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서울 주재 외교관을 통해 세계 각국에 곧 알려졌고 미국·영국·러시아 등 열강은 일본이 저지른 “야만적 살인 행위”를 비난했다. 궁지에 몰린 일본 정부는 미우라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을 히로시마 형무소에 수감하고 재판에 회부했으나, 관련자들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을미사변에 가담한 살인자들 가운데 기쿠치 겐조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청일전쟁에서 종군기자로서 한국 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귀국할 때까지 한국에서 자그마치 52년간 언론인이자 재야 사학자로 활동한 대표적 ‘조선통’이었다.
기쿠치는 히로시마 형무소에서 석방된 후 일본이 한국에서 운영한 <한성신보> 기자로서 언론계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언론사를 직접 경영하거나 설립해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는 한국사 관련 책들을 많이 펴내는 등 재야 역사학자로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첫 시작은 을미사변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흥선대원군에게 돌리기 위해 히로시마 형무소 수감 중에 쓴 <조선왕국>(1896)이다.
이어 이토 히로부미의 명을 받아 펴낸 <조선최근외교사 대원군전 부 왕비의 일생>(1910)은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을 목전에 두고 ‘조선망국론’ 입장에서 대원군과 고종, 명성황후의 정치적 무능력과 부패상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이후로도 <조선잡기 1·2>, <근대조선이면사>, <근대조선사 상·하> 등을 통해 한국사 왜곡과 유린에 앞장섰다.
그는 을미사변 현장에 있었고, 대원군과 지속적으로 친분 관계를 갖고 접촉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가 갖고 있던 역사의 현장성으로 인해 그의 글은 의심 없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한국 근대사가 벗어나기 힘든 심각한 왜곡과 굴절의 굴레였을 뿐 아니라, 이후 식민 통치 내내 자리하게 될 일본 식민사학의 출발점이었다. 칼로는 황후를 죽이고, 펜으로는 한국사를 유린한 셈이다.
한편 <기쿠치 겐조, 한국사를 유린하다>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쿠치가 어떻게 명성황후를 칼과 글로 두 번씩이나 치욕스러운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아직까지도 우리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말의 어지러운 정치상과 인물들에 대한 혼란스러운 선입견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자 했다.
또한 저자는 기쿠치와 같은 일본 보수 우익의 침략 논리가 조금도 다르지 않게 현재에도 재현되는 일본의 역사 인식과 팽창의 움직임을 비롯해, 100여 년 전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겹게 줄타기 외교를 거듭하던 상황과 오늘날이 매우 유사하며, 식민사관이 아직도 일본의 기본 역사관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거물 언론인이자 재야 역사학자인 기쿠치 겐조의 활동을 통해 뼈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 현재 우리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다가올 미래를 대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연 지음. 서해문집. 정가 1만 5000원.
연규범 기자 ygb@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