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까지 매출 2배 올릴 ‘묘수’ 있다?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본사 입구. 15일 신주 거래가 이뤄지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절차가 실질적으로 마무리된다. 오른쪽은 이재용 부회장. 연합뉴스
합병 주총 직전 19만 원을 넘었던 제일모직 주가는 한때 13만 원 초반까지 추락했다. 합병기일인 1일 17만 원대를 회복했지만 여전히 주총 전 수준에는 못 미친다. 만약 15일 신주상장 이후 현 주가 수준을 유지한다면 시가총액은 약 32조 원이 된다. 자산은 34조 원, 순자산은 18조 원이다.
합병으로 인한 거래정지 전 삼성물산은 순자산 13조 5313억 원에 시총 7조 5141억 원에 불과했다. 삼성전자 등의 계열사 지분 13조 6000억 원은 매각 가능성이나 분쟁 가능성이 거의 없어 경영권 프리미엄은 물론 자산가치도 인정받지 못한 까닭이다. 반면 제일모직의 순자산은 불과 4조 8000억 원임에도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한다는 모선(母艦)이란 위상 덕분에 무려 23조 원의 시총을 받았다.
문제는 합병만으로는 새롭게 주가를 끌어올릴 재료가 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미 제일모직 주가에 상당한 수준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국내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지금의 제일모직 주가는 사실상 지주사라는 프리미엄, 특히 이재용 부회장이 1대주주인 유일한 회사라는 기대감이 상당히 높게 반영된 결과”라면서 “사모펀드는 모르겠지만, 공모펀드로서 현 주가 수준에서 제일모직에 투자할 합리적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결국 추가 주가 상승을 위해서는 실적개선이 필요하다. 양 사의 지난해 연간 세전이익은 약 6000억 원이다. 주가수익비율(PER)로 따지면 무려 50배가 넘는다. 삼성그룹에서 가장 수익이 좋은 삼성전자도 세전이익으로 PER이 20배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아무리 그룹의 지주사 격이지만 이처럼 높은 밸류에이션이 계속 유지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다시 관심을 받는 게 지난 6월 30일 엘리엇매니지먼트와의 합병 주총 표 대결이 한창일 때 삼성 측이 내놓은 합병법인의 사업계획이다.
작년 기준 매출 33조 6000억 원에 세전이익 6000억 원인 회사를 2020년까지 매출 60조 원에 세전이익 4조 원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그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먼저 건설 부문. 작년 16조 2000억 원이던 매출을 2020년 23조 6000억 원으로 연평균 6.5%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부문별로는 건축을 6조 1000억 원에서 10조 6000억 원으로, 플랜트를 3조 6000억 원에서 6조 7000억 원으로 키우는 내용이다. 한 건설담당 애널리스트는 “저유가와 신흥국 경제난으로 사회기반시설은 물론 플랜트 등 설비투자 등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등 시장 상황이 예전만 못한데, 불과 6년 새 매출을 급성장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목표 달성이 가능했다면 건설업 업황이 어둡다고 굳이 제일모직과 합병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사 부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3조 6000억 원이던 매출을 2020년까지 19조 6000억 원으로 늘리는 게 목표다. 핵심은 11조 3000억 원이던 화학 및 철강, 자원 부문을 15조 7000억 원으로 높이는 데 있다. 건설 부문과 마찬가지로 신흥국 경기와 원자재 가격 추이를 감안하면 까마득한 목표다. 소재담당 한 애널리스트는 “화학과 철강 모두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인해 당분간 매출 성장 둔화와 이익 악화가 불가피하다”면서 “원자재 가격 급락으로 당장 취급액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 단기간에 획기적인 매출 성장을 이뤄내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기간 1조 9000억 원에 불과한 패션 부문 매출을 10조 원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도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지적이다. 1조 5000억 원인 일반 의류 부문을 4조 4000억 원으로 키우는 것도 벅차 보이는 상황에서 각각 2000억 원인 SPA 부문과 스포츠 부문을 각각 3조 원과 2조 3000억 원 규모로 성장시키는 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디플레이션 조짐이 뚜렷한 상황에서 이 같은 성공을 거둔다면 일본 유니클로의 성공을 뛰어넘는 신화를 이뤘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레저와 식음료 부문 매출을 지난해 2조 원에서 5년 후 4조 2000억 원으로 키우는 것은 테마파크 등 새로운 시설투자, 진행 중인 인수합병(M&A), 중국 등 해외시장 개척 상황을 감안하면 도전할 만한 숫자라는 평가다. 바이오 부문 역시 일단 공장 가동만 본격화되면 매출 발생이 가능한 만큼 5년래 1조 8000억 원이란 매출 목표가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견해가 많다.
종합하면 현재 매출의 94%, 계획대로라면 2020년 매출의 88.7%를 차지할 건설·상사·패션 부문의 사업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세전이익 달성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배당주 펀드를 운용하는 한 매니저는 “2020년 세전이익 4조 원을 내 주당 4800원을 배당하더라도 현 주가 대비 시가배당률은 2.85%에 불과하다”면서 “이 정도 시가배당률을 제시하는 배당주는 지금도 적지 않은데, 지금 6000억 원인 세전이익을 5년 새 4조 원으로 늘리겠다는 회사 계획만 믿고 투자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도 내놓고 있다. 공통적으로 유망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는 바이오와 레저 부문 외에도 숨은 기대 요인이 있다는 논리다.
우선 시총 상위에 올라 코스피200에 편입된다면 인덱스펀드 등 시장수익률을 추종하는 국내외 펀드들이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 매입할 가능성이 있다. 통합법인은 유통주식 수가 발행주식의 30% 정도로 적어 기관의 입질이 시작되면 주가가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 지난 8월 25일부터 5일간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13만 원이던 주가가 18만 원에 육박할 정도로 급등한 것이 그 방증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SDS와 합병 가능성을 주목했다.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SDS 지분 17.1%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삼성SDS와 합병하면 통합법인이 핵심 소프트웨어 등의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회사들과 수직계열화를 이룰 수 있다”고 관측했다.
양형모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통합 법인이 지주사로 전환하면 얻을 수 있는 브랜드 수입료를 숨은 가치로 제시했다. 현재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소유권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을 비롯한 19개 계열사가 공동으로 갖는 구조지만 통합 삼성물산이 지주회사가 되면 브랜드 소유권을 독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양 연구원은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어떤 브랜드보다 수익 창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상표여서 로열티요율이 타 브랜드 대비 높게 형성될 수 있다”면서 “로열티요율 0.7%에 삼성그룹 연간 매출액 약 300조 원의 80%를 가정하면 브랜드 자산 가치는 15조 원을 상회한다”고 추정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