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여부? ‘참고인’에게 물어봐~
지난 4월 성매매특별법 위헌 법률 심판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는 헌법재판소(위). 위헌 주장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강자 전 총경이 안내를 받으며 법정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왼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2시간여 동안 진행된 공개변론에서 원고 측과 피고 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법정 안은 시종일관 긴장감이 감돌았다. 원고 측은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이 난 경우, 부부 중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이혼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파탄주의(破綻主義)’로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 측은 불륜 등 이혼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有責主義)’가 유지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던 중 원고 측 참고인 이화숙 연세대 명예교수가 파탄주의 도입을 위해선 “약자 보호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법정 안이 술렁거렸다. 이 교수는 흔들림 없이, 파탄주의를 도입해 유책 배우자에 대한 제재가 없고 혼인 의무를 지킨 배우자가 보상 받을 길이 요원해질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상훈 대법관이 “(파탄주의 역기능을 막을 기준이나 원칙 등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교수는 “보완장치 없이 파탄주의로 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대법원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그 순간 파탄주의를 도입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던 대법관들이 유책주의 쪽으로 기울었다”며 “아이러니하게도 파탄주의를 요구하는 원고 측 참고인이 대법관들의 생각을 바꾸게 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지난 1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유책 배우자는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했다. 판단의 근거도 이 교수가 설명했던 것처럼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보호 장치 없이는 파탄주의 도입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것이었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파탄주의로 판례를 변경하기에 적합한 사건을 1년 간 찾아서 공개변론까지 했는데 공개변론이 오히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을 갖는 장이 됐다”며 “공개변론 전 8 대 5였던 상황이 6 대 7로 바뀐 것을 보면 공개변론의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형사사건이든 민사사건이든 치열한 법정 공방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서 형사사건은 결정적 진술을 해줄 히든카드를 증인으로 채택하고, 민사사건에서도 원·피고 측에 유리한 진술을 해줄 참고인을 섭외한다.
하지만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공개변론을 활성화하면서 예상이 빗나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성매매특별법 위헌법률 심판 공개변론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성매매특별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강자 전 총경이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서울 종암경찰서장 재직 시절 ‘미아리 텍사스촌’을 대대적으로 단속해 일명 ‘미아리 포청천’으로 불리는 김 전 총경은 당시 참고인 의견 진술 초반에 성매매 여성들의 절박한 현실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박한철 헌재소장이 ‘성매매특별법 21조 1항이 위헌이라는 취지가 아니냐’고 묻자 “저는 위헌이라고 생각 안한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그러자 ‘심판 대상 법률에 대해 오히려 합법성을 주장하는 것 같다’고 되물었고, 김 전 총장은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는 “생계형에 대해선 고려해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번 달에도 헌재에서 정당 후원을 금지하고 있는 정치자금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공개변론에서 합헌을 주장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 참고인으로 나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민전 교수가 ‘학자적 양심’까지 언급하면서 정당후원을 금지시킨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이어 “민주주의 국가치고 정당 후원제도를 두지 않은 국가는 거의 없다”며 “당원의 당비에만 의존해 당을 꾸려나가는 대중정당 모델은 이미 유럽에서도 유지하기 어려워 지지자 중심 또는 선거 중심 정당 모델로 변화하고 있는 정치 현실 아래 법이 제도적으로 정당후원을 금지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 갓을 쓰고 다니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정당후원 금지제도의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번들링(후원금 쪼개기) 등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촘촘하게 설계하고 구체적으로는 기부자의 신상과 기부자의 고용주까지 명백하게 드러날 수 있게 하는 것이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헌재 관계자는 “김 교수의 의견 진술 후 사실 재판관들의 고민이 매우 깊어졌다”며 “심지어 김 교수가 그 같은 진술을 했는데도 중앙선관위 측은 거기에 대해 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아주 이상한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당이 후원을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은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한나라당의 ‘차떼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만약 정당 후원을 가능하게 하면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는 양대 정당은 보조금에 후원금까지 받아 사실상 돈 잔치를 하게 되고, 현행대로 정당 후원을 막아놓으면 군소정당들이 살아남을 길이 없으니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성매매 여성을 처벌토록 한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헌재가 올해 안에 합헌 결정을 내리고 정당 후원을 금지한 정치자금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일등공신’은 김강자 전 총경과 김민전 교수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여성계 일부에서는 유책 배우자 이혼 청구 불가 대법원 판결 이후 성매매특별법에 대해서도 위헌 결정이 내려지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공개변론에서의 이화숙 교수의 진술이 대법관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김 전 총경 진술도 마찬가지일 거란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법조계 내에선 대법원이나 헌재가 공개변론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머리나 이론으로 사건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공개변론을 통해 양측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보면 결국에 무엇이 현실에 가장 부합하는 판단인지 더 깊게 고민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이 말은 결국 사건 당사자나 변호인은 이기기 위한 최선의 전략 하에서 최고의 참고인을 섭외해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