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귀에 쏙쏙… 히트곡 비법이야
▲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김태진(김):벌써 데뷔 35주년이네요. 몇 년 있으면 40주년인데 특별히 생각하는 이벤트가 있나요?
태진아(태):40주년에는 이루하고 같이 공연을 하려 해요. 그땐 이루도 공익근무가 끝나고 한창 활동 중일 테니까. 혼자는 많이 해봤으니 이젠 부자가 함께하는 뜻 깊은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김:요즘 들어 신세대 성인가요 가수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이런 분위기를 예상했었나요?
태:성인가요가 갑자기 젊어진 게 아니라 예전부터 젊었어요. 내가 데뷔한 것도 스물둘이었고 혜은이 오은주 하춘화 같은 분들도 다 어린 나이에 데뷔했으니까. 항상 문은 열려 있었는데 젊은 친구들이 도전을 안했을 뿐이죠.
김:후배들이 열심히 하니까 보기 좋죠?
태:좋죠. 어떻게 보면 새로운 후배 스타들이 나오면 나올수록 우리도 덤으로 쉽게 갈 수 있어요. 히트곡 안 나와도 성인가요 붐이 조성되면 우리 설 자리도 많아지는 거니까.
김:정말 열심히 후배들을 도와준다고 들었어요. 예전에 장윤정 씨도 인터뷰를 하면서 선생님이 정말 고맙다고 그러던데.
태:지금도 장윤정 보면 딸 같아서 언제 어디서든 만나면 따스하게 포옹해줘요. 그러면서 귓속말로 이런 저런 얘길 해주곤 해요. 특히 차 타고 바쁘게 다니지 말라고 강조해요. 스케줄이 너무 많으면 적당히 조절해야지 안 그러면 사고 날 수 있거든. 인기가 올라갈수록 겸손해지라는 얘기도 자주 해줘요.
김:신세대 성인가요 가수들이 연이어 데뷔하지만 여전히 성인가요 가수들이 설 자리는 별로 없는 거 같아요. 특히 방송에선.
태:라디오는 좀 있는데 TV는 많지 않아요. 성인가요 가수가 움직일 수 있는 TV 프로그램은 <전국노래자랑> <도전 주부가요스타> <열린 음악회> <가요무대> <가요콘서트> 정도인데 <열린 음악회>는 A급 가수만 나갈 수 있고 <가요무대>는 다른 가수 노래를 주로 불러야 해요. 그나마 몇 개 프로그램이 곧 폐지된다는 얘기도 있어 많이 안타깝죠.
김:방송에서 성인가요가 설 자리가 왜 이렇게 계속 줄어드는 걸까요?
태:내가 88년에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만 해도 TV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성인가요와 일반가요를 구분하지 않았어요. 1위를 하는 비율도 거의 50대 50이었죠. 주현미 현철 김지혜 태진아 문희옥 같은 성인가요 가수들이랑 김완선 신승훈 박남정 같은 일반 가요 가수들이 매주 경합을 벌이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방송에서 성인가요가 배제되면서 뒤로 물러섰어요. 일본에 엔카, 미국엔 컨트리가 있다면 진정한 한국의 가요는 성인가요인 셈이죠.
김:단연 최고의 성인가요 가수로 꼽히는데요. 본인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태:아무래도 곡 운이 많이 따라줬죠. 늘 노력하는 자세로 남들보다 조금 앞서간 것도 주효했다고 봐요. 성인가요 최초로 뮤직비디오를 찍고 곡 바뀔 때마다 이벤트를 준비하고 의상도 신경 썼으니까. 제 노래는 가사가 길지 않고 쉬워요. 주 타깃이 어르신들이니까 가사가 어려우면 안 되거든. 반복적인 가사, 시대 흐름에 맞는 가사가 중요해요.
▲ 가요대축제에서 동방신기와 열창을 하고있는 태진아. | ||
태:당연히 ‘옥경이’죠. 집사람 이름으로 만든 노래인 데다 88년 미국에서 돌아와 재기에 성공한 노래이기도 하니까. 세 곡을 고르라면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빼놓을 수 없죠. 성인가요 최초의 뮤직비디오를 찍은 노래인 데다 성인가요 최고의 음반판매량을 기록하며 나를 그해 가수왕으로 만들어준 곡이기도 해요. 또 매년 5월이면 빠짐없이 나오는 ‘사모곡’은 어머니 돌아가신 걸 주제로 만든 곡이라 특별한 의미의 노래예요. 하나도 버릴 곡이 없네. 다섯 곡을 꼽자면 이루와 함께 만든 최초의 노래인 ‘동반자’와 집사람에게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 노란 손수건이었다는 추억이 떠올라 만든 ‘노란 손수건’을 추가할 수 있겠네요.
김:공백을 딛고 컴백하는 노래가 아내 이름인 게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태:아니에요. 당시 분위기를 보고 의도적으로 꺼낸 카드가 적중했죠. 당시엔 그런 게 먹혔거든요. <주부가요열창>이 처음 시작해 한참 인기였는데 ‘옥경이’가 집사람을 주제로 한 노래인 터라 자연스럽게 출연 섭외가 자주 왔어요. <전국 노래자랑> 나가도 송해 선생님에게 집 사람 이름이 옥경이라는 얘길 해달라고 부탁하곤 했었죠. 기획사 사장은 총각이라고 속이지는 못할망정 드러내놓고 유부남이라고 얘기할 필요가 있냐고 했었지만 결국 제 예상이 적중했죠.
김: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선 가수 태진아가 아니라 이루 아빠로 더 유명하세요. 좋으시죠, 이루가 너무 잘 돼서.
태:내가 아는 길, 내가 걸어온 길을 아들이 가니까 좋죠. 도와줄 수 있고 조언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잘 됐으니 더 좋고.
김:가수를 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을 언제 처음 갖게 됐나요?
태:이루가 어렸을 때 HOT를 좋아해 내가 CD를 사다주곤 했는데 언젠가 명절 때 TV에서 스타의 가족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기에 이루랑 같이 나갔는데 이루가 방송에서 HOT 노래 부르는 걸 보고 가수에 소질이 있다고 처음 생각했었죠.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이루가 노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본인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더군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대학 입학 기념으로 친구랑 듀엣으로 음반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도와줬어요. 정식 음반이 아니라 개인 소장용으로 만든 음반이었는데 녹음할 때 보면서 다시 한 번 가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김:그럼 언제 이루가 가수 데뷔를 결심한 거예요?
태:미국으로 유학 갔다 잠깐 귀국했는데 노래를 하고 싶다더라고요. 그런데 몸무게가 118kg였어요. 그래서 내 그랬지, 노래는 무슨 노래냐, 차라리 씨름을 하라고. 몸무게만 줄이면 밀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45kg 빼서 73kg을 만들라고 했는데 이루가 1년 반 만에 그 약속을 지켰어요.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배고파서 울고 힘들어서 울고, 이루가 참 많이 울었어요. 이루랑 집사람이 냉장고 문을 붙들고 싸웠을 정도니. 이루 살 빼게 만들려고 같이 고생했던 집사람도 12kg이나 빠졌을 정도예요. 요즘에도 퇴근하면 매일 두 시간씩 운동하며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김:그래서 그런지 이루는 태진아가 밀어서 떴다는 얘기도 많았어요.
태:이제 다 지난 얘기지 뭐. 태진아 아들 아니라 누구 아들이라도 본인 실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될 수가 없어요. 이루도 1집은 잘 안됐잖아. 2집을 준비하면서 이루가 정말 독하게 연습했어요. 덕분에 2집 ‘까만 안경’이 나온 지 15일 만에 대박 났고 ‘흰 눈’까지 연이어 히트를 쳤죠. 물론 내 도움도 있었지만 본인이 정말 노력해서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해.
김:정말 바쁘실 텐데 한 달 정도 휴가가 주어진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태:집사람하고 같이 여행가고 싶죠. 나 하나도 힘들었을 텐데 3년 전부터는 이루까지 가수가 됐잖아. 얼마나 힘들었겠어, 한 집에 가수가 둘이나 되니. 난 언제든 시간 나면 집사람이랑 둘이 같이 있는 게 가장 편하고 좋아요.
정리=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