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맞아야 돼” 할아버지 때린 뒤 ‘여아 납치’ 수상하다
2008년 6월 12일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야산에서 경찰이 납치 2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허은정 양의 시신을 감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와 안양 사건 범인은 검거됐다. 하지만 대구 사건은 7년이 지난 지금도 미해결 상태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점도 많다. 경찰의 현장 감식에서 아무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아이를 납치한 후 협박이나 금품을 요구하는 연락도 없었다. 유일한 목격자인 할아버지의 진술도 오락가락하며 일관성이 없었다. 게다가 이 할아버지는 사건 발생 2개월여 뒤 사망했다. 흔적 없는 침입자와 진술을 번복하는 목격자, 그리고 사라진 여아. 그날 새벽, 이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납치 용의자 몽타주와 실종자 전단지.
옆방에 숨어있던 허 양의 여동생(당시 9세)이 이웃에 알려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범인이 집안에 침입한 시각은 새벽 4시 10분께. 겁에 질려 숨어있던 허 양의 동생이 이웃에 도움을 요청한 시각은 4시 37분이다. 농번기여서 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이었지만, 당시 상황을 목격한 이웃은 없었고 평소 사납게 짖던 개도 이날따라 짖지 않았다고 한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초등학교 6학년생이 새벽에 신발도 신지 않고 끌려갔는데 반항 흔적이 전혀 없고 별다른 침입 흔적도 없다”는 등의 당시 정황으로 미뤄 주변 인물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비공개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별다른 실마리를 찾지 못했고, 진척이 없자 발생 5일째인 6월 3일 공개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허 양의 사진이 담긴 전단지 1만 7000장을 집 주변 읍·면에 배포하고 500만 원의 현상금을 내걸어 시민들의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허위제보도 속출했다.
유일한 목격자인 허 양의 할아버지의 진술도 일관성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최초 조사에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진술했지만, 이내 “얼굴을 보면 알아볼 것 같다” 또는 “50대 남자 1명”에서 “30대 남자 2명”으로 번복했다. 이 과정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자신이 심하게 폭행당하고 손녀가 납치됐는데도 할아버지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점, 여동생이 경찰에 직접 신고하거나 가족에게 전화하지 않은 점 등으로 볼 때 납치가 아닌 단순 가출에 따른 ‘자작극’이라는 억측까지 난무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형사는 <일요신문>과 만나 “허은정 양 사건은 통상적인 아동 납치 사건과 달랐다”며 그 근거로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는 납치범이 어른이 함께 살고 있는 대상자의 주거지에 찾아와 범행을 감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 통상적인 아동 납치 사건의 경우 대개 실종 장소는 학교 주변이나 놀이터다. 이는 앞서 발생한 안양 사건과 비교해 보면 얼른 이해가 가는 내용이다.
두 번째는 납치범이 허 양을 바로 노리지 않고, 1차로 할아버지를 폭행한 후에 납치했다는 점이었다. 세 번째는 납치의 동기가 매우 불분명하다는 점이었다. 괴한은 납치 성공 이후 가족 등에게 어떠한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또 허 양 할아버지의 경찰 진술을 보면 이 괴한은 흉기를 소지하지도 않았고, 집안을 뒤진 흔적도 없었다. 적어도 금품을 노린 범행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뜻이다.
앞서의 형사는 “당시 허 양은 생활고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할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월세 5만 원짜리 집에서 살고 있었다. 범인이 금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른 것 같지는 않았다”며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일반 납치 사건과 달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자작극이라는 억측과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던 것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러한 정황에 따라 경찰은 “단순 납치 사건이 아닌 면식범에 의한 원한 관계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다시 원점에서 수사를 재개, 허 양과 따로 살던 부모와 할아버지의 주변 인물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지만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당시 허 양의 가족은 경찰 조사에서 “허 양의 할아버지는 돈이 없으면 외상으로라도 술을 사지만, 남한테는 1000원 한 장 빌리지 못했던 분”이라며 “욕심이 없는 데다 누군가를 해코지 할 성품이 못되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다”고 진술했다.
주변 인물 조사에서도 별다른 실마리를 못 찾고 수사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자, 경찰은 6월 9일부터 허 양의 집 주변 반경 5㎞ 지역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색을 펼쳤다. 대구지방경찰청 이새롬 강력팀장은 <일요신문>에 “당시 연인원 1940명이 투입됐고, 경찰헬기와 인명 구조견 등을 동원해 인근 지역 총 5065개소를 집중 수색했다”면서 “여기에 기지국 통신자료 13만여 건, 용의자 이동예상 경로의 CCTV를 통해 차량 1830여 대를 분석했다”고 밝혔다.
실종 14일째인 6월 12일 오후 5시께, 마침내 허 양이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집에서 2.3㎞ 정도 떨어진 속칭 용박골 8부 능선 부근 산비탈에서 허 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허 양의 시신은 야산 15m 아래 산비탈에 알몸으로 엎드려 있었으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패돼 있었다.
허 양이 입고 있던 티셔츠와 반바지는 시신 발견 장소에서 300m 아래 나뭇가지에 걸쳐져 있었고, 다시 옷이 발견된 지점으로부터 150m 떨어진 곳에서 속옷 하의가 발견됐다. 앞서의 형사는 “당시 비가 많이 와서 시신이 많이 부패된 것 같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는데 ‘허 양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고 참담했다”고 말했다.
“경북대 법의학교실에서 시신을 부검한 결과 시신은 안면부와 상반신이 심하게 부패돼 뼈만 남은 상태로 식별이 불가능하고, 하반신은 피부가 남아 있는 가벼운 정도의 부패가 진행 중이다. 부패가 심하게 진행돼 사망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으며 성폭행 여부도 밝혀내지 못했다. 머리와 우측 팔, 몸통이 분리된 상태로 머리와 우측 팔에 6㎝ 정도의 금이 가 있지만 어느 시점에 발생됐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시신 부패 정도와 사건발생 시점 등을 감안할 때, 허은정 양의 시신임은 확실하지만 특별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허 양의 머리 바로 옆에 있던 돌에서 발견된 혈흔과 허 양의 모발과 체모 등 DNA 시료를 채취하는 한편, 시신 주변에서 수거한 모발과 체모, 손톱 등 240여 점에 대한 감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조직 검사를 의뢰했다. 동시에 경찰은 범행 동기에 따라 크게 두 갈래의 수사를 전개했다. 원한 관계에 따른 우발적 납치와 인근 우범자가 성폭행을 노렸을 가능성이다.
이 가운데 경찰이 가장 무게를 둔 것은 ‘원한 관계에 의한 우발적 납치’였다. 즉 괴한이 허 양 할아버지를 노리고 침입했다가 이를 말리는 허 양을 납치했다는 것이다. 당시 괴한으로부터 “너는 죽도록 맞아야 해” 라는 말을 들었다는 할아버지의 진술과 앞뒤가 맞는 이야기다. 또 괴한에 대해 진술이 번복 됐지만 할아버지가 ‘예전에 봤던 얼굴’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 해 온 점도 이런 가능성에 무게를 더했다. 하지만 앞서 실시한 주변 인물 조사에 더해 원한 관계를 중심으로 재수사 했지만 단 한사람의 용의자도 나오지 않았다.
원한 관계를 중심으로 한 수사가 뾰족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경찰은 허 양 집 인근에 사는 우범자들이 허 양을 성폭행하려 한 가능성에도 눈을 돌렸다. 실제 허 양의 시신이 유기된 지점은 지역은 집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고, 초행자가 올랐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좁고 험한 산길이었다.
게다가 발견 당시 허 양의 시신이 나체 상태로 발견되면서 이런 가정에도 무게가 실렸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30~40대 남자와 성폭력 전과자 등 우범자 321명의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해 감정의뢰하고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해 당일 행적을 추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향 역시 확실치 않았다. 조그만 마을에, 어른이 함께 사는 집에 침입해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점이나 시신에서 성폭행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여기에 앞선 구강조직 시료 대조작업에서도 모두 ‘관련 없음’이라는 결과가 나와 여기서도 별다른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현재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대구 달성경찰서 양정길 강력4팀장은 <일요신문>에 “당시 모든 가능성을 열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수사를 진행했다”며 “사건 당일 허 양의 집 근처에서 수상한 사람을 목격했다는 주민과 허 양의 할아버지, 여동생을 상대로 최면 수사를 했고, 이를 토대로 범인의 몽타주를 작성해 전국에 배포했다”고 말했다. 이새롬 강력팀장도 “사건 발생 이후 무속인 12명이 등장해 이 사건을 추적하는 케이블TV 프로그램을 사건 분석에 활용해 재수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경찰의 노력에도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2008년 7월 11일, 허 양의 집에서 할아버지, 여동생과 다른 3명의 DNA가 발견돼 수사가 진전되는 듯했으나, 이 역시 특별한 단서는 되지 못했다. 여기에 같은 해 8월 21일 허 양의 할아버지가 사건 후유증과 지병인 폐쇄성 폐질환으로 숨지면서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경찰은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수사 중이다. 수사본부가 해체된 이후 대구 달성경찰서에서만 담당하다 현재는 대구지방경찰청 미제사건팀과 함께 수사 중이다. 이새롬 강력팀장은 “현재도 용의자 20명의 동향을 관찰하고 있고, 첩보, 제보 전화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양정길 강력4팀장도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건 발생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사건을 포기한 적 없다. 끝까지 범인을 추적해 검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편 사건이 발생한 허 양의 집 일대는 지난 2010년 주거, 산업, 연구단지가 모인 대구 테크노폴리스로 개발 되면서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허 양의 가족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경찰을 통해 인터뷰 거절 의사를 밝혔다.
대구=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앰버경고와 코드아담 초기 10분 대응이 실종 ‘판가름’ 지난 2008년 허은정 양 사건 이후, 앞서 2007년 제주 초등생 납치 살인 사건 발생 뒤 도입된 ‘앰버경고’ 제도의 실효성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 제도는 14세 미만 아동에 대한 실종 또는 유괴사건이 발생해 공개수사에 들어갈 때 경보를 발령, 방송과 인터넷, 통신서비스 등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켜 아동의 초기 발견율을 높이고자 미국에서 처음 도입한 실종아동경보시스템이다. 당시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6일이 지나고 나서야 앰버경고를 발령했다. 2007년 안양시 어린이 유괴 사건 때도 발생한 지 7일 만에야 엠버경고를 발령한 경찰은 이번에도 늦었다. 이에 따라 초기의 목격자 확보 및 각 경찰서 간 공조수사 확대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제기 됐다. 이는 단순히 경찰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대구 사건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형사는 “앰버경고는 아동 안전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유괴 사실 등을 공개할 경우, 오히려 아이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는 부작용도 있다”고 설명했다. 즉 이 시스템은 범죄 피해 확인 후 시행할 수 있는 ‘사후조치’라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한 제도는 지난해 7월 29일부터 시행된 ‘코드 아담(실종 아동 등 조기발견 지침)’이다. 해당 제도는 쉽게 말해 앰버경고보다 한 발 앞선 초기 대응 개념이다. 다중이용시설 주체에 미아 찾기 프로그램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코드 아담은 지난 1981년 7월 27일 미국 유명 방송인 존 월시의 아들 아담 월시가 미국 플로리다 시어스백화점에서 실종된 후 보름 만에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1983년 아이의 이름을 따 처음 도입됐다. 미국에서는 놀이공원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미아 발생 신고가 접수되면 즉각 안내방송을 하고 10분 동안 출입구를 봉쇄해 집중적인 수색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를 통해 시설 관리자는 대형마트나 유원지, 지역 축제 등에서 실종신고가 접수되면 출입문을 통제하고, 자체 인력과 장비를 활용하여 수색한 후 발견하지 못했을 때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하면 최고 40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시행 1년이 지난 현재 코드 아담 제도를 시행 중인 다중이용시설은 대규모 점포 570곳, 대중교통시설 287곳, 지역축제장 171곳, 전문체육시설 122곳, 기타(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경마·경륜·경정장 등) 207곳이다. 해당 제도 시행으로 지난 7월 29일까지 시설 자체에서 경보가 1890건 발령됐고 100% 실종자를 조기 발견했다. 이중 1881명은 시설 내에서, 9명은 경찰 수색 등을 통해 시설 외부에서 찾았다. 경보로 찾은 실종자의 91.3%는 18세 미만이었다. 실종아동 신고도 시행 전보다 9.9% 감소했고, 실종신고는 10.5% 감소했다. 앞서의 형사는 “미아 발생은 초기 10분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장기실종 여부가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