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자까지 추락했다가 ‘중저가폰’ 들고 컴백
이홍선 TG앤컴퍼니 대표의 첫 작품 스마트폰 ‘루나’가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제공=TG앤컴퍼니
1년 후인 1981년 9월, 삼보컴퓨터는 대한민국 1호 컴퓨터인 ‘SE-8001’을 출시했다. 당시 상공부로부터 ‘국내 1호 PC 생산업체’로 지정받은 데 이어 비공식적으로 ‘대한민국 1호 벤처’라는 호칭도 얻은 삼보컴퓨터는 한국·세계 최초 기록을 쏟아냈다. △‘대한민국 첫 번째 컴퓨터 수출업체’(1982년 6월) △대한민국 최초 한글 워드프로세서인 ‘보석글’ 개발(1985년 6월) △세계 최초 휴대용 랩톱 워크스테이션 개발(1990년 10월) △국내 최초 휴대용 정보기기 PDA ‘잼보드’ 독자 개발(1993년 12월) △세계 최초 모듈러 PC ‘루온’ 출시(2003년 11월) △국내 최초 모니터 일체형 올인원 PC ‘루온 올인원’ 출시(2004년 6월) △국내 최초 모바일 인터넷 디바이스(MID) ‘루온 모빗’ 출시(2008년 12월) 등은 모두 삼보컴퓨터에서 비롯됐다.
1999년에는 저가형 PC인 ‘이머신즈’를 미국시장에 보급해 PC산업의 종주국인 미국시장에서 점유율 3위, 저가시장 1위라는 기록을 달성해 한국 IT산업의 저력을 보여줬다.
#1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맏아들
삼보컴퓨터의 성장세는 창업주인 이용태 전 회장의 카리스마와 개척정신 덕분이었다. 여기에 이 전 회장의 두 아들인 이홍순 전 삼보컴퓨터 회장 및 이홍선 현 TG삼보 대표이사 사장이 힘을 보탰다.
1999년 12월 당시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오른쪽)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합작투자 조인식을 하는 모습. 일요신문 DB
무선호출기 사업은 초반에는 큰 성공을 거뒀고, 두루넷도 인터넷 이용 확산에 맞춰 높은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무선호출기사업과 씨티폰은 1990년대 말 제2 이동통신사업자 및 PCS사업 개시로 휴대전화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퇴출당했고, 두루넷도 대형 사업자들의 공세에 제대로 힘을 써보지도 못한 채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에 인수됐다. 빠르게 변화하는 통신시장의 10년 앞을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 벤처캐피털과 온라인증권사까지 거느리며 한때 삼보컴퓨터의 계열사 수가 30개에 달했는데 대부분 신규 사업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미국 저가 PC시장 1위에 올랐던 이머신즈 사업도 부메랑으로 돌아와 회사의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이머신즈 사업도 이홍순 전 회장이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보컴퓨터 사정에 정통했던 IT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로 인해 이홍순 전 회장은 아버지에게 크게 질책을 당했다고 들었다. 성공에 빠져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등 주변의 충고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이홍순 전 회장의 고집은 상당했다. 도도한 그의 태도 또한 업계와 언론계에 회자되면서 회사의 이미지까지 나쁘게 만들었던 게 사실이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화려한 성공 뒤에 벌어진 연이은 실패. 경영자로서 능력이 부족했던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준 이 전 회장의 패착으로 인해 삼보컴퓨터는 2005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전 회장과 이홍순 전 회장은 경영권을 상실했고, 회사는 채권단에 넘어갔다. 대한민국 벤처기업 1호였던 삼보컴퓨터의 성공신화는 일단 끝이 났다.
#재기 위해 뛰는 둘째아들
TG삼보로 이름을 바꾼 삼보컴퓨터가 오랜만에 언론에 회자되고 있다. SK텔레콤과 제휴해 개발한 40만 원대 중저가폰 ‘루나(LUNA)’가 지난 3일 출시 후 하루 평균 2500대꼴로 팔리는 ‘대박’을 치고 있는 것이다.
루나를 개발한 TG앤컴퍼니는 이 전 회장의 차남 이홍선 사장이 2011년 창업한 중소 스마트기기 제조업체다. 이 사장은 회사의 전신인 나래텔레콤(TG앤컴퍼니)을 설립해 TG삼보를 인수했다. 회사를 내준 지 7년 만이다. 삼보컴퓨터가 부도났을 때 오너 일가는 모든 재산을 압류당해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했는데, 이홍선 사장이 지인들에게 부탁해 인수자금을 마련했다.
부실 경영의 책임을 지고 경제사범으로 낙인 찍힌 뒤 2008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아 재기의 기회를 얻은 이홍선 사장은 과거 삼보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나섰다.
한때 매출 규모가 4조 원대에 달하며 국내 PC시장 2위였던 회사는 1000억 원대의 그저 그런 기업으로 전락했다. 이홍선 사장은 회사를 되찾았지만 공장 건물 등은 인수하지 못한 채 ‘삼보’라는 사명만 가져왔다. 애플이나 나이키처럼 제조업체지만 제조는 제휴사에 맡기는 상품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이홍선 사장의 넓은 인맥은 눈여겨볼 만하다. 덕분에 루나도 탄생할 수 있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는 미국 유학 시절 만나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은 소프트뱅크코리아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과 친분도 깊다. 궈타이밍 회장은 TG앤컴퍼니의 지분 일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콘은 루나를 생산하고 있다.
TG삼보를 인수한 뒤 이홍선 사장은 공공부문에 역점을 둬 PC사업의 안정된 판로를 개척하는 한편, 빅 디스플레이를 통한 TV사업에 진출하는 등 틈새시장을 공략해 나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첫 작품인 루나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으로 TG삼보의 스마트폰 사업이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며 “IT 대기업이었던 TG삼보가 다시 한 번 성공신화를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정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