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는 생활고로 빌린 3000만 원뿐
▲ 지난 11일 고 안재환의 발인 날, 고인의 아내 정선희가 실신한 채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 실려나오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과연 어떤 이유로 고인은 자살이라는 막다른 길에 내몰린 것이었을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 고인의 마지막 행보를 뒤따라가다 취재진은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안재환의 자살 원인과 실제 내용이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 안재환이 자살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로 알려져 있는 사안은 단연 거액의 사채다. 40억 원대 사채로 힘겨워하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는 것. 실제 그의 주변에서 사채의 어두운 그림자가 감지되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고인이 갑작스럽게 생방송 펑크를 내 문제가 됐던 한 케이블 방송국 내부 관계자는 “방송국에 사채업자로 보이는 검정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난 뒤 방송 펑크가 시작됐다”고 얘기한다. 뿐만 아니다. 고인은 방송국에 자신의 계좌가 아닌 매니저의 계좌에 출연료를 입금해 달라고 요청했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사채의 그림자는 삼성동에 위치한 그의 집에서도 확인됐다. 그의 집 주변에서 만난 이웃주민은 “고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기 3~4일 전부터 이상한 남자들이 와서 고인에 대해 자꾸 물었다”며 “아예 하루 종일 집에 들어가 (고인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또 “3~4주 전부터 정선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말을 보태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재환 집에서 수년째 근무 중인 가사도우미도 지난 11일 기자와 만나 “안재환이 없어지고도 사채업자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왔고 집에 오기도 했다”며 “일주일 전쯤 사채업자들이 몰려와 무단으로 가게 문을 열겠다고 전화가 와서 안재환 누나가 ‘누가 와도 절대 문 열어 주지 말고 집안 불이며 TV며 다 끄라’고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채업자들이 찾아오면 그 아들을 살리려고 부모님이 집에 있는 금을 팔아 돈을 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과연 어느 정도의 사채가 고인을 힘겹게 만든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고인에게 돈을 빌려준 지인 A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본래 고인의 가족과 친분이 돈독한 사이라는 그는 세간에 떠도는 40억 사채설은 너무 심하게 부풀려진 루머라고 주장한다.
“사채가 40억 원이라느니, 원금 6억 원에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40억 원이 됐다느니 하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연예인은 프리랜서 신분이라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기 힘든데 안재환은 삼성동에 바를 운영하고 있어 은행권에서 담보대출 및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정선희와 분가해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자신 소유의 한남동 빌라를 담보로 돈을 빌리기도 했다.”
▲ 지난 8일 고 안재환의 시신이 발견된 카니발 차량(위). 아래 사진은 고인의 삼성동 본가. | ||
“나를 비롯해 안재환 주변의 지인들은 (안)재환이를 믿었고 한편으론 투자 개념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사업실패 후 자금 흐름이 완전히 막혀버린 모양이다. 내가 알기론 채무액이 30억 원까지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연이은 사업 실패 후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두 달 전쯤 3000만 원을 일수, 즉 사채로 끌어 쓴 것 같다.”
고인의 누나인 안 아무개 씨 역시 “사채가 40억 원이나 된다는 얘기는 말도 안 된다”라며 “자기네들끼리 그렇게 떠들고 있는데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안재환의 자살이 알려지기에 앞서 벌어진 상황들은 A 씨의 설명과는 다소 다르다. 고인을 믿고 투자 개념으로 돈을 빌려줬던 이들까지 입장을 바꿔 채무 상환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 고 안재환이 금전적으로 위기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부 채무자들은 고인이 출연했던 방송국은 물론 운영하던 바, 심지어 집까지 찾아가 빚 독촉을 했다. 고인의 누나는 물론이고 정선희에게도 독촉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결국 실질적인 사채는 3000여만 원가량에 불과했지만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자 친분이 있어 그에게 돈을 빌려준 지인들마저 등을 돌리면서 고인이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사업이 얼마나 어려웠기에 고인은 자금 압박에 시달렸던 것일까. 빈소에서 만난 고인의 친구인 김 아무개 씨는 강남 소재의 바가 결정타가 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동업으로 시작한 강남 바에 상당한 돈을 투자했고 권리금도 꽤 됐는데 건물이 재개발되는 과정에서 10원 한 장 못 받고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강남 소재의 바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됐던 이들의 얘기는 다르다. 고인이 강남 소재의 바에 동업으로 투자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B 씨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당시 정황을 들려줬다. 애초 이들이 생각했던 사업 아이템은 락카페와 같은 유흥주점이었다. 그런데 해당 건물이 16명이 지분을 갖고 있는 복합건물이라 이들 모두에게 동의를 구하지 못해 유흥주점 허가를 받지 못하고 호프집으로 문을 열게 됐다는 것.
▲ 고 안재환과 그의 친누나가 경영하던 삼성동 ‘레오노’ 바 전경. 꽤 장사가 잘되던 이곳은 또 다른 강남 바 관련 소송 때문에 압류되기도 했다. | ||
이런 과정에서 건물 주인이 바뀌며 재개발에 들어갔다. 고인의 친구 김 씨는 재개발 과정에서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B 씨는 “권리금 개념으로 6억 원가량의 보상금을 받았고 업소 철거 때 철 자재 등의 값으로 2000만~2500만 원의 철거비용도 받았다”고 얘기한다. 문제는 여기서 불거졌다. 강남 소재 바를 고인과 동업했던 동업자는 정작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B 씨는 “사실상 금전적인 투자는 동업자가 훨씬 많이 했는데 보상금은 안재환 씨가 혼자 챙긴 것에 격분한 동업자가 소송을 제기했다”고 얘기한다. 이 소송으로 인해 지난 6월경 삼성동 레오노 바에 압류조치가 들어가기도 했다고.
그러나 고인의 측근들은 보상금과 철거 비용을 고 안재환이 혼자 챙겨 마찰이 생겼다는 B 씨의 얘기는 사실이 아니라며 “다만 건물이 재개발에 들어가 바가 문을 닫으며 동업자 사이에 분쟁이 생겨 고인이 힘겨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한다.
그렇지만 해결 방법은 있었다. 올해 초 론칭한 화장품 브랜드 ‘세네린’이 홈쇼핑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한 것. 고인은 올해 초 정선희를 메인 모델로 하는 ‘세네린’을 론칭해 현대홈쇼핑을 통해 판매에 돌입했다.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유명세로 반짝하던 여느 연예인 브랜드와 달리 시즌 1에 이어 시즌 2 때도 반응은 무척이나 뜨거웠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세네린’이 결정적인 위기에 봉착한 것은 정선희의 촛불 관련 발언 때문이었다. 네티즌들의 반발이 거세진 후 현대홈쇼핑 측은 5월 31일 ‘세네린’ 방송을 무기 보류했고, 한 달가량 후인 6월 29일 정선희가 출연해 방송이 재개됐지만 여론의 뭇매가 이어지자 방송이 중단됐다. 게다가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언제 다시 방송이 나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이는 곧 세네린의 부활이 요원함을 의미한다.
이처럼 연이은 악재로 고인은 엄청난 자금 압박에 시달리게 됐다. 일례로 두 달 전쯤에는 고인 가족이 소유하고 있던 재규어 차량도 담보로 잡혔으며 생계를 위해 3000만 원의 일수 사채까지 이용하게 됐다는 게 지인들의 증언이다. 고인의 시신이 발견된 카니발 차량도 현대캐피탈 측에서 할부로 구입한 것이지만 할부금 납입이 연체돼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지난 11일 오후 아들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도 고양시 벽제 추모공원 하늘문 납골당에서 아버지 안병관 씨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부친 안 씨는 ‘강압에 의한 자살’, 사실상 타살일 가능성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