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페루에서 동생은 일본서 무차별 연쇄살인극
페루에서 17명을 권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로 3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형 파블로(왼쪽)와 일본에서 6명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동생 나카다.
그리고 이틀 뒤. 또 다른 인근 가정집에서 8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주변을 수사하던 중, 한 주택에서 칼을 들고 있는 외국인 남성을 발견. 도주하려던 남성의 신병을 확보했다. 나카다라는 이름을 가진 페루인이었다.
특히 이 집의 장롱에서는 모녀지간인 40대 여성과 초등학교 여학생 두 명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됐다. 두 어린 소녀의 상반신에는 여러 차례 칼에 깊이 찔린 상처가 나 있어 그 잔혹함에 수사관들마저 경악했다는 후문이다.
경찰에게 발각되자 나카다 용의자는 자신의 팔을 칼로 자해한 후 2층에서 뛰어내려 머리를 크게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는 의료기관으로 이송됐으나 현재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다. 이와 관련, 경찰은 “세 곳의 살해현장에서 채취한 DNA와 발자국 등이 나카다 용의자와 일치한다”면서 “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번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나카다는 1985년 페루에서 태어났다. 페루 언론보도에 의하면 “가난한 집안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데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10년 전에는 ‘돈을 벌어 고향에 가구수리점을 차리겠다’는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와 이후 반찬 공장 등을 전전하며 생활을 이어왔다. 공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그에 대해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언제나 혼자서 밥을 먹었다”고 기억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의 친형이 페루에서 무차별 살인사건을 저지른 ‘희대의 살인마’라는 점이다. 나카다의 형 파블로(42)는 권총으로 17명을 쏴 살해한 혐의로 2006년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파블로는 재판과정 중 “실제로 살해한 것은 25명”이라고 진술해 또 한번 충격을 안겼다. 이 사건은 페루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사건으로 꼽히며, 아직도 페루인들은 그를 ‘죽음의 사자’로 기억하고 있다.
2007년 재판부는 파블로에게 징역 35년을 확정했다. 그러나 파블로가 자살을 시도하는 등 ‘망상형정신분열증’을 보여 2009년부터 의료형무소에서 치료 중이다. 2011년에는 기자들에게 “나는 범죄자가 아니라 청소부다. 썩어가는 세상을 구원하려고 25명을 죽인 것”이라고 말해 책임능력 여부가 논란이 됐었다. 살해 동기에 대해서는 “신의 명령으로 약물중독자와 매춘부, 동성애자를 없애 세계를 정화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오고 있다.
페루에 사는 나카다의 누나는 “나카다는 평범했지만, 형의 살인사건에 강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뒤로부터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은 “나카다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나는 살해당할 거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또 3년 전 페루에 일시 귀국했을 때는 형이 있는 형무소를 방문해 사람의 죽음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 확인됐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파블로와 나카다 형제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다고 한다. 쇠파이프로 폭행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 나카다의 누나는 “불우한 유년시절의 환경이 연쇄살인사건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한편 이번 살인사건으로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가족들은 비극에 망연자실했다. 아내와 두 딸을 한꺼번에 잃은 남편(41)은 텔레비전 뉴스를 일절 보지 않고 두문불출하고 있다. 자신의 부재중 자택에서 벌어진 끔직한 참극이었다. 평범하고 행복했던 가정이 살인자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던 남편은 사건 직후 경찰서에서 목 놓아 울고 말았다.
이틀 동안 주택가에서 초등학생을 포함한 6명이 잇따라 살해당한 사건은 일본인들을 충격으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일본 경찰의 대응이다. 연쇄살인사건이 터지기 전날인 13일. “수상한 외국인이 서툰 일본어로 뜻 모를 이야기를 중얼거린다”는 신고가 접수돼 나카다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사정을 들으니 “돈이 없다” “페루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더듬더듬 반복하고 있었다. 그 후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나카다의 요구에 따라 경찰관이 함께 현관 앞까지 데리고 나왔으나 그대로 경찰서에서 도주했으며 이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이튿날부터 나카다 용의자의 무차별 살인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경찰의 미숙한 대응에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먼저, 분명히 도주하는 모습을 보았을 텐데 추적을 포기한 이유가 도마에 올랐다. 담당 경찰관은 “범죄 혐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달아났다는 것은 중대 사건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다. 행방을 찾아야만 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순 없었다.
비난이 거세지자, 경찰청장인 가네타카 마사히토는 정례 브리핑에서 “과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흉악한 사건에 가슴이 먹먹하다. 현경은 열심히 대응했다고 하지만, 막을 수 있지 않았느냐는 관점에서 사안을 다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