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에 쥐를?…내 취향 아니거든”
아마도 1980년대로 추정된다. 미국엔 이상한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응급실에 온 한 남자가 의사에게 항문과 직장 부분에 출혈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증상의 이유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를 회피하면서,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부분에 뭔가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의사가 살펴보니 이상한 이물질이 있었고 출혈은 계속된다. 조심스레 끄집어낸 것은 혈변과 작은 생쥐 한 마리. 영어로는 ‘저빌’(gerbil)이라고 부르는, 게르빌루스 쥐로서 주로 애완용으로 기르는 종류였다. 의사는 진료 결과, 환자는 마분지로 된 키친타월의 종이심을 항문에 삽입하고 그 구멍으로 쥐를 집어넣은 것. 종이심을 빼내자 생쥐는 몸부림을 치다가 직장 부근에 상처를 내 출혈이 생겼고 결국은 질식사했다는 것이다. 의사는 치료 후 진통제와 항생제를 처방했다.
짐 캐리가 나오는 화장실 유머 코미디에나 나올 법한 이 스토리는 한때 미국의 성인들이 바에서 술을 마시며 주고받았던 거친 이야기 중 가장 하드코어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저빌링(gerbilling)이라는 단어가 생기기까지 했다. 이것은 항문에 무엇인가를 넣어 스스로 성욕을 충족시키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처음엔 게이를 비하하기 위한 콘셉트로 사용되었으나 이후 이성애자에게도 해당되기 시작했다. 물론 저빌링에 대한 의학계의 보고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기사들이 떠돌기 시작한다. 1993년 UPI 통신 기사 하나가 인터넷에 등장했다. 플로리다의 레이크 시티에 사는 비토 버스턴과 키키 로드리게즈라는 사람이 저빌링 때문에 응급실을 찾았다는 것. 이후 이 기사는 UPI와 무관한 허위 기사라는 게 밝혀졌다. 비슷한 시기 <LA타임스> 기사라며 꽤 구체적인 뉴스가 나왔다. 유타의 솔트레이크 시티에 사는 에릭과 앤드류라는 동성 커플이 저빌링을 하다가 크게 다쳤다는 것. 물론 이것도 <LA타임스> 기사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저빌링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리처드 기어가 언급된다. 그가 캘리포니아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항문에 들어간 애완용 쥐를 꺼낸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디테일은 꽤 그럴 듯했다. 기어는 과거 연인이었던 슈퍼모델 신디 크로포드와 함께 병원을 찾았고, 꺼낸 쥐는 털과 발톱을 모두 깎은 매끈한 상태였다는 것. 치료를 마친 후 의료진들에게 침묵 각서를 받았지만 결국 소문은 돌게 되었다는 게 그 전말이었다. 리처드 기어가 <귀여운 여인>(1990) 이후 폭발적인 스타덤을 누리던 시기에 갑작스레 부각된 루머는 걷잡을 수 없었고, 미국동물학대방지협회는 기어의 행위를 이슈화시키기도 했다. 이에 유명한 옐로저널인 <내셔널인콰이어러>가 달라붙었는데 소득은 없었고, 마이크 워커라는 기자는 “내 생애 이렇게 열심히 취재한 적은 없었다”며 기어의 저빌링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찾았지만, 그 어떤 단서나 팩트로 찾지 못했다.
톱스타 리처드 기어는 한때 응급실 괴담의 하나인 ‘저빌링’ 루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작은 사진은 영화 <귀여운 여인>의 한 장면.
하지만 소문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기어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의외의 발언을 했다. 그 진원지로 실베스터 스탤론을 지목한 것. 그들은 신인 시절 <브룩클린의 아이들>(1974)라는 코미디에 함께 캐스팅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기어와 스탤론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서로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결국 스탤론의 막무가내 요구로 기어는 촬영 초기에 중도 하차했는데, 당시 좋지 않은 감정은 풀리지 않았고 스탤론은 이런 황당한 소문으로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는 게 기어의 주장이었다. 물론 스탤론은 “절대로 아니다”라며 부인했다.
저빌링 못지않게 더럽고 추잡한 ‘응급실 괴담’(?)이라면 바로 난잡한 록스타에 대한 이야기다. 이 도시 전설도 어떤 공식이 있다. 어느 록스타가 콘서트를 끝내고 질펀한 파티를 즐기던 중 응급실로 실려왔는데, 그의 위장에서 다량의 정액이 검출되어 위세척으로 뽑아냈다는 것. 난잡한 오럴 섹스를 즐겼다는 것으로, 그 양은 천차만별이고 실려왔다는 사람도 다양하다. 엘튼 존, 로드 스튜어트, 데이비드 보위, 믹 재거, 제프 벡, 존 본 조비 등이 이 전설의 초기에 언급된 사람들. 이후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멤버 중 하나, 존 본 조비 밴드의 드러머 등으로 확산되었고, 앨라니스 모리셋이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의 여성 가수까지 루머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춘기 소년들의 악취미적인 섹스 토크를 연상시키는 이 도시 전설은 적잖은 록스타들을 괴롭혔는데 로드 스튜어트는 2012년의 자서전에서, 기어가 했던 것처럼, 그 최초 유포자를 지적하기도 했다. 부적절한 행동으로 해고당했던 토니 툰이라는 스태프가 그 주인공. 그는 로드 스튜어트가 샌디에이고의 게이 바에서 그 짓을 했다고 여기저기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