’라 불리는 호텔 출장 성매매였다. A 씨는 “몇 해 전 이슈가 됐던 ‘원정녀 동영상’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그 일도 오래하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주한 일본대사관은 A 씨가 비자를 신청했던 지난 2014년 상반기, 만 26세 이상 한국 여성의 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을 사실상 중단했다. 당시 주한 일본대사관 측은 “영사가 심사 권한을 갖고 있어 관련 내용을 알려줄 수 없다”고 했지만, 유학원 업계나 일본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원정 성매매로 한국 여성들이 강제 추방되는 사례가 꾸준히 늘면서 일본 정부가 아예 원천 차단해버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일본의 단속이 심해지자 미국과 호주로 눈을 돌린 여성도 있었다. 지난 2011년부터 미국에서 2년간 일하다 호주를 거쳐 지난해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B 씨(여·28)는 “미국과 호주는 팁 문화가 있어 일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외국 남자들은 매너도 좋다는 말에 미국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마카오 원정 성매매 조직이 적발됐다. 사진은 성매매 여성 모집 전단지.
벌이도 시원치 않았다. B 씨는 한 달 200만 원에서 많을 때는 400만 원까지 벌었지만, 역시 소개료와 수수료 명목으로 수입의 절반 이상은 가게와 브로커에게 돌아갔다. 나머지는 성형수술이나 사치품을 사는 데 지출했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몸이 아파도 병원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 B 씨는 “병원비도 비싸고 보험도 들 수 없었다. 한 번은 성병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한인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약을 받아 대충 몸을 추스르는 것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2년을 보낸 B 씨는 지난 2013년 가슴 성형을 위해 잠시 한국에 돌아왔다. 이때 평소 알고 지내던 브로커에게 “호주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해당 브로커는 “호주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성매매가 합법이다.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도 많아 미국보다 편할 것”이라는 말로 B 씨를 꼬드겼다. 유혹을 이기지 못한 그는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여권 발급, 비자 신청, 항공권을 구입해 한 달 만에 호주로 떠났다.
B 씨는 “공항에 도착하니 한국인 중년 남성이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라며 편하게 대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B 씨가 중년 남성과 함께 간 곳은 시드니 외곽지역의 한 아파트였다. 방 2개짜리였는데 각 방에는 2층 침대가 두 개, 세 개씩 놓여있었고 옷장도 두 개였다고 한다. 업소 여성 총 11명이 머무는 숙소였다. B 씨는 아파트에 대해 “방값은 한 주 머무는 데 100호주달러(당시 환율 11만여 원) 정도였다. 보증금 명목으로 2주치를 내고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B 씨가 짐을 풀기도 전에 ‘삼촌’은 이상한 요구를 했다. 자신이 여권을 맡아 두겠다는 것. 그는 B 씨에게 “여권을 잃어버리면 신분을 증명할 수도 없고 새로 발급도 어렵다. 따로 복사본을 주겠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B 씨는 여권을 순순히 내줬다.
B 씨가 호주에서 일한 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마사지 업소였다. 샤워실과 침실이 딸린 각 방에는 마사지 전용 침대와 TV, 에어컨 등이 구비돼 있었다고 한다. 입구부터 복도 등 각 구역마다 CCTV도 설치돼 있었다.
수입은 미국보다 좋았다. B 씨는 “하루 평균 600달러(70만 원)가량 벌었다. 일주일에 3500~4000달러(400만~470만 원)는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B 씨에게 돌아오는 것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B 씨가 벌어들인 수입을 소개료, 수수료 등을 포함해 3 대 7 정도로 나눴다. 결국 B 씨 손에 쥐어진 돈은 일주일에 1200달러(140만 원)가 전부였다. 업무 강도도 높았다. B 씨는 “평균 10시간에서 11시간가량 일해야 했으며, 사장이 운영하는 다른 업소로 출장을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호주에서 3개월을 보낸 B 씨. 힘에 부쳐 결국 한국에 돌아올 결심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귀국도 쉽지 않았다. 도착한 날 업소 측에 맡겼던 여권을 돌려받지 못한 것. B 씨는 “온갖 변명을 하면서 여권을 돌려주지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6개월이 지나버렸다. 신고를 하겠다고 소란을 피우자 여권을 돌려줬다”고 털어놨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B 씨의 통장엔 1000만 원가량이 들어있었다. 타지에서 10시간씩 6개월 동안 성매매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다. B 씨는 “2~3년 고생해서 작은 커피숍 하나 차리겠다는 생각으로 갔지만, 남은 것은 그게 전부였다”며 허탈해 했다.
A 씨와 B 씨는 최근 적발된 동남아 원정 성매매 사정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A 씨는 “2~3년 전부터 동남아 원정 성매매는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브로커에게 직접 권유를 받기도 했다”면서 “특히 마카오는 거리도 가깝고 카지노로 유명한 도시라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 성매매 업자들과 여성들이 많이 찾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동남아 지역은 상대적으로 국내 경찰의 단속이 심하지 않다는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16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0년 78명이었던 해외 원정 성매매 검거자는 2011년 341명, 2012년 274명, 2013년 496명으로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마카오나 태국, 베트남 지역에서 적발된 건수는 전무하다. 지난 2009년엔 태국과 베트남에서 각각 16건, 15건씩 적발했지만, 이는 성매매 관광을 떠난 성매수 남성들이다. 성매매를 알선한 업자나 여성들이 적발된 적은 없다.
A 씨와 B 씨는 “최근 자발적으로 ‘해외 성매매 취업’을 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단속이 있든 없든, 일확천금을 노리고 ‘기회의 땅’이라며 원정 성매매를 떠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업자와 브로커들이 ‘고수익 보장’ ‘깨끗하고 수위 낮은 업소’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
A 씨는 “현지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호주 등지는 이미 현지 경찰과 국내 경찰들의 단속이 심해져 고수익은 거의 불가능하다. 큰돈을 벌어오는 여성들도 있겠지만 굉장히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B 씨 역시 “타지에서 고생해 남은 것은 처벌과 후회뿐”이라고 거들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