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 칼날’ 다가오자 일단 ‘낮은 자세’
신동빈 회장의 자구책에도 정치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국감 증인채택을 둘러싼 힘겨루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요신문DB
신 회장은 지난 8월 28일 사재를 털어 롯데건설이 갖고 있던 롯데제과 주식 1만 9000주를 전부 매입했다. 이로써 신 회장의 롯데제과 지분율은 6.67%로 높아졌다. 롯데제과 개인 최대주주인 신격호 총괄회장(6.83%)과 불과 0.16%(2207주)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신 회장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롯데제과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
신 회장의 롯데제과 지분 매입은 롯데그룹 순환출자 구조 단순화 작업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게 다가왔다. 신 회장은 이 한 방으로 ‘롯데건설-롯데제과-계열사-롯데건설’로 이어지는 140개의 순환출자 연결고리를 풀어냈다.
신 회장은 또 이를 통해 그룹 순환출자구조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롯데제과에 대한 영향력을 높였다. 향후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변화와 관련해 본인의 지배력을 강화한 것이다. 증권업계 기업 지배구조 부문 연구원들은 롯데그룹 지배구조개편 과정을 통해 향후 롯데제과가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제과는 지배구조상 핵심회사로 오너의 지분율이 더 높아지는 등 그룹 내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은주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롯데제과는 그룹 지배구조상 핵심에 위치한다”며 “향후 지배구조 개편에 따라 롯데제과의 기업 가치도 재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치호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일본 롯데와의 컨트롤타워 일원화 이후 롯데제과는 글로벌 업체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신 회장의 롯데제과 지분 매입은 순환출자 구조도 해소하고 그룹 장악력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8월 11일 경영권 분쟁과 관련, 대국민사과와 함께 그룹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을 약속했다. 롯데그룹은 신 회장이 약속한 바를 추진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팀까지 출범했다. 첫 번째 작업이 바로 롯데건설이 보유하고 있던 롯데제과 지분을 매입한 것. 올해 말까지 그룹의 416개 순환출자 고리 중 80%를 해소하고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를 약속한 만큼 롯데그룹과 신 회장은 꽤 바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롯데를 향한 사정기관과 정치권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 문제다. 롯데와 신동빈 회장은 가족 간 경영권 분쟁으로 촉발된 원성과 비난을 돌리기 위해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분노까지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특히 ‘국정감사 시즌’을 맞은 정치권에서 롯데와 오너 일가를 가만두지 않을 심산으로 보인다.
우선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무위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위, 환경노동위, 국토교통위 등 무려 7개 상임위에서 신동빈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여당인 새누리당도 신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정도로 신 회장은 국감 증인 채택 0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그동안에도 재벌 오너에 대한 국감 증인 채택 요구가 있었지만 올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한마음 한뜻인 적은 드물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의원 한두 명 정도만 대기업 총수 증인 채택을 요구해왔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며 “특히 롯데가 경영권 분쟁으로 큰 혼란을 초래한 만큼 오너 일가에 대한 증인 채택 요구가 거세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롯데는 신동빈 회장뿐 아니라 신 회장 누나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도 국감 증인 신청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홍기획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국세청이 조사 대상을 롯데푸드로 확대한 것도 롯데를 향한 사정 칼날이 더욱 날카로워진 것 아니냐는 해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롯데리아가 세무조사를 받은 것에 이어 대홍기획과 롯데푸드까지 한꺼번에 세무조사를 받음으로써 롯데에 대한 사정기관의 압박이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국세청이 이들 3개 계열사를 동시에 들여다본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홍기획-롯데리아-롯데푸드’는 큰 틀에서 롯데그룹 순환출자구조의 핵심 3개 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롯데 측은 “정기 세무조사일 뿐 경영권 분쟁과 관련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재계에서는 롯데그룹이 신동빈 회장의 국감 증인 출석만큼은 반드시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반(反) 롯데 정서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신 회장이 국감 증인으로 출석한 장면이 중계된다면 더 큰 망신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의 의지가 반영이라도 된 듯 지난 3일 확정된 산업통상자원위의 국감 증인 명단에는 신 회장의 이름이 빠졌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롯데의 로비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워낙 많이 알려져 있다”며 “하지만 최근 기업에 대한 정치권 시선이 너무 좋지 않아 다른 곳에서는 어떨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신동빈 회장이 올해 말까지 하기로 약속한 ‘순환출자고리 80% 해소’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해소하는 데 드는 비용도 수조 원이 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3000억 원 정도면 가능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2일 펴낸 하나대투증권의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 대해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호텔롯데가 계열사 지분을 직접 매입하면 간단하다는 것. 하나대투증권은 이 보고서에서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해소 방안은 임박한 일정을 고려하면 분할·합병을 통한 지분 이동보다는 지분 직매입이 예상된다”며 “해소 비용은 예상보다 크지 않아 3000억 원대로 추정한다”고 분석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