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vs“효과 입증” 10년째 도돌이표
한방암치료제 넥시아가 10년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위 사진은 넥시아 나노 암연구소 등이 있는 단국대병원 융합의료센터. 아래 사진은 “넥시아는 무허가 제품” 발언으로 또다시 논란에 불을 붙인 김승희 식약처장의 국감 출석 모습.
양방 기준으로 4기 암은 타 장기로 전이된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더 진행되면 ‘더 이상 의료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로, 임종단계에 접어든’ 말기 진단을 받게 된다. 그런데 “4기 암환자 생존율을 크게 높였다”며 ‘기적의 암 치료제’라고 알려진 약이 있다. 한방 암 치료제 ‘넥시아’다.
넥시아의 주성분은 옻이다. 세종대왕 명으로 편찬된 <향약집성방>에 기록돼 있는 ‘이성환’이 모태다. 넥시아는 칠피(옻나무 껍질)와 건칠(말린 옻나무 수액)이 합방된 한약 고유의 처방·법제명인 이성환의 원료 성분을 추출해 양약처럼 만든 것이다.
넥시아는 10년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약재의 안전성과 유효성부터 제조(조제)·판매의 위법성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최근 열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같은 문제가 지적되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논란이 또다시 뜨거워졌다.
지난 9월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감사에 참석한 김승희 식약처장에게 “넥시아를 식약처에서 의약품으로 허가해 준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고, 김 처장은 “식약처에서 약제에 대한 품목 허가를 한 사실이 없다. 안전성 검증을 위한 허가를 마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허가한 적도 없고, 안전성도 입증된 것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또 김 처장은 제조(조제)·판매의 위법성 논란과 관련해서도 “무허가 제품이기 때문에 약사법 위반”이라고 답했다.
앞서 지난 7월 20일 식약처에 “넥시아 등 임상효과가 입증되지 않거나, 불법으로 제조된 의약품에 대한 계도 및 의약품 유통질서 확립을 위한 관리를 해달라”고 요청한 대한의사협회도 최근 재차 넥시아에 대한 위법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는 즉각 성명서를 내고 “넥시아는 무허가의약품제조·판매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식약처장은 즉각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여기에 지난 9월 28일엔 백혈병어린이보호자회, 대한암환우협회, 암환우보호자회 등 환자단체들도 나서 다음 아고라를 통해 “넥시아 복용하며 6570일째 생존해 있다”며 “넥시아로 치료한 암환자들이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지 말할 수 있는 공식 기회를 달라”는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넥시아를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96년 개발된 넥시아는 처방 초기부터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논란이 촉발된 것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넥시아 개발자인 최원철 단국대학교 특임부총장(당시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통합암센터장)은 2006년 9월 17일 ‘암치로 EBM 심포지엄’에서 ‘넥시아 투여 암환자 216명에 대한 후향적 임상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97년 3월부터 2001년 5월까지 암환자 216명에게 넥시아와 환자별 체질에 맞는 보조 한약 처방 및 원적외선 치료 등을 병행한 결과 전체의 52.7%(114명)가 만 5년 이상 생존했다는 게 발표의 골자.
김승희 식약처장의 사과를 촉구하는 한의사협회의 성명서(왼쪽)와 의사협회 건물.
양방 및 광혜원 의무기록, 환자 진술 등을 근거로 조사한 결과 환자의 병기는 위암, 간암 등 고형암 환자의 경우 1기 3명, 2기 14명, 3기 35명, 4기(말기) 85명이었고, 백혈병과 같이 병기를 구분하지 않는 혈액암은 42명, 기타 37명이었다. 암 진행 단계별 5년 생존율을 보면 4기 85명 가운데 63명은 넥시아 투약일로부터 만 5년 이내에 숨졌으며, 19명이 생존해 4기 환자의 확인된 5년 생존율은 22.4%였다. 3명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3기 생존율은 80%로 조사됐다. 암 종류별로는 혈액암의 경우 69%, 폐암은 33%가 5년 이상 생존했다.
암은 치료 후 5년간 재발하지 않으면 항암치료에 성공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완치는 물론 병의 진행을 늦출 치료법도 없는 단계를 의미하는 말기암 환자가 5년 이상 생존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말기암 환자는 대부분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10% 정도는 6개월을 넘기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이상 얼마나 더 생존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그런데 4기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이 22.4%에 달하고, 혈액암의 경우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골수) 이식 없이도 5년 생존율이 69%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성과’였다. 실제로 이 같은 임상 보고는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었고, 국내에서 한방의 암 치료 성적이 ‘후향적 임상 연구’라는 양방의 기준으로 평가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여기에 이 발표에 앞서 지난 2006년 8월 31일 미국 국립암센터가 “유전자 요법으로 흑색종 피부암에 걸린 말기암 환자 17명 가운데 2명을 18개월간 생존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발표가 세계적으로 대서특필된 것과 비교되면서 넥시아 연구 사례는 더 주목을 받았다. 넥시아의 암 치료 연구의 검증을 맡았던 미국 국립보건원 의료통계분석실장을 지낸 이영작 당시 한양대 석좌교수는 심포지엄에서 넥시아의 성과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좋다”고 말했다.
반면 양방 의료계는 넥시아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의료계의 대표적인 지적은 △넥시아 치료를 받았던 암환자들이 앞서 양방의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등을 받아왔기 때문에 치료결과가 양방치료의 효과인지 넥시아의 효과인지 알기 힘들다. △의사 소견서나 의무기록사본 등이 없어 환자 진술에 의존한 암환자가 138명(63%)이나 차지한다. △임상시험의 핵심인 넥시아로 치료한 환자와 치료하지 않은 환자의 명확한 실험군과 대조군이 미비한 점 등이었다.
일각에선 “의학적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치료제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암환자와 가족들의 심정을 악용해 고가에 팔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넥시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한 알 가격이 3만 원에 달한다. 최소 1년 동안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나고, 하루에 두 개씩 복용해야 하므로 한 해 약값은 2290만 원에 이른다. 개발자 최 교수를 두고 “넥시아의 효능을 과장해 말기 암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제2의 황우석’”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논란은 계속됐다. 지난 2011년 한국임상암학회는 “현재까지 발표된 넥시아의 임상논문은 산발적인 증례보고이거나 효과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후향적 분석에 그치고 있다”며 “이 약이 항암제로 사용되려면 과학적·체계적인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보건복지부 소속 국가암정보센터도 “넥시아의 치료효과를 입증할 만한 과학적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식약처 위해사범중앙수사단도 검찰과 별개로 23번에 걸쳐 한방암센터 교수를 포함한 교직원들을 소환하고 강동경희대병원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는 등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아징스75는 넥시아와는 별개의 약이었으며 시중에 판매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지난 2011년 8월 이 사건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끝났다.
그럼에도 양방 의료계에선 “당시 유통과정에 대해서만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이지, 넥시아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에도 “한방 항암제로 불리는 넥시아에 대해 안전·유효성 검증뿐만 아니라 한의사에게 허용된 제조 범위를 넘어선 대량 생산이 이뤄졌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청희 의협 부회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넥시아는 의약품에 속하지만 의약품으로 품목허가를 신청한 적도 없는 무허가 의약품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며 “무허가 의약품은 식약처의 안전성, 유효성 검증을 거치지 않아 효과를 입증하기 어렵다. 이 부분에 대해 의료계가 10년여 전부터 문제를 제기했지만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부회장은 또 “넥시아가 법적으로 허용된 한의사의 조제 범위를 넘어 대량 생산이 이뤄진 의혹도 있다. 넥시아 제조 과정이 한의사에게 허용된 조제 범위에 들어가 있는지, 아니면 대량생산을 위한 제조를 했는지 법적인 규명이 필요하다”며 “한방이나 의과나 의약품 및 치료 시술에 대한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잣대가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전통의학이라고 해서 입증되지 않은 방법에 대해 우호적인 기준으로 허용하면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본다”고 강조했다.
환자단체들은 넥시아와 관련해 말할 기회를 달라는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다음 아고라 캡처.
이에 대해 최원철 특임부총장과 20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단국대학교 대학원 엄석기 생명융합학과 교수는 <일요신문>과 만나 “한약재는 양약과 달리 약재를 안전하게 쓰기 위해 끓이거나 볶는 가공 과정(포제)이 있다. 한의사가 한약재를 가공하는 행위는 조제의 예비에 해당돼 불법, 무허가 조제가 아니며 이 과정 자체가 한약의 특징이다. 지난 2011년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엄 교수는 앞서의 국감에서 김승희 식약처장이 “넥시아는 무허가 의약품”이라고 답변한 부분도 반박했다. 그는 “개별 의약품은 품목허가 대상이 맞다. 그런데 환자를 진료하고 약을 처방할 때 각각의 개별 의약품을 섞어서 처방한다. 이때 처방된 약재는 개별품목허가 대상이 아니다. 이는 양약도 마찬가지”라며 “따라서 ‘넥시아가 품목허가 대상이냐’는 질문에 ‘아니다’라는 답변이 나온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넥시아에 들어간 칠피와 건칠은 모두 식약처에서 개별품목허가 대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넥시아의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 논란에 대해서도 엄 교수는 “식약처에서 품목 관리하는 한약재를 그대로 처방해서 쓰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또 다시 안전성 유효성 검증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며 “십전대보탕 같은 일반 한약재도 임상시험을 거치라는 뜻인가. 이러한 문제제기는 한의사의 전문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어도 ‘넥시아는 사기’라는 비난과 조사가 반복되고 있다. 발전적인 논의 대신 논란만 반복되면 피해는 결국 환자들에게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양방과 한방의 첨예한 논란이 지속되자 한국환자단체연합은 자체적으로 지난해 11월 7일 넥시아검증위원회를 발족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 대표는 “위원회에서 넥시아 복용 후 5년 이상 장기생존 중인 말기 암 환자를 인터뷰해 결론을 내린 뒤, 대한한의사협회·대한의사협회·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임상효과 검증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정식으로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방과 한방의 치료원리나 관점이 다른 상황에서 일부 의사들이 넥시아를 처방하는 한의사를 ‘이단’으로 몰고, 일부 한의사들은 이에 대해 소송까지 불사하며 맞대응하고 있는 게 넥시아 논란의 한 단면이다. 양방과 한방 입장을 모두 수용하는 전향적인 묘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이 논란은 계속 ‘뜨거운 감자’인 채로 남아있을 공산이 크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