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복병 등장에 유통 공룡들 골머리
롯데와 SK가 서울 면세점 기존 사업권 수성 전략을 짜는 동안 두산이 면세점 사업 출사표를 던져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롯데면세점 소공동 본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또 롯데면세점의 지난해 매출이 전체 면세점 시장 점유율의 50%를 넘어 독과점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롯데 면세점의 시장점유율은 2012년에 57.7%, 2013년에 60.3%, 2014년에 60.5%로 지속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은 올해 말 만료되는 면세사업권 서울 3곳과 부산 1곳에 대한 특허신청을 오는 25일 마감할 계획이다.
오는 11월 16일에 SK네트웍스의 워커힐면세점이, 12월 22일과 31일에는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월드타워점이, 12월 15일에는 부산 신세계면세점 특허기간이 끝난다. 4곳이 비슷한 시기에 사업권이 종료되면서 새로운 사업자 선정을 위한 절차를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면세점 특허가 10년마다 자동 연장됐지만, 지난 2013년 관세법이 바뀌면서 기존 사업자들은 5년마다 특허권을 재신청해야 한다. 특히 관세청은 기존 면세점 특허신청도 신규 면세점처럼 백지상태에서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롯데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롯데면세점의 소공점과 월드타워점의 연매출은 각각 2조 원과 6000억 원으로 총 매출의 절반을 넘어 놓칠 수 없는 알짜사업장이다. 면세점 사업을 영위하는 호텔롯데가 기업공개(IPO)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곳의 사업장만 놓쳐도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두산이 지난 2일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다크호스’로 떠오르자 위기의식도 커졌다. 롯데는 35년의 면세점 운영 경력과 기존 사업자라는 강점을 내세우며 수성 전략을 짜고 있다.
일각에서는 롯데가 소공점과 월드타워점을 사수하기 위해 아직 특허권이 종료되지 않은 코엑스몰면세점 사업권을 자진 반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코엑스몰점의 경우 규모가 작고 실적도 좋지 않지만 시내면세점 사업권 때문에 포기할 수 없어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계륵’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신동빈 회장이 알짜 사업장 2곳을 지키기 위해 통 큰 결단을 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것이다.
신동빈 롯데 회장, 박용만 두산 회장
지난 7월 신규 시내면세점 선정에서 고배를 마신 SK는 기존 사업장에 대한 재승인 신청만 할 예정이다. 애초 롯데면세점 사업권에 도전할 계획이었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불필요한 과열 경쟁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특별사면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SK가 면세점 경쟁에 뛰어들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어 이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광장동에 위치한 워커힐면세점은 대중적 인지도가 낮고 위치도 좋지 않아 중국인 관광객 유치 효과 등이 낮은 상태다. 이에 일각에서는 워커힐면세점이 시내면세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등 사업자 재선정에 떨어질 확률이 커 SK가 수성 전략으로 돌아선 것으로 평가했다.
롯데와 SK가 기존 사업장 수성에 ‘올인’하는 상황에서 두산이 복병으로 떠올랐다. 두산은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협의회와 상생협약을 맺고 동대문 두산타워를 면세점 후보지로 선정했다. 두산타워 쇼핑몰은 그대로 유지하고 다른 층을 면세점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두산은 중국인 관광객이 명동 다음으로 많이 찾는 곳인 동대문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관광산업 활성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두산타워와 동대문 시장에 저렴한 의류 브랜드가 많아 면세점 이외에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다양한 쇼핑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두산의 면세점 사업자 출사표를 두고 박용만 두산 회장의 유통사업 재진출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두산그룹은 구조조정 작업을 통해 음료와 주류 사업은 물론 의류, 식품사업 등을 정리하고 중공업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바꿨다. 그러나 경기불황으로 두산의 건설, 조선, 중공업 등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면서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성장성이 큰 면세점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확보하기 위해 두산이 뛰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박용만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현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롯데와 SK는 두산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난 7월 신규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보면 정치적인 논리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두산이 다크호스로 평가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신세계도 서울시내 면세점 진출에 대한 의지가 커 이번 사업자 신청에 다시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신세계는 명동 본점과 강남 센트럴시티점 2곳을 면세점 후보지로 내세워 특허를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은 재도전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지만, 막판에 강남 코엑스점을 면세점 후보지로 정하고 사업계획서를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면세점 사업자 재승인의 경우 신규 신청과 달리 특허가 만료된 기존 면세점이 속한 도시만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이번 서울시내 면세점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은 여기에 모두 도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이 막판까지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곳에 신청하기 위해 눈치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신세계가 롯데 소공점에는 명동 본점을, 월드타워점에는 센트럴시티점을 후보지로 내세워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 7월 이뤄졌던 신규 면세점의 경우 하나의 후보지만 정해서 참여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3개 특허에 모두 신청을 할 수 있다”며 “롯데도 소공점과 월드타워점 가운데 하나를 뺏길 수 있는 만큼 워커힐면세점 사업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수싸움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진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